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당하거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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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08.31 18: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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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근래들어 가장 별로인 전시기간


풋풋 Food:Food

서동억_성연주_윤현선展   2011_0901 ▶ 2011_0930 / 주말,공휴일 휴관


서동억_Green Paprika_혼합재료_78×50×50cm_2011
  초대일시 / 2011_0905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주말,공휴일 휴관   리나갤러리 LINA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229-26번지 해광빌딩 1층 Tel. +82.2.544.0286 www.linaart.co.kr

  예로부터 9월은 결실의 계절, 풍요의 계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요즘처럼 일 분 일 초가 다르게 변하는 날씨를 보면 과연 9월이 그러한가 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고 물난리가 나고 8월 한 달은 정말 날씨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짜증지수가 한껏 올라가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든 4계절의 특성을 지닌 우리나라에서의 9월은 씨를 뿌리고 열매가 익어가며 그 열매를 수확하는 풍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리나갤러리에서도 그런 9월을 맞이하여 '식'을 주제로 한 3명의 풋풋한 작가들의 전시를 준비하였다. 'Food'에서 오는 언어유희로 우리나라 '풋'으로 읽혀지고, 음식을 소재로 신선한 작업을 하는 풋풋한 전시라는 의미로 『풋풋 Food:Food』展이 이번전시의 타이틀이다. 서동억, 성연주, 윤현선 작가 3명으로 구성된 이번 『풋풋』展은 모두 음식을 소재로 작업을 한다는 게 공통점이긴 하나, 그 음식을 소재로 작가마다 표현하는 개성은 다양하고 신선하다.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입으로 먹던 음식들을 눈으로 즐기고 감정으로 느끼는 이번 『풋풋』展을 통하여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음식이 작품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작품을 감상해 주길 바래본다. ■ 리나갤러리  
서동억_Orange Apple_혼합재료_150×130×50cm_2010
서동억_Pumkin_혼합재료_140×160×90cm_2010
  나의 작업은 산업사회의 산물로써, 현대인들이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매체이자 도구인, 컴퓨터 키보드를 선택하여 현대사회에서 의사소통의 의미를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키보드는 현대사회의 산물로써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현대인의 친근한 사물로 상징되어 진다. 키보드를 통한 의사소통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하며, 우리 자신이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긍정 혹은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산업사회의 이기(利器)들은 우리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해 발전시킨 산물이라 생각하며, 우리 스스로 산업산물에 대한 기술적 이해와 타인과의 조화를 이루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노력은 우리자신 또한 자연의 일환으로 산업산물이 자연과의 대립이 아닌 자연의 법칙을 따라가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 나는 작품에 사용한 키보드를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의미하기도 하지만, 산업산물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소통언어로써 긍정적인 상징적 기호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의미 표현으로, 의사소통의 도구로 상징되는 키보드 문자키를 자연물과 접목시켜, 마치 키보드 하나하나를 두드리듯 붙여가는 조형화 작업을 통해, 현대사회의 의사소통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여 나만의 시각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 서동억  
성연주_호박_피그먼트 프린트_160×120cm_2011
성연주_무_피그먼트 프린트_106×86cm_2011
성연주_호박_피그먼트 프린트_160×120cm_2011
  실제와 비 실제의 사이적 이미지 ● 내가 옷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음식물 소재들은 모두가 지속성을 가지고 우리의 몸을 보호해 주지 못하며, 시간의 흐름에 대처하지 못하고 주변의 환경에 너무나 영향을 받는 것들이다. 이것들로 만들어진 나의 옷은 피부의 보호라는 옷의 기능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상 속에서는 마네킹위에 직물의 조직이라는 형식적 틀을 벗어나서, 어떤 것도 의상으로 허용될 수 있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음식물과-의상'각각의 동떨어진 이미지를 잡아내어 실재의 세계로 창조해 간다. 나의 작업은 음식물의 특성상 시간이 변하면 결국엔 없어지고, 시간이 조금씩 변함에 따라 그 형태와 색을 점점 잃고 추한 상태로 변해간다. 머릿속에서 상상만으로 가능하던 이미지를 붙잡아 실제로 만들어내면 결국엔 그것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내가 만들어냈지만 환영을 본 듯, 결국엔 환상속의 창조물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실체없는 이미지일 뿐이다. 나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로 남게 되며 이것은 시간을 붙잡아 나의 상상 속 창조물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 사진은 영원하지 못한 이미지를 잡아내고 후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옷도 아닌, 음식도 아닌 혹은 옷이기도, 음식이기도 한 사이적 이미지로써의 나의 작업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제시하며 시각적으로 유혹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나의 작업은 본질은 없는, 실체도 없는, 옷의 이미지만 빌려온 음식이고, 또 음식은 될 수 없는 옷이다. ● 사진은 우리를 믿게하는 힘이 있다. 사진은 그 후 조작이 무한히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내는 기본적 능력 때문인지 조작이 가해지더라도 우리가 이것을 바라볼 때엔 없는 것을 무작정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우리가 보고있는 한 장의 조작된 세상은 현실에 기반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고, 그 것에 기반하여 조금 다른 세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기회를 가져 볼 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사진 앞에서 우리는 가끔 당황하기도 하며, 믿고 싶기도 하고, 갖고 싶기도 한 세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성연주  
윤현선_MATRIX-Cucumber#02_디지털 C 프린트_70×110cm_2009
윤현선_MATRIX-Cucumber#02_디지털 C 프린트_70×110cm_2009
윤현선_MATRIX-Meat_디지털 C 프린트_110×70cm_2007
  어느 날 배가 너무 고파서 자장라면을 3개나 끓여서 작업실 쇼파에 앉아 TV를 보며 먹은 적이 있다. 물론 귀찮기도 했고 돈도 별로 없고 해서 있는 거 배터지게 먹고자 먹은 거였다. 배고픔에 나도 모르게 많은 양을 먹어 버린 거다. 먹을 땐 좋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불러 움직이기도 싫었다. 초과 해버린 위장을 느끼며 누워 있는데 처량하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더라.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왜 이렇게 사는 거지?" 스스로 질문을 하였다.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누군들 안 그럴까. 살려고 먹는 건지 먹으려고 사는 건지? ● 음식이 가끔 이렇게 보인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다 보면 내가 가끔 돼지가 되는 꿈을 꾼다. 위장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먹고 나면 포만감과 허무함이 동시에 다가온다. 많은 양의 음식 속에 나도 모르게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이런 순간들은 생각보다 꽤나 많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뭐가 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꿈인지 현실인지, 진실인지 허구인지, 무지 햇 갈리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중 음식으로 그것을 말하려 한다. 우리네 세상 아니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필요한 것을 필요 이상의 욕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본능에 넘쳐서 내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고 돼지가 되는 악몽 속에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 윤현선 ------------------------------

2011 OCI YOUNG ARTIST


장파_조혜진展   2011_0901 ▶ 2011_0921 / 월요일 휴관


장파_DaDaDaDaDa_종이에 디지털 프린트_92×62cm_2011
  초대일시 / 2011_0901_목요일_05:00pm 장파 'The End of the World' 조혜진 '변두리' 후원/협찬/주최/기획 / OCI미술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songamfoundation.org

