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대화와 소통의 창의적 리더십 뉴욕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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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를 상상해 보셨나요? 한 작품을 연주하는데 있어 지휘자의 곡 해석과 취향은 그 오케스트라의 색깔을 결정한다고 할 만큼 그 역할이 큽니다. 그런데 여기 ‘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뉴욕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멤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을 통해서 곡을 만들어 간다고 하는데요, 이런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만의 독특한 리더십은 음악계는 물론 다양한 기업체들에게도 새로운 리더십의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음악계를 넘어 리더십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를 지금 만나볼까요?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들
뉴욕 맨하탄 어퍼웨스트에 위치한 오르페우스 오케스트라 본부의 회의실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와 협연한 EMI 레코딩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 지난 2008년 내한하여 장영주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는 올해로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41주년이 되었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로 통하는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는 1972년에 처음 시작되어 대화와 소통의 음악 만들기(music-making)로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효율성보다 참여와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오르페우스의 정신은 기존의 음악계는 물론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소통하는 리더쉽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이 시대에 오르페우스는 자신들의 음악 만들기 과정에서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전세계의 대다수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마에스트로’라 불리는 지휘자이다. 한 작품을 연주하는 데 있어 지휘자의 음악적 선택, 해석, 취향은 그 오케스트라의 색깔을 결정하는 데에 절대적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지휘자가 존재하지 않는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그들의 음악을 만들어갈지 궁금하다.
<th colspan="6" align="center" scope="col">리허설 과정 1-준비</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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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작품 선정 |
작품별 리더십및 역할과 좌석 선정 |
개인 연습 |
전체 작품 연습 |
핵심멤버 리허설과 전체 리허설을 위한 아이디어 준비 |
리허설 일정 점검 |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는 34명의 모든 단원들이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참여한다. 그러나 모든 단원들이 전 과정에 다 같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각 작품마다 한 명의 악장(樂長:음악연주 단체의 우두머리)과 각 악기 파트의 리더들을 정하여 먼저 핵심 멤버 리허설 (core rehearsal)을 하며 작품에 대해 논의한다. 작품마다 핵심 멤버들이 바뀌기에 연주자들은 돌아가며 리더십의 역할을 맡게 된다. 한 작품의 악장이 다음 작품에서 맨 뒷자리에 앉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핵심 멤버들이 소그룹에서 대화를 나누며 이끌어낸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들은 이내 전체의 멤버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며 (full orchestra rehearsal) 더욱 풍성해진다. 오르페우스의 리허설 과정은 지휘자 한 명이 곡을 해석하여 단원들에게 전달하는 한 방향의 소통 방식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더 든다. 바쁜 현대 사회에 이러한 시간 소비는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서 지휘자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자신이 연주하는 작품에 의견을 반영하고 동료들과 소통 하는 것은 효율을 넘어서 연주에 동기와 생기를 부여한다. 오르페우스의 리허설 2013년 9월 30일, 오르페우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10월 9일에 카네기 홀에서 연주할 베토벤 심포니 3번 ‘에로이카 Eroica’의 리허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했다. 웅장한 규모의 베토벤 심포니를 과연 지휘자 없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안팎의 의구심이 무색하도록 오르페우스는 생동감 있는 연주로 6번과 9번을 제외한 베토벤 심포니 전곡을 선보였다.
