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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작성시각: 2011.05.01 0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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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詩] 축복의 시
(
'.
작가로서 정말 중요한 것이 자세라는 것을 다시금 새기는 일요일.
.'
)
+ + +
출처 : 바람구두
축복의 시 - 마리아 에스테르 바스케스에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 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낮은 무한한 장서를 헛되이
눈에 선사하네.
알렉산드리아에서 소멸한 원고들같이
까다로운 책들을.
(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
어느 한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갔네.
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
나도 정처 없이 헤매이네.
백과사전, 아틀라스, 동방,
서구, 세기, 왕조,
상징, 우주, 우주론을
벽들이 하릴없이 선사하네.
도서관에서 으레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하네.
우연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시 이를 지배하리니.
어떤 이가 또다른 희뿌연 오후에
이미 수많은 책과 어둠을 얻었지.
느릿한 복도를 헤매일 때
막연하고 성스러운 공포로 나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걸음걸음을 옮겼을
이미 죽고 없는 그라고 느낀다.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지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정겨운 세상이
꿈과 망각을 닮아 모호하고 창백한 재로
일그러져 꺼져 가는 것을 바라본다.
『타자, 동일자』(El otro, el mismo, 1969) 중에서 - 우석균 옮김
p.s :
잡지의 기자인 리타 기버트(Rita Guibert)가 마지막으로 보르헤스에게 묻는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보르헤스는 "아니요. 그리고 저는 여타의 사람들에게 그 어떤 충고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나의 인생조차도 겨우 간신히 꾸려왔으니까요. 나는 약간 표류하며 나의 삶을 살았지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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