  밀폐 공간의 반복과 괴물의 탄생. 강박장애적 구조주의자의 진술 ● 『세계의 끝』이란 큰 주제 밑으로 매달린 연작들은 대표 도상 하나로 손쉽게 수렴되고 기억될 수 있다. 투시 원근 구도로 유독 강조된 움푹 팬 검은 웅덩이가 『세계의 끝』 전체를 규정짓는 도상이니까. 아니 검은 웅덩이와 그걸 둘러싼 육면체 공간 전체가 도상인 게 맞다. 연작 타이틀 『세계의 끝』이 암시하는 종말론적 이야기를 조형적으로 완성한 양, 예측불허의 활화산이 마치 이 세상을 끝장 낼 기세로 입 벌린 검고 깊은 웅덩이. 『세계의 끝』은 그렇게 인지된다. 『세계의 끝』은 2점 투시법으로 근경의 웅덩이를 1점 투시법으로 원경의 소실점을 제각각 부각시키고 강화한다. 미세하게 변형된 검은 웅덩이의 반복 재현이 세상의 파국을 가시화한 무엇처럼 읽힌다면, 화면 중심 상단에 종심 깊게 자리한 네모진 소실점은 밀실공포로 채워진 화면에서 뭐든 단숨에 빨아들일 공포의 블랙홀처럼 보인다. 1점 투시와 2점 투시가 혼재된 공간 구성이 만든 심리적 불안의 밀도 때문에, 『세계의 끝』은 작품 단 한 점만으로 승부걸기보단 미세한 변형체 연작을 나란히 열거할 때, 전달하려는 내러티브가 온전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 밀폐된 육면체 내부를 응시하는 시점, 그것이 『세계의 끝』 도상의 구도다. 그 도상은 지나간 작업 연보 속에 이미 소리 없는 흔적을 수차례 남긴 바 있다. 「저지선」(2009)과 「경계가 없어진 소리」(2008)는 단일 작업의 얼굴을 하고 『세계의 끝』과 유사한 구도를 취한 바 있다. 또 그 도상은 「폭로하는 입」(2009) 의 초대형 화면 왼쪽 귀퉁이에 그림의 구성요소로 개입한 적도 있다. 조연에 머물던 이 육면체 실내 공간은 2010년 들어 『세계의 끝』이라는 독자적인 연작의 자격으로 주연처럼 제 새끼를 치고 있다. ● 화면 위에 동일한 형태를 반복해 작품 세계를 규정하는 도상의 전례는 『세계의 끝』 이전에도 장파(1981년생)의 작업 연보에서 꾸준히 관찰된다. 높은 지평선 위로 자리한 한적한 미지의 벽돌 가옥의 존재감은 짧은 작업 연보 속에 이미 친숙해질 만큼 되풀이 되었다. 『세계의 끝』의 실내 공간 도상과 함께 「폭로하는 입」(2009)속에 나란히 등장한 적도 있고, 채색과 구성을 미세하게 변주시켜 수차례 화면 속 주연으로 출연했다. 「모두 그것을 미친 여름이라고 불렀다」(2009), 4색으로 변주된 벽돌가옥 4점을 하나로 묶은 「붉은 벽돌집」(2008), 「벽돌집」(2010), 그리고 차량 조수석에서 차창 밖을 바라본 시선 속에 벽돌집을 삽입한 「당신의 왼편」(2010)까지 변형된 반복은 무수하다. ● 중복 출연으로 각인된 장파의 조형 도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건 단연 2008년 「식물들의 밀실」연작의 일부로 제작된 「폭력의 순환」(2008)에서 정원의 수풀을 앞발로 헤집는 정체불명의 회색 개다. 개의 입은 SF영화 「에일리언」의 괴물의 입을 닮았고 개의 흥분 상태를 지목하려 했던지 생식기는 민망할 만큼 붉다. 이 괴견(怪犬) 도상은 회화 소품 16점을 모자이크로 구성한 「식물들의 밀실」(2008), 「그들이 인지하는 미시적이고 거대한 세계를 보세요!」(2008)에 출연했고, 급기야 무대미술을 연상시키는 설치물 「목격자의 의무」 속에 어설픈 모양새의 입체조형물로 가담하기도 했다. ● 『세계의 끝』의 흑백 육면체 실내와 검은 웅덩이의 종말론적 도상(2010년)은 중복되어 제시될수록 미학적 설득력을 높였다. 「식물들의 밀실」에서 괴수의 입을 단 정체불명의 개 도상(2008년) 역시 전하려는 메시지가 뭐건, 두어 번 이상의 노출로 전달력을 상승시켰다. 고안한 도상을 반복시키는 장파의 전략은 보는 이의 뇌리에 잔상을 각인시켰고 더불어 도상 자체의 권능도 강화시킨다. 장파의 작업이 도상 반복을 추종하는 까닭은 뭘까. 동일 행동의 반복으로 강박적 사고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라 부른다. 반복된 행동이 불안의 원인을 일시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 행동은 불안감을 다만 한시적으로 차단할 뿐, 원천적으로 제거하진 못하는 걸로 알려진다. 반복은 계속될 밖에.  
장파_The Big Splash_캔버스에 잉크, 아크릴채색_75×230cm_2011
장파_What must we do_종이에 디지털 프린트_55×105cm_2011
장파_Beep_종이에 아크릴, 디지털 프린트_47×201cm(각 47×67cm)_2011
  장파 작업 연보의 초반부에 속할 「식물들의 밀실」에선 작가 개인사를 둘러싼 사연이 작가 노트에 비교적 소상히 진술된다. 약술하면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가족 구성원이 정상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부당 대우를 받고, 그는 다시 자신의 지인들(작가를 포함한)에게 그가 받은 부당 대우를 되갚는다는 체험담이다. 순환되는 불편의 악순환을 가까이서 관찰한 장파에게 그것은 작업의 동인이 되었다(작가가 감수한 고통의 상세한 내막까지 소개되지 않았다). 정상의 기준에 맞춰 차별과 폭력이 악순환 되는 현장을 가까운 가족의 굴레에서 개인사의 일부로 겪은 장파는 당시 경험의 인상을 최대한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뒤늦은 자기 위안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식물들의 밀실」의 작가 노트는 내막까지 정확히 기술하진 않는다. 해소해야할 고통임과 동시에 숨기고픈 사실이어서일 게다. 그림 역시 작가노트처럼 상세한 진술은 자제한다. 전말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당사자인 장파의 구술이 보태질 때 가능하다. 의도적으로 내막을 불분명하게 처리했지만, 작품이 보는 이에게 주는 각인 효과는 높다. 작가가 고안한 도상의 시각 충격과 도상의 반복 때문이리라. 명백하게 스토리텔링을 열망하면서도(하소연 하고픈 개인적 고통), 모호한 대리자를 내세운다(숨기고픈 사실). 작가의 대리자는 기괴한 유기체(「식물들의 밀실」의 개)의 강렬한 인상으로 등장하거나, 반복 재현으로 무언가를 강조하는 무기체(『세계의 끝』의 웅덩이 패인 육면체 실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작가가 체험한 구체적인 과거사는 모호한 도상의 반복을 통해 침묵하는 추상 기념비처럼 변형되어 보는 이에게 기억된다. 무서운 강박의 힘. ● 상대적으로 초기 작업(2008년 이전)에서 장파는 지난 개인사에 대한 스토리텔링 욕망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림을 통한 직접 진술보다 장황한 해설적 제목으로 간접 진술하는 우회로를 택한다. 「그들이 인지하는 미시적이고 거대한 세계를 보라!」처럼 장황한 명령문을 통해 의사를 분명히 드러내거나, 일반적인 전시 도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방대한 작가 해설이 삽입된 예를 보면 그렇다.  
장파_Vrooom_종이에 디지털 프린트_32×62cm_2011
  정상과 비정상을 완고하게 나누고 차별하는 '세간의 정상적 기준'을 향한 작가의 거부감은 「식물들의 밀실」에서 상반된 개념 둘을 모호하게 혼재시키며 개진된다. 가해와 피해, 정상과 비정상, 구상과 추상, 서사의 명확성과 시각 암시의 모호성 사이의 혼재. 장파의 개인사에 따르면 분명한 피해자에 속할 개마저 그림 속에선 마치 가해자인양 묘사되어 보는 이의 추론을 거스른다. 스토리텔링의 열망도 명백해 보이는데, "이야기라는 요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2009년 2인전 도록에서)고까지 고백한다. 권위적인 지식 체계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표면화된 건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구작에서도 관찰된다. 「아트 바이블」(2006)은 시각문화를 서열로 확정하는 제도이론의 무한 권능을 제도종교의 교조적 경전에 빗댄 장파의 설익은 패기를 보여준다. 그 작품은 작가의 여정이 『세계의 끝』에 당도하게 된 출발점처럼 읽힌다. ● 제도권 예술이론과 예술작품 사이의 종속관계를 둘러싼 작가의 구체적 불편을 설치물로 재현한 「아트 바이블」의 첫 여정은, 협의의 주관적 시공간인 가정에서 발생한 부조리한 개인사를 투영한 「식물들의 밀실」이 이어받는다. 「식물들의 밀실」은 구체적 대상(가령 개와 식물)을 출연시켜 진술을 대리하려 든다. 다만 '고의로' 모호한 서사를 취해 진술의 구체성을 포기하고 은유적 시각충격에 몰입한다. 그리고 이제 당도한 『세계의 끝』은 세계 전체 시스템의 부조리로 관심이 확장된 것이리라. 재현된 내용도 전작들만큼 소상하지 않다. 다만 능히 대처하기 힘든 기하학적 밀폐 공간과 정체 모를 검은 웅덩이의 추상성이 전달하려는 내용을 모두 삼켜버린다. 작가의 복잡다단한 진술은 단순 구조(도상) 하나로 수렴된다. 단지 미세한 편차로 반복되는 웅덩이, 소실점, 그리고 밀폐 공간은 연작 타이틀처럼 종말을 향해 치닫는 세상의 부조리를 구조물로 재현한 거거나, 혹은 정반대로 부조리한 세계를 끝장낼 방책으로 작가가 세운 구조물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게다. 선명한 작가 진술과 그것이 투영된 모호한 재현물. 그 둘은 커다란 구조 속에 일체가 되어 반복 재현된다. 세계의 구조적 부조리를 의심하는 장파는 미적 구조주의자가 되려한다. ■ 반이정  
조혜진_변두리_페트필름_가변크기_2011
  투명한 환幻의 풍경들 ● 그가 나에게 114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종로구 창신동 재개발지와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 지구의 철거 예정지 풍경이다. 달뜨는 산등성이나 산비탈 따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았기에 달동네라 불렀던 그 풍경들이 참혹했다. 말이 좋아 달동네지 무허가주택과 노후불량주택이 겹겹이 쌓인 도시저소득층 밀집지역이 아닌가. 버리고 떠난 자리에 누군가 살았던 삶의 흔적들이 말라서 나뒹구는 꼴이 안타까웠다. 힘든 현실의 껍질들만 남아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는 그 빈 주검들이 힘에 겨웠다. 쓸모 있는 것들조차 쓸모없이 남아서 생을 정지한 사물들이 눈에 밟혔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은 철거에 쓸려 흔적도 없이 지워질 것이다. 기쁘고 때론 슬픈 추억일지라도 돌아갈 집이고 고향이었던 가파른 산동네의 둥지는 깡그리 해체되고 파괴될 것이다.  
조혜진_변두리_페트필름, 아크릴_가변크기_2011
  저 모든 풍경은 산재다 ● 옛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야 한다고 시끄럽게 떠들던 시대가 있었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으면 온 동네 어른들이 쏟아져 나와 새 길 새 도랑을 쓸고 닦던 그 시대. 아줌마 파마처럼 온통 슬레이트 헤어로 치장한 근대화의 지붕들이 전국을 휩쓸자 이번에 정체불명의 대머리 양옥집이 유행을 탔다. 아마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도시외곽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시에 살았으나 저소득층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외곽으로 밀렸다. 이곳저곳 외곽의 구릉지는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었고 판자촌은 벽돌집이나 다세대 주택으로 옮겨 타기도 했지만, 단칸방살이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 1989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 부산, 대구 등 6대 도시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502개 지역에 총 32만 6,000가구, 131만 3,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서울시만 75개 곳, 378만 평, 8만 800가구 30만 5,000명이었다. 2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8년 전인 2002년 대한민국은 낙후된 시가지 주거환경을 정비하는 새로운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뉴타운 사업이었다. 뉴타운 사업은 정치인들에게 주민의 환심을 유토피아로 채우는 기름불과 같았고 그래서 서울은 빠르게 뉴타운 공화국으로 돌변했다. 뉴타운 공화국의 집 있고 돈 있는 시민들은 쉽게 아파트로 갈아타면서 중산층 대열에 끼어들었으나 집도 절도 없는 이들은 재개발지가 될 구릉지의 집들로 삶을 전전했고 그도 아니면 쪽방촌에 기어들었다. ● 2002년 이후 수도권의 뉴타운 사업은 지우고 세우기를 쉼 없이 반복하고 있다. 수십 년을 걸었던 길들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집들의 풍경이 엎어졌다. 보상받은 사람들도 흔적 없이 사라졌고 불 꺼진 집들에서는 쌓인 세월만큼 어두운 유령들이 겉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새벽부터 기계들은 부산하게 빈집들을 먹어 삼켰고 집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쓰러졌다. 그 모든 풍경은 산재였다. 시인 송경동이 "내가 자연을 그리워할 때 그것은/모든 조화로움으로부터 쫓겨난/근본적인 산재에 대한 항변이다"라고 했을 때의 그 산재풍경들.  
조혜진_변두리_페트필름, 아크릴_가변크기_2011
  보라, 저 거리에 나온 모든 상품들도 / 불구의 몸으로 산재를 앓고 있다 / 보라, 저 거리에 선 모든 나무들도 / 팔다리 잘리며 산재를 앓고 있다 / 보라, 저 들녘 강물의 모든 실핏줄들도 / 검은 가래에 막혀 산재를 앓고 있다 / 보라, 저 하늘 위에서 내리는 모든 눈도 비도 / 산재에 물들어 있고, 보라 / 저 하늘의 오존층도 우리의 폐처럼 / 숭숭 구멍 뚫리고 있다 (송경동,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중에서) ● 조혜진은 카메라를 들고 그 산재의 풍경들 속으로 잠입했다. 풍경의 전체가 아니라 세부의 세목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그가 '조각'으로 지어야 할 집들의 구조를 찍었다. 그 구조는 빈집의 오래된 뼈였다. 굳게 닫힌 창문, 누렇게 얼룩진 벽지, 울퉁불퉁 꾸불꾸불한 계단 골목, 후문과 장독대를 지지하는 돌담 축대, 아스라이 견디고 선 전봇대와 산발한 전선, 멀쩡하게 살아서 산 사람을 기다리는 온전한 빈 집, 묶인 채 버려진 책들과 앨범,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연예인 화보, 가파른 언덕길과 철제 울타리, 죽어서 엎어진 화초들과 화분, 걷어가지 못한 빨래, 창틀에 걸어 놓은 수채화 하나, 뚝 끊어진 전선과 두꺼비집, 회칠한 벽들에 갈겨놓은 '철거' 글씨, 해체 철거된 집터에 고인 검은 물, 콘크리트를 지탱했던 무수한 철근들……. ● 탐색이 짙게 밴 그의 시선에는 결핍을 채우려는 의지가 엿보일 만큼 집요하다. 작업용 답사사진으로 보기에는 풍경의 세목들이 팔팔하다. 텅 비고 말라서 허허로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 파닥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기갈 들게 했을까? 그는 불현듯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곧 일을 시작했어요. 가난했고 배우지 못한 엄마의 과거가 힘들었죠. 창신동은 40년 전인 1970년대에 엄마가 살았던 동네에요. 부정하고 싶었던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저는 그곳에 가게 되었죠. 재개발로 무기력하게 사라지는 산동네를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시작했던 것이 그 즈음인데, 가서 보니 산의 반은 집이고 나머지 반은 터만 남은 흙이었어요. 그 사이를 초록색 방진막이 풍경을 둘로 가르고 있더군요." ● 그곳에서 그는 풍경의 흰 뼈를 보았다. 사골처럼 오래 고여서 삶의 진한 국물 싹 빠져 버린 달동네의 흰 뼈. 수십 년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한 것은 건강한 달동네의 뼈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뼈의 국물로 살았을 것이다. 또한 그곳은 엄마의 풍경이기도 했다. 조혜진의 인생 30년이 엄마의 한 생을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온 그 풍경. 손세실리아 시인이 그의 시 '곰국 끓이던 날'에서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살아왔구나/희멀건 국물,/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라며 통곡했던 그 국물의 흰 뼈. 그는 그래서 투명한 재활용 페트 용기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달동네의 집들을, 국물 쏙 빠진 흰 뼈의 집들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조혜진_변두리_페트필름, 재활용 페트용기_가변크기_2010
  투명한, 흰 집들과 빈 사람들 ● 조혜진의 집은 철거 예정지의 달동네로부터 왔다. 그는 서울의 뉴타운 지구 재개발지에서 찍어 온 사진 속 집들을 재현했다. 집들은 비었으나 무거웠다. 무거운 집들이 조각 작품이 되었을 때는 무겁지 않았다. 투명 플라스틱 페트로 지은 집들에는 세월도 현실도 사건도 그 무엇도 묻어있지 않았다. 집들은 집의 형체로만 남았을 뿐 사람의 그림자 하나 깃들어 있지 않았다. 비어서 투명해진 그 집들이 아팠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 사이가 뻐근거렸다. 나는 그 통증이 나의 통증인지 집들의 통증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해체 철거된 집들이 하나 둘 그의 작업실에서 되살아났다. 그는 이 집과 저 집을 따로 지었고 저 집에 붙은 옆집을 이어서 지었다. 한 채, 두 채, 세 채, 그는 동네를 통째로 옮겨 오려는 듯 쉼 없이 집들을 지었다. 집들은 어두운 전시장에서 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심해에서 빛을 발하는 물고기들처럼 집들은 고요했고 그래서 선명했다. 그 많은 집들이 층층이 산동네를 이루며 공중에 설치된 풍경은 영락없이 달동네였다. ● 그러나 먹먹한 어둠일수록 더 맑게 투명해지는 이 흰 집들의 정체는 밝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엄마의 뿌연 눈물일 수밖에 없는 깊은 통각의 뼈, 비어서 투명해진 현실과 비현실의 풍경, 눅진한 삶들의 흔적만 남아서 탈각된 집들의 허물이 조혜진 조각의 미학적 실체들이다. 그는 통각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맑아지는 눈물을 생각했을 것이다. 산세와 지세에 눌려 정형 따위는 갖출 수 없었던 집들의 고단한 몰골과 그런 현실에 깃들었을 지난한 삶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자 완전히 비어서 말라버린 고치 집에 소스라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집들은 투명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투명해서 아픈 것이고 맑아서 안타까운 것이다. 그 집들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빈집의 '비어있음'을 안타까워했던 기형도의 「빈집」과 다르지 않다. 모든 빈집은 사람이 비어서 발생하는 사태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중에서) ● 기형도의 빈집은 조혜진의 빈집을 채운다. 기형도의 시어들은 조혜진의 미학적 개념어와 거의 일치한다. 가난과 이주의 정처 없음이 절박하고 결국 모두 흩어졌으나, 빈집에 갇혔기 때문이다. 무엇이 갇힌 것일까? 삶의 현실이다. 숱한 현실의 껍질들이다. 기억으로는 모자란 껍질들의 회한이다. 조혜진의 집들은 회한의 껍질들이다. 그 껍질 속에서 삶은 변태를 꿈꾸며 황홀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황홀 따위는 '환幻'에 불과하다. 그러니 빈집에 갇힌 수십 년의 짧았던 밤들이 산산이 흩어질밖에. 그 흩어진 것들의 한 획들이 모여 한 조각 한 조각 집을 이뤘을 것이다. 사람을 이뤘을 것이다. 조혜진이 이룬 달동네는 그렇게 흩어진 것들의 한 조각 환일지도 모른다. ● 이번 전시는 그가 이룬 집과 사람들의 환이자 환의 섬이다. 집들의 일부를 공개하거나 동네라 해도 지극히 부분이었던 것을 하나의 전체로 만들고자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이 환의 공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빈집과 환영뿐인 사람들 곁으로 우리를 직립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삶이란 환에서 시작해 환으로 돌아간다는, 지극히 낭만적인 진리를 일깨운다. 그러나 그가 세운 낭만의 진리야말로 우리가 상실했고 또한 묻어버렸던 삶의 실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 김종길 -------------------------------

Social Photography


강재구_고정남_신혜선展   2011_0901 ▶ 2011_0914 / 일요일,9월 2,12,13일 휴관


강재구_20 Festival#01_디지털 프린트_50.5×60.8cm_2011
  초대일시 / 2011_0901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8:00pm / 토요일_10:00am~07:00pm / 일요일,9월 2,12,13일 휴관   갤러리 이룸 GALLERY ILLUM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51-13번지 2층 Tel. +82.2.2269.2613 www.galleryillum.co.kr

  Social Photography ● '경계'라는 개념은 작품을 설명할 때 흔하게 등장하고는 한다. 비 오는 날 달팽이, 가을하늘 잠자리처럼, 어떤 상황을 상기시키는 존재들이지만 그 한 단어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주목을 끌지는 못한다. 세 명의 사진가는 군인, 뉴타운 개발구역, 외국인 아내라는 신문 사회면의 단골 소재들을 사진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나치게 빈번하게 노출되어 고착화되어 버린 사회적 의미와 개인적 판단들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작가적 감수성만을 보여줄 수도, 혹은 그 의미들을 따라 보기 좋게 시각화하는 것도 모두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갤러리를 찾는 감상자들은 존재를 뒤흔들 만큼의 가파른 경계에 서있지 않다. 오히려 안쪽 깊숙한 곳에서 안전하게 서 있는 편에 가깝다. 세 사진가는 위험천만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종군 리포터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감상자들의 바로 옆에서 경계를 이야기 한다. 이 전시는 여기와 저기, 우리와 너희가 나뉘는 상황들에 대한 선정적인 쇼가 아니라 진지한 일기 혹은 흥미로운 보고서에 가깝다.  
강재구_20 Festival#02_디지털 프린트_50.5×60.8cm_2011
  강재구 ● 강재구는 전작 「이등병(2002)」과 「예비역(2004)」의 연장선상에서 움직인다. 다양한 인격을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최하위계층인 이등병 계급의 증명사진들은 집단적 기억, 이해 또는 오해와 맞물려 관객들 앞에 기묘하게 서 있었다. 이후 계속된 예비역 작업에서, 흐트러진 그들의 군복과 삐딱한 포즈는 군복이라는 인격말살의 표상에 맞서 꿈틀대는 육체의 본능적 반항처럼 생각되었다. 시간 순서를 어지럽게 교차하며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영화처럼, 강재구는 이제서야 그들이 '군인'이 되기 전, 입대 직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사진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사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재구가 진행해 온 작업의 인물들은 모두 제 각각이지만, 그들의 개인적 이야기는 작가가 제한하는 형식 속에서 상황의 일반적 표상으로 바뀌고 관객들의 머리 속에서 영원히 순환되는 이야기로 재배치된다. 입대-이등병-예비역.  
강재구_20 Festival#03_디지털 프린트_60.8×50.5cm_2011
  강재구는 이 이야기를 상황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연출한다. 굳은 표정으로 혼자 등장했던 흑백의 이등병, 스트로보를 사용하여 마치 무대로부터 분리된 듯 어색한 존재감을 부각시켰던 예비역 작업 대신, 이번 작업의 입대지원자들은 자유스러운 포즈와 소품, 주변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다. 군복은 죄수복과 함께 제복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구속력과 배타성을 가지는데, 형식은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를 거칠게 반영하며 심지어 신체에 대한 장악력을 가진다. 예비역의 긴 머리가 군복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프로토콜과 벗어난 균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군복을 입지 않아도 짧게 깎은 머리카락만으로 미완의 군인 이미지는 가능해진다. 강재구는 A를 둘러싼 것들을 조망하는 것으로 A를 이야기한다. 군대와 민간사회가 물리적으로 맞닿은, 말 그대로의 경계의 땅인 훈련소에서 있는 입소자의 주변인물들은 역설적으로 두 가지 상반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들은 머리를 깎은 입소자들을 다른 모습의 거울이 되어 비춘다. 가장 가깝게 어울리던 사람들의 모습은 이 미완의 군인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해주지만, 이들을 자신들이 원래 속했던 그곳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는 역할 또한 주변인물들의 몫이 된다. 노랗게 탈색된 머리와 선글라스는 의도치 않게 '그는 더 이상 우리와 같지 않음'을 증명하고 만다. 그래서 강재구의 작업은 이 머리 깎은 젊은이들의 이야기면서, 상실의 순간들에 대한 서글픈 증명사진이다.  
고정남_Song of Arirang#01_람다 프린트_40×30inch_2010
  고정남 ● (작가는 내게 글을 부탁하며 '편하게 쓰세요' 했다.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작업들을 보여주며 물었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가, '어렵다'고 말한다.) 고정남의 작업 위로는 사회적으로 기(旣) 조장된 이데올로기 편향적 정보가 난무한다. 작업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왕십리 뉴타운 개발구역에서 촬영되었다. 사전 정보 없이 사진을 보고 갈피를 잡지 못했던 이들은 새롭게 입수된 정보에 안도의(혹은 오만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무차별적 개발의 폐해',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나', '집값 제자리, 전세값만 올라' 등등 수많은 정보가 뉴런을 교차하다 이윽고 가장 그럴 듯한 답을 골라낸다. 대체로 '약자의 편에 선 다큐멘터리사진' 정도다. 그런데 이 사진적 대상이자 철거의 대상은 '적산가옥(敵産家屋)'들이다. 적산은 '자국영토 안에 남은 적(敵)들의 재산'을 의미하지만 우리에게는 '일제 강점기의 가옥형태'라는 부수적인 의미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적산가옥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을 받은 기억은 없지만, 일제에 대한 적개심과 호기심으로 '아, 그렇구나'의 결론이 가능하다. 문제는 고정남의 작업은 대단히 불친절하여 적산가옥에 대한 유형학적 설명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정남_Song of Arirang#04_람다 프린트_40×30inch_2010
  세 번째 정보는 고정남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전남 장흥 태생이다. 전라남도의 항구들은 지리적으로 수탈 및 운반이 용이했기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가옥구조와는 다른 일본식 양조장, 조창, 여관, 우체국, 다방, 친구의 집 등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1998년 그는 일본 유학을 떠났고, 개발이 한창이던 도쿄 신주쿠 한 복판에서 어렸을 적 보았던 가옥구조를 그대로 맞닥뜨린다. 작업노트에서 그는 그것이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2002년 그는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東京物語』에서 차용한 제목의 첫 개인전 「집_동경이야기」를 연다.  
고정남_Song of Arirang#06_람다 프린트_40×30inch_2010
  고정남은 대상이 갖고 있는 이리저리 얽힌 사회적인 개념들 위에 작가적 감수성을 불친절하지만 교묘하게 올려놓는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무릎 꿇고 손님과 눈높이를 맞추는 세상에, 고정남의 작업을 마주하는 감상자들은 노력하지 않고는 그 모든 것이 교차되는 지점에 쉽게 닿을 수 없다. '신주쿠와 장흥, 일제시대와 왕십리 뉴타운, 고정남의 유년기와 2011년, 그리고 모든 감상자들의 개인적 기억들의 간극 어딘가'에 놓여 시간에 대항하는 그 집들에, 고정남은 공격적으로 렌즈를 들이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던져둠으로써 그 간극을 자연스럽게 시각화한다. 그 시선은 개인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감상자의 깊은 어느 곳과 공명한다. 마지막으로, 이 작업은 2010년부터 진행된 「Song of Arirang」 연작의 일부임을 밝힌다.  
신혜선_권승환 권엘레나 가족_람다 프린트_64.5×74.8cm_2011
  신혜선 ● 작가는 2007년부터 외국인 아내들에 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시집온 여러 나라의 여자들과 그들의 남편, 그리고 2세들이다. 가족이라는 쉬운 단어를 두고, 꽤 어렵게 설명해야 한다. 작업을 보면서, 내가 갖고 있던 편견들-도망간 외국인 신부, 매맞는 베트남 아내, 명절 노래자랑에 나온 외국인 며느리를 응원하던 시어머니의 모습-로부터 객관적이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기도 하다. 사진 속 가족들은 행복해 보인다. 여타의 기념사진의 형식과 같이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다운 배경 속에 서있다. 배경은 아마도 생활 반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 중에서 작가의 눈에 띈 장소일 것이라 추측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념사진의 전형성은 배경에서 이질적으로 돌출되는 아내들의 존재에 의해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동류라는 개념은 임의적이고 상대적이다. 가족이라는 혈연집단에 기대하는 '비슷한 생김새'는, 사진 속에서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감상자의 시선을 멈추고 주저하게 만든다. 신혜선은 감상자가 받아들인 시각 정보들이 모순되게 충돌하는 장면을 기록한다. 전형적인 '행복한 모습'과 익숙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인물들의 조합을 일부러 어색한 이음을 만들지 않고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보다 현실적인 질문들을 끌어낸다. 흔히 작품의 '컨셉'이나 '문제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접합 부분을 인위적으로 과장하는 '기술'들이 이 사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은 흔한 가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에 걸려 있는 순간부터 감상자에게는 '예술작품'의 자격에 해당하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오해의 시간이 펼쳐진다. 이 때 신혜선의 작업은, 누군가의 삶 속에 존재하는 '행복한 시간'의 증명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고, 어둡거나 숨겨진 뒷 이야기를 찾으려는 우리의 불안한 시선 자체에 대한 의구심의 환기로 작용한다. 누군가의 가족사진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신혜선_데완싸리타와 딸_람다 프린트_64.5×74.8cm_2011
  신혜선의 작업은 행복을 담보하는 기념사진의 형식이지만 이 행복에 마냥 도취될 수 없는 '불안함'과 맞닿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사는 어떤 곳에서도 언제나 행복만 있을 수는 없을 테니, 결국 이 증명사진은 우리에게 증명하지 못한 일들이 존재함을 상기시키는 역설적 증거가 된다. 신혜선은 자신의 작업이 어떠한 결론을 향해 일방적으로 달려가게 될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감상자들 또한 몇 장의 사진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만큼 아둔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누군가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뒤집어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 성민  
신혜선_황지현 게일리 부부_람다 프린트_64.5×74.8cm_2011
  Social Photography   ----------------------------  

어느 공간 얘기


2011_0901 ▶ 2011_0915


  초대일시 / 2011_0901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윤환_신요셉_윤세종_이덕용_정수지 후원/협찬/주최/기획 / 강원대학교 미술학과 관람시간 / 10:00am~05:00pm   낭만상회 2,3층 강원도 춘천시 죽림동 11-56번지 춘천낭만(중앙)시장 내 (제3광장 위치) Tel. +82.10.8200.8417 blog.naver.com/buynangman

  "나는 대학생이다~"라고 외쳐본다. '나는 대학생이다'는 과연 우리가 대학생답게 살고 있는지, 또한 대학생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외침이다. 이번 전시에서 강원대학교 미술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다섯 명의 학생들이 조금은 서툴지만 자신들의 의식과 행위의 흔적을 통해 일상적 공간을 미술의 영역으로 포섭하는 작업을 하며 각자의 존립을 확인한다. ● 더위가 시작할 무렵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발견한 공간은 춘천 중앙시장 안에 위치하고 있는 어느 건물 2, 3층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누군가가 거주했던 흔적들이 오롯이 남아있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을 첫 대면한 우리들은 금방 매료되고 말았고, 폐가와 같은 흉흉한 분위기와 독특한 구조가 주는 흥미로움은 창작 욕구를 자극하며 우리들을 공간 속으로 끌어들였다. ● 우리는 그 특별한 공간을 각자 한 부분씩 선택하여 해석하고 느낌을 표현하면서 공간과 소통을 했고, 이를 통해 우리 서로와도 소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최대한 기존의 틀에 얽매임 없이 작품을 구상하려 시도했다. 통상적으로 공간보다 작품이 주된 것이 되며, 전시회장이라면 '화이트 큐브'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전시는 공간에 의한, 공간을 위한 작업들로 이뤄졌고, 비정형적인 공간은 그 자체 작품이면서 보는 이에게 움직임과 적극적인 소통의 장이 되어 준다. ●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전공(한국화, 서양화, 공예, 조소전공)의 학부생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함께 한 첫 전시이자 미술의 장소성에 대한 실험적인 전시라는 것에 작은 의미를 두며,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 이덕용  
김윤환_Connect - 線_혼합재료_220×40×40cm_2011
  Connect - 線 ● Connect(연결)는 사물과 사물,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이어지거나 관계를 맺음이라는 뜻이다. 연결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서로의 존재를 이어주는 역할일 것이다. 이 역할을 선(線)으로 해석하였고, 작품 속의 나무각목은 그러한 선의 상징적 표현이 된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선으로 인해 서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으며, 내가 선택한 이 작은 설치 공간 역시 그러한 삶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이번 작업의 핵심은 그러한 원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김윤환  
신요셉_석봉스토리_프린트작업_120×180cm_2011
  꿈꾸는 공간 ● 마치 조각을 하는 이들이 고물상에 갔을 때의 느낌이랄까? 수 많은 오브제들과 재미난 것들에 눈 뗄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것. 내가 이곳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정리되지 않고 먼지가 수북히 쌓인,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공간. 이 공간은 나로 하여금 그 동안 내 속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에 조용히 귀 기울이게 했다. 꿈에 대한 희망, 열정, 또는 타인들에게서 느낀 감정들, 시장 주변에서 살다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거주지를 옮긴 한석봉 어머니의 얘기...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나는 내 속의 것들을 다시한번 다듬었고, 새로운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은 현실을 견디게 한다. 모두가 꿈을 잃고 살아가는 여유없는 현실 속에서 그렇게 꿈을 꿀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 신요셉  
윤세종_이야기_혼합재료_가변설치_165×200×60cm_2011
  공간의 마음 되어 ● 홀연히 만나게 된 공간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모두가 떠나가고 덩그마니 홀로 남겨진,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고요한 이 공간에서 사물에 대한 관찰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공간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공간이 낳은 물음에 대한 답은 공간과의 대화 때마다 매번 다르고 확신 없는 대답뿐이었지만 그 순간순간 가졌던 여러 가지 느낌들을 내 작업에다 표현하였다. 때로는 공간이 주는 삭막함과 외로움을, 때로는 공간에서 느낀 희망을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공간의 '빔(空)'은 다채로운 색(色)으로 가득하였고, 공간의 '침묵'은 '얘기들'로 가득하였다. 공간과 대화하고,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고, 느끼다보니 어느새 공간은 나 자신이 되어 표현되고 있었다. ■ 윤세종  
이덕용_거미는 떠났지만 그대들은 돌아온다_혼합재료_131×210×140cm_2011
  "떠나감" vs. 있었음/있음 ● 모두가 떠난 이 공간은 사람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흔적들만 남아있었다. 흔적은 '있었음'에 대한 지표기호(Index)로,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행해졌던 많은 것들을 추측하거나 상상하게 한다. "떠나감"에서 출발하여 이 공간에 접근했지만, 그것은 반대급부로 '있었음'을 지시하며, 그 '있었음'은 나의 상상력과 행위로 인해 '있음'의 현재적 공간으로 전환한다. 내가 만난 이 공간에 마치 실제로 있었던 사건처럼 장소를 꾸미거나, 실제로 있었던 나의 이야기를 설치해 두었다. 이 이야기들은 관람자들의 상상력을 통하여 여러 가지 모습으로 완성될 것이다. ■ 이덕용  
정수지_念_혼합재료_220×175×240cm_2011
  '번뇌'와 '소통' ● 상가 건물의 빈 공간을 보면서 '번뇌'와 '소통'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나의 설치작업은 두 가지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창문에 작은 구슬을 단 실을 연 결한 것이다. 창문 밖은 이상향이며, 작은 구슬은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가지게 되는 '번뇌'의 비유이며 그 근원을 인지하여 해탈의 길을 탐색하게 한다. 다른 하나의 설치작업은 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인 구멍을 이용한 것이다. 여러 가지 색의 끈들을 구멍 내부와 외부로 연결하여 이 곳에 살았던 자들과 외부인들, 그리고 우리 서로간의 대화 통로를 만들어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관의 공존을 위한 소통의 시작을 보여주고자 했다. ■ 정수지 -------------------------------

우중고적 雨中古跡


이여운展 / LEEYUWOON / 李汝云 / painting   2011_0901 ▶ 2011_0930 / 월요일 휴관


이여운_구름 낀 진양상가 Gloomy Jinyang shopping arcade_종이에 수묵_68×207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여운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02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시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39번지 2층 Tel. +82.2.735.6266

도시의 풍경으로 쓰는 시 ● 우중고적(雨中古跡).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곳에 자리한 낡은 건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제목 그대로, 이여운의 그림은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축축한 날씨와 낡고 퇴색된 건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을 담았다. 색채는 사용하지 않고, 담담한 먹의 표현만으로 포착한 그 풍경은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우울하다. 작가가 그린 그림 속 건물들은 실제 그가 서울 세운상가를 비롯한 오래된 상가 건물들이나 홍콩 특유의 퇴색되고 낡은 아파트들을 거닐며 포착한 장면들이다. 2001년 첫 개인전을 열던 시절부터 늘 '건물이 있는 도시 풍경'은 작가의 주요 소재였다. 그렇게 동양화가인 그가 자연을 대신한 채 수묵으로 화폭에 담은 풍경은 바로 도시의 모습이었다. 사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깝고 친숙한 풍경은 바로 건물 숲의 모습일 것이다. 더욱이 작가는 동양화에서 추구하는 일획의 '선'이라는 표현력이 현대 건물 특유의 직선적 구조와 골격을 담아내는데 매우 적합하다는 것을 끊임없는 그리기의 반복을 통해 깨달아 왔다.
이여운_우중향항2 rainny HongKong2_천에 수묵_110×73cm_2010
'낢음'이라는 정서는 왠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소외를 암시하게 된 빼곡한 도시 풍경, 그리고 이에 더해진 낡음의 정취는 이여운이 담아 왔던 적막한 지난 도시의 장면들과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물론 비를 맞은 후 물기를 머금은 도시의 풍경은 기존의 유독 메말라 보이던 그의 풍경들보다는 일견 마음을 포근히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물기의 표현과 더불어 건물의 그림자나 야간 조명의 반사빛 등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여운의 작업 세계에 있어 건물 풍경과 함께 늘 되풀이되어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림자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에서는 「헐리우드 로드」에서처럼 물기에 젖은 길 위로 반영되는 건물의 잔영이나, 혹은 「On my Lonsome」과 같이 작가의 그림자 분신처럼 독립된 개체로 등장하고 있다.
이여운_프린지 삼각지 Fringe Club Triangle_천에 수묵_162×130cm_2010
사실 '그림자'라는 존재에 드리워진 작가의 관심은 그것만큼이나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와 비실체'라는 개념에 맞춰져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진짜 대상이 '실체'라면 그에 비해 매우 부수적으로 느껴지는 그림자는 '비실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론 흔히 '비실체'라고 부르는 것이 진짜 '실체'보다도 더 중요하고 거대한 무게를 지니지는 않을까 하는 작가의 끊임없는 질문들로부터, 그의 '그림자' 모티프가 등장하게 됐다. 어쩌면 그것은 진짜 '대상'을 하나의 환영이자 또다른 '그림자'로 옮겨 내는 '그림'이라는 장르의 숙명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여운_헐리우드 로드 Hollywood Road_종이에 수묵_68×103cm_2009
우리는 흔히 하늘의 스카이라인을 뒤바꿔 놓는 높다란 건물 숲을 보며 일종의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찔하게 그 높이만 더해가는 도시의 거대한 껍데기마냥, 그것은 도시 속에서의 인간의 소외를 상징하는 대표적 모티프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의 그림 속 풍경에 사람이 부재(不在)한다는 사실, 즉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음으로써 도시의 풍경이 유독 적막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눈에 포착되는 거대한 건물과 같은 실체는 도리어 껍데기에 다름아닌 것일 뿐, 도리어 눈에는 보이지 않을 지라도 그 껍데기를 감싸고 채우는 무수한 개개인의 삶과 감정, 경험들이야말로 더욱 의미 있고 강력한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것들이 비록 보고 만질 수 없는 비실체일지라도 말이다. 이여운의 그림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과 그림자는 그러한 실체와 비실체의 연속적인 뒤바뀜을 포착하고 있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이여운_청킹맨션 Chungking Mansions_천에 수묵_162×130cm_2010
단, 그러한 비유의 장면들이 그 동안 작가의 긴 작업 여정을 거치며 '고독' '소외' '우울' '강박'과 같은 시어(時語)를 만들어내 왔고 새로운 수묵의 도시 풍경으로 탄생되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시적이면서도 한층 메마른 긴장이 사라진 여유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유독 애착을 갖고 있다는 작품 중 하나인 「청킹맨션」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홍콩의 오래된 아파트이다. 팝송 'California Dreaming'을 흥얼대며 직접적이지 않은 우회와 은유의 시선으로 도시 젊은이들의 고독과 상실을 그렸던 영화의 감수성처럼, 도시를 단면을 바라보는 이여운의 시선에도 메마름을 벗어난 여러 겹의 여유가 베어나고 있다.
이여운_한낮의 소호 sunshine St. Soho_종이에 수묵_68×103cm_2009
이렇게 그림자와 건물은 그의 그림에 묘한 암시와 특유의 정서를 부여하는 은유화된 기호로 작용한다. 작가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실체와 비실체', 그리고 그 가운데 드러나는 우울의 서정을 가장 잘 드러내고 또 암시하는 이미지로서 도리어 스스로의 '실체'를 굳혔다. 어떻게 보면 이여운은 도시의 풍경에 빗댄 수많은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가장 밀접하게 자리하고 있는 환경 자체가 작가의 심상과 감정, 내면을 담아 낼 수 있는 중요한 기호가 된 것이다. 반대로 이여운의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주변의 일상적 요소들을 또 다른 심상의 언어이자 이미지 기호로 새롭게 표현해 보게끔 유도하는 어떤 설렘을 안겨 준다. 어쩌면 우리 역시 주변의 수많은 대상들 속에서 나의 감정을 빗댈 어떤 소재, 나에게만큼은 '진짜 실체'인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이미지라는 기호로 쓰는 각자의 시(時)가 될 것이다. ■ 장승연
이여운_Wonderland2_종이에 수묵_207×68cm_2011 이여운_Wonderland3_종이에 수묵_207×68cm_2011
Writing Poems with Urban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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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eat 반.복.되.다




박재영展 / PARKJAEYOUNG / 朴宰穎 / photography   2011_0901 ▶ 2011_0930 / 주말,공휴일 휴관



박재영_Repeat no2_디지털 프린트_66×150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1 이랜드문화재단 작가공모展 주최,기획 / 재단법인 이랜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이랜드 스페이스 E-LAND SPACE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낯설게 바라본 도시풍경-박재영의 사진작업 ● 박재영작가는 원래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한 작가다. 그런데 학부시절 내내 조각작업이 주는 육체적인 피로감이나,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혹은 현대미술의 거대담론 등이 작가에게는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고, 결국에는 창작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취미로 사진촬영과 원본사진을 이용해 컴퓨터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변형시키기 등의 놀이를 시작했는데, 이것은 유희적인 차원을 넘어서 현재의 방대한 사진작업으로 지속되고 있다. 힘을 빼야(?)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듯이, 뭔가를 창조해야 한다는 생각자체를 지워내고 몰입할 때만이 진짜 작업이 나오는가 보다. 또한 입체조각 작업과는 대조적으로, 사진이라는 매체가 주는 '리얼리티(reality)'와 신속하게 작가의 표현 욕구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이 박재영작가를 사진작업으로 빠져들게 한 것 같다. 이러한 그의 사진작업은 2007년경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대개가 도시인의 삶, 혹은 그 주변을 둘러싼 일상의 풍경을 담아낸 이미지들이다.
박재영_Repeat no1_디지털 프린트_66×150cm_2011

Moving Image ● 박재영의 사진작업은 크게 세가지로 그 형식을 정리해 볼 수가 있다. 첫번째는 'Move(움직임)'을 테마로 제작된 것인데, 디지털 사진의 원본을 기반으로 이미지 보정을 통한 시리즈작업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거대도시인 서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들로,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장소,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역사, 명동의 거리, 혹은 도심의 도로를 내려다본 모습을 촬영한 것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장소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은 상태로 다량(보통 200~300컷)의 사진을 촬영한다고 한다. 이때 날씨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노출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들은 다시 한 화면에 모여 색의 재구성을 통해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촬영과 보정과정의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사진작업은 박재영에게 하여금 몰입의 기쁨을 준다고 한다. ●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포착된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수없이 반복되는 사물들의 이동 흔적은 아련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실체없는 환영처럼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과 시간성이 내재된 사진을 통해, 작가는 특정한 공간 안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소통과 충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특정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지켜보면서, 도시 일상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도시풍경에 나타난 사람들의 아련한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쫓겨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 기억을 들춰내기도 하고, 작가 개인의 삶의 기억들을 반추하기도 한다.
박재영_Repeat no3_디지털 프린트_65×150cm_2011
박재영_MOVE no2_디지털 프린트_76×114cm_2009

회화적 사진, 감성적 사진 ● 두번째 박재영의 사진작업 역시 도시의 풍경을 기록한 것이다. 청계천이나, 충무로, 을지로, 종로 등의 점포를 찍은 것들인데, 이때 박재영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들은 대개가 악기, 전자제품, 공구, 소형기계 등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의 모습이다. 매끈하게 정리되고 포장된 거대 도시 서울의 또 다른 이면에는 이처럼 너저분한 근대화의 은폐된 공간이 공존하고 있음을 작가는 포착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대한 도시빌딩 사이로, 나지막한 상점에 진열된 어수선한 물건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모습을 은유하는 듯이 보인다. ● 카메라의 렌즈에 맺힌 다양한 사물들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여러 색채가 덧발라지게 된다. 마치 화가의 손에 의해 캔버스에 물감이 칠해지듯, 박재영작가는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이 선택한 이미지 소스에 리터칭(retouching)작업을 통해 자신의 창작욕구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때 화면 전체에서 몇몇 사물이나 건물의 색을 강조하거나 특정한 색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화면이 좀더 생동감 있게 변모하게 된다. 그러니까 작가는 그림을 그리듯이 카메라로 창작 욕구를 표현하고, 감성적이고 회화적인 사진을 연출하고 싶은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작업은 회화적인 요소가 더욱 부각되며, 감성적인 사진으로 다가온다.
박재영_MOVE no8_디지털 프린트_76×114cm_2011
박재영_MOVE no3_디지털 프린트_50×76cm_2009

어떤 낯선 도시풍경 ● 마지막으로 박재영의 사진작업들은 익숙한 일상의 공간을 변형, 반복, 혹은 왜곡을 통해 낯설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가는 도시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지하철 플랫폼의 이미지를 찍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을 변형시키며, 여러장 나열된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재구성된 사진은 원본사진이 주는 밋밋한 단조로움을 넘어서, 낯선 이미지로 재탄생 되게 된다. 그러니까 일상의 삶이 원래가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지지만, 이 반복되는 일들은 때로는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는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겠다. 반복 나열로 조형성을 탐구하는 이러한 사진작업은 단순할 수도 있지만, 가볍고 유쾌하게 일상의 공간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신선한 점이 있다. ● 또한 작가는 간판과 네온사인이 넘치는 도시의 풍경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사진들은 원본사진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왜곡되었는데, 웃는 모습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초현실적인 공간이 되기고 하며, 그 형체를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사물이 되기고 한다. 이러한 작업은 작가의 의도가 배제된 채, 지극히 유희적인 세계로 감상자를 인도하고 있다.
박재영_MOVE no7_디지털 프린트_101×153cm_2010

박재영의 이러한 세가지 형식의 사진작업들은 그 이미지가 각기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그 안에 내포된 작가의 감정들은 동일한 선상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도시에서 지나다니는 사람과 사물들의 움직임을 오랜 시간 기록하거나, 최첨단의 거대빌딩으로 화려한 도시 이면에 존재하는 개발도상국의 이미지를 촬영한다든지, 흔히 접할 수 있는 서울의 도시풍경을 변형하는 작업들은 모두가 작가 개인의 지루하고 반복되는 삶에 대한 권태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도시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보다는, 일상의 공간을 더욱 깊이 바라보면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평범한 물건을 돋보기나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았을 때 느끼는 어떤 낯섦, 혹은 새로움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일상의 공간을 낯설게 보는 방식은 작가의 지루한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장치로 작용했다. 삶의 권태로움에 지쳐 일상의 무료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박재영의 사진들처럼 일상의 공간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그 안에서 다채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 혹은 발상의 변화를 주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 ■ 고경옥 --------------------------------------



물질·빛·이미지│Dialogue with the Present




이강우展 / LEEGANGWOO / 李康雨 / photography.installation.video   2011_0830 ▶ 2011_0918 / 월,공휴일 휴관



이강우_생각의 기록 Memory of Thinking_젤라틴 실버 프린트_240×600cm_199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126b | 이강우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830_화요일_05:00pm 주최 / 서울대학교미술관 관람료 / 일반_3,000원 / 청소년,단체_2,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MoA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 관악구 관악로 599 Tel. +82.2.880.9504 www.snumoa.org


서울대학교미술관은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영역을 아우르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이강우의 작품전을 마련했습니다. 이강우는 한국 근현대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회화 작업, 도시생활의 일상과 현란한 소비문화 이미지를 포착한 사진 작업, 난해한 미술 전시와 비평을 희화화한 설치 작업, 폐광을 앞둔 탄광지역의 풍경을 기록한 영상 작업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왔습니다.
이강우_길-속도-운명 Road-Speed-speed-Fate_혼합재료 설치_250×500cm_1996
이강우_대중문화읽기 Collecting Mass Culture Context_C 프린트_각 230×140.5cm_2003
이강우_말과 거울의 7단 논법 Reasons of Argument on