<th colspan="5" align="center" scope="col">리허설 과정 2-핵심 멤버 리허설</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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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전체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발전시킴 |
2.언제 누가 음악적 리드를 하고 앙상블을 이끌어나가는지 결정 |
3. 각 악장의 성격과 빠르기 결정 |
4.현악기의 보잉(활긋기) 전략 결정 |
5.시간관리와 리허설 전략에 대한 토론 |
핵심 멤버 리허설 장면
이들의 리허설은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만큼이나 대화하는 시간이 많다. 악장을 맡은 제1 바이올린 주자 혹은 첼로 주자가 대화나 리허설의 시작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과정에는 모든 연주자들이 발언권을 가지고 어떻게 연주할지에 대한 의견을 낸다. 연주자들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파트만 묵묵히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곡 전체가 어떻게 연주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들으며 어떤 소리, 템포, 악상이 더 좋은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th colspan="3" align="center" scope="col">리허설 과정3-전체 오케스트라</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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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리허설: 전 악장이나 작품을 끊지 않고 연습해 봄 |
핵심 연주자들이 리허설을 이끌며 전체적인 작품의 해석 안에서 기술적인 문제를 다룸 |
비핵심 연주자들이 전체 리허설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계 내에서 핵심연주자들의 아이디어에 대해 질문하고 설명을 요구함. 다름 아이디어도 제안 |
전체 오케스트라 리허설 장면
리허설은 프레이즈마다 끊어지며 세밀한 부분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나는 166마디가 그렇게 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여긴 공격적인 느낌이 아니야. 아마 한 메조 포르테 정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 부분 오보에 라인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 다른 악기들이 이걸 더 잘 받쳐주면 좋겠어.”한 비올라 주자는 잠시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악보를 보고 전체의 음향을 들으며 자신들이 대화한 대로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판단하고 연주자들에게 의견을 전한다. “그 부분은 음색이 좀 더 어두워야 해.” “잠깐, 거기서 자꾸 화성이 바뀔 때마다 커지면 바순은 소리가 너무 커질 수 밖에 없어. 좀 작게 하면 훨씬 좋겠어.” 연주자들은 자신이 상상하는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대화하며 다른 이들의 의견과 함께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과정을 즐겼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전적으로 옳거나 틀리지 않기에 모두 열린 마음으로 주의 깊게 듣고 다른 의견들을 협상해 나간다. 이들에게는 리더가 없는 것 (leaderless)이 아니다. 모두가 이 오케스트라의 주인 의식을 가진 리더이다 (leaderful). 오르페우스의 교육 프로그램과 오르페우스 인스티튜트(Orpheus Institute) 오르페우스가 음악을 만드는 새로운 접근 방법은 미국의 경영, 심리, 리더십 등 다양한 분야의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여러 논문의 주제가 되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르페우스의 교육 방법을 기반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오르페우스 인스티튜트(Orpheus Institute)가 2000년 경에 설립되었고, 현재 학생, 기업인, 전문 직업인을 대상으로 오르페우스 식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오르페우스 인스티튜트는 그 시발점인 뉴욕을 넘어 맨하탄 음대,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 매릴랜드 주립대학, 뉴햄프셔의 다트머스 대학, 미시간의 인터라켄 예술원, 캘리포니아의 USC, 프랑스의 파리 음악원 등 여러 음악 대학 및 교육기관과 연계를 맺고 있다.
음대생을 위한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마지막에 오케스트라 작품을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둔다. 음악 만들기 과정을 단원들로부터 배워 학생들이 리허설을 통해 스스로를 실험하게 한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직접 오케스트라 작품을 해석할 기회를 갖게 되며 다른 이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고, 대화하고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창조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된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연습하여 음악을 만드는 것에 익숙했던 학생들은 초반에 익숙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더욱 위대할 수 있다(The whole is often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는 소통과 협동의 정신을 배우게 되며, 연주의 과정과 결과에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리허설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게 된다.
오르페우스의 대화 원칙: 상호 존중
1. 우리 개개인은 모든 멤버들을 동등한 동료로서 대하고 모두가 최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1. 조리 있는 설명으로 제시된 설득력 있는 의견이 목소리가 크거나 인기 있는 사람의 의견보다 존중되어야 합니다. 1. 당신의 동료를 항상 존중하고 그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진지하게 들읍시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의견일수록 더욱 그렇게 하며, 서로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집시다.
오르페우스 익스피리언스
이 시대는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인재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을 따라가는 수동적인 자세와 남을 이겨야 성공할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며 다른 이와 협력할 줄 아는 리더십을 양성하는 데에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오르페우스의 음악 만들기 과정이 제시하는 대안은 문화예술 교육이 우리의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과 그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2014년 2월에 일본으로의 투어를 계획하고 있는 오르페우스는 2015-16 시즌에 다시 아시아 투어를 하며 한국을 비롯하여 대만, 일본, 중국 등에 방문할 것을 전망하고 있다. 한국에 두 번째 방문하게 되는 오르페우스로부터 그들의 음악뿐 아니라 음악을 통한 교육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면 더욱 값진 만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ㅡ해외리포터: 정주연
참고자료 -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Hackman JR. Rethinking team leadership or Team leaders are not music directors. In: Messick DM, Kramer RM New directions in the psychology of leadership. Mahwah, NJ: Lawrence Erlbaum; 2005. p. 115-142. • Lubans, J., Jr. (2006b). The invisible leader: Lessons for leaders from the Orpheus Chamber Orchestra. OD Practitioner, 38 (2), 5–9. • Traub, J. (1996). Onward and Upward with the Arts: Passing the Baton, Workplace Democracy in the Orpheus Chamber Orchestra. The New Yorker, 100-105. • Sawyer, R. K. (2007). Group genius: The creative power of collaboration. New York: Basic Books. • Seifter, H. Orpheus Chamber Orchestra, & Economy, P.(2001). Leadership ensemble: Lessons in collaborative management.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 Serrat, O. (2010). Distributing leadership. Washington, DC: Asian Development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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