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파적 생각이지만-_-; 재미있어하는 미디어 작업이 손에 꼽을 정도라 국내에서 뮌의 존재는 소중한 쪽이다. 더구나 지속적인 협업을 통한 높은 수준의 작업은 장영혜 이후 처음이잖을까란 생각. 무...물론 앞서 포스팅한 정혜승 정도의 아쉬움이 있긴 하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 + +출처 : 구글 검색아티스트 뮌 인터뷰이선영 (미술평론가 indiansummer68@hanmail.net) 미술계에 협업 형태의 전시가 일반화되기 이전부터 일찍이 부부이자 작가로서 하나가 되어 활동했던 뮌(김민선과 최문선)이 코리아나미술관 SPACE *C 에서 ‘기억극장’ 전을 연다. 조각과를 다녔던 김민선과 공과대학을 다녔던 최문선의 만남은 이후 독일에서 함께 미디어 아트를 전공함으로서 작가 ‘뮌(mioon)’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완성한다. 오랜만에 열리는 뮌의 ‘개인전’인 ‘기억극장’은 수년전부터 지속해온 프로젝트의 하나이다. 기억을 다루는 이 전시는 희미한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그림자를 이용한 기발한 장치의 조합을 통해 기억이 생성되는 살아있는 무대를 연출한다. 서로 다른 개성의 두 인물이 작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과정과 이 전시의 기본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뮌, 세트, (American wooden house), HD video, 10min, fluorescence painting, 340x190cm, 2014
뮌, 오디토리움, (Template A-Z), Cabinet, Objects, Lights, Motors, 700x500x320cm, 2014
뮌, 오디토리움, (Template A-Z), Cabinet, Objects, Lights, Motors, 700x500x320cm, 2014
뮌, 오프스테이지, (Making Ornament), stainless steel, tree, light, ornaments, 460x460x280cm, 2014
뮌(김민선+최문선)은 작품의 구상과 제작에 있어서 두 사람의 역할분담은 어떠한가요?
작품의 구상과 제작에 있어서 큰 구분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상과, 제작의 모든 부분에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지속적인 토론과 대화가 많은 부분 포함되어 있고, 간혹 말다툼으로 진행되는, 그래서 작업의 진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시정지의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작품의 구상이라는 과정은 각자 지내오면서 예민하게 포착했던 부분에 대한 서로의 넒은 의미의 의견 교환과 이에 대한 서로의 빼고 더하기 과정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작업에 따라서 몇 시간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며칠이 걸릴 때도 있고, 결국엔 결론의 나지 않아 사라지는 생각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효율성을 기대한다면, 저희가 진행하는 이러한 과정은 측정조차 되지 않을 어처구니없는 일정입니다.
하지만 일단 이러한 구상의 과정이 지나고 작업의 제작과정은 구상과정에 비하면 순탄한 편입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몸에 붙은 능력과 감각을 총동원해서 구상과정에서 그렸던 이미지, 상황, 그 이외에 조건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진행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 과정 또한 능률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구상과정에 비하면 즐거운(덜 괴로운) 과정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 제작과정에서는 항상 물리적인 실패라는 변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상단계의 중요한 개념을 담기에는 부족한 시각적, 재료적 그리고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다가 매번 재기와 재치를 발휘하지 못하면 위태위태한 상황이 발생하죠. 그 땐 서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장점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김민선은 조각적 재료에 대한 이해가 높고, 최문선은 기계장치 및 기술적인 해결에 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결국 역할분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마지막에 아주 급한 마무리가 필요할 때면 각자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해결합니다.
이번 코리아나 미술관 스페이스 *C에서의 전시 ‘기억 극장’은 무엇을 표현하나요?
먼저 이번 코리아나 미술관 스페이스C에서 진행된 기억 극장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거의 3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관심사였습니다. 2007년도 후반까지 뮌의 관심사가 집단 군중에 대한 거시적인 접근과 작가적 해석이었다면, 2008년도 ’관객의 방백‘부터 그 관심의 반경이 줄어들면서 군중안의 개인과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와 상황에 관심이 옮겨갔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의 경험과 이러한 경험들로 틀이 만들어지는 기억에 관심이 생겼고, 다양한 방식으로 호출되어오는 기억의 방식에 대한 것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16세기 이태리의 Giullio Camilo가 고안해낸 기억극장(Theatro della Memoria)이라는 작은 목조 극장에 대한 자료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억을 호출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은 기억이 태생적으로 닿아있는 쌓여온 개인의 취향, 주거환경(Habitat) 같은 방향으로 분산되었고, 이러한 기억방식의 구조체를 Giullio Camilo의 기억극장이 확장된 형태, 즉 무대와 관객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커튼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극장이라는 형태로 확장하고 열린 의미로 시각화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개인적인 기억과 사회적인 기억은 어떤 관계를 가집니까?
처음 기억이라는 것을 극장이라는 구조로 표현하는 방식을 고민할 때, 첫 번째 시도하였던 방식은 기억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방식이거나,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이거나, 또한 역사적인 방식 등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억의 건저올림이 과연 유효한가 혹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반복한 결과, 그 시도는 극히 무의미 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작가 개인적인 기억의 테두리 안에 수용되어 결국엔 닫힌 기억 구조를 만들어낼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지금 구체적인 기억을 해낸다는 것은 개인이 지금 실존하는 한, 개인적인 영역에서 조차 불가능하다는 것과, 개인적인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 개인이 사회 속에 지금 존재한다는 조건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보다는 이러한 기억의 생리와 기억술, 기억방식의 조건, 유형 쪽으로 관심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오디토리움]에서 기억과 극장을 매개하는 그림자는 어떤 상징을 가지나요?
먼저 작품 오디토리움은 Giullio Camilo의 기억극장의 원형에 가장 가깝도록 재해석 한 작업입니다. 다만 그의 극장에서 객석의 부분이 현재의 도서관과 같은 캐비넷으로 변형되고, 또한 그가 진열하였던 수많은 도상과, 철학적 개념들은 작업 [오디토리움]에서는 3개의 이미지 형태로 변주되었는데, 그 첫째는 반투명 아크릴에 투사되는 비교적 또렷한 그림자와, 그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뒤편의 오브제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캐비넷 뒷면 벽에 투사되는, 거대하게 과장되어 변형된 그림자 군(群)입니다. 먼저 캐비넷 안의 오브제들은 기억의 주체가 현재에 현존하는 한 계속 증식하는 경험들의 모임입니다. 그것들은 부분적으로 생략을 감행하고, 과장된 만남을 만들어내어 다양한 부정교합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그림자, 즉 아크릴판에 투사되는 비교적 또렷한 그림자들은 뒤편의 오브제들의 그림자를 재구성하되 압축하여, 즉 마이너스 방향으로 평면화 시키고, 캐비넷 뒷면 벽에 투사되는 그림자들은 오브제들의 증감에서 플러스 방향으로 팽창시켜서 뒷벽에 심지어는 천정까지 늘어놓게 됩니다. 이것은 기억이 과장되거나, 망실되거나, 생략되거나, 모호해지거나 혹은 위태롭게 되는 기억방식의 생리가 시각화되는 과정입니다.
‘기억극장’은 뮌이 계속 진행할 시리즈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전시 이전에 어떤 것이 있었고, 앞으로 어떤 것을 계획 중 인가요?
2010년부터 고민한 기억극장의 개념을 2011년에 ‘기억극장 서막’이란 제목으로 파주출판도시에 위치한 메이크샵 아트스페이스에서 작은 개인전을 했습니다. 아레나 형식의 구조물을 제작하고 용접할 때 발생하는 아름다운 불꽃을 마치 우주의 별들처럼 구조물위에 프로젝션하고 1996년에 서태지가 은퇴 기자회견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작품이었습니다. 1972년 동갑내기인 우리들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1997년 IMF이전에 어떤 기억이 지금의 우리에게 각인되었나를 심도 깊게 고민하게 했고, 크게 두 개의 방향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대학생, 노동계 그리고 소위 사회의 약자들의 대규모 시위와 서태지,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새로 신조어가 생긴 X세대의 등장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닌 학교 앞은 갑자기 데모하는 진지한 대학생들과 거의 옷을 걸치지 않은 트랜디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서울의 멋쟁이들이 공존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이러한 대비되는 세계의 공존과 충돌은 기억극장 서막전시에 용접의 불꽃과 서태지의 육성으로 소환되어 등장했습니다. 이번 ‘기억극장’의 구상, 제작과 전시준비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서인지 아직 앞으로의 진행상황은 일단 유보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전시가 끝나고 다시 생기를 찾으면 그 지점에 고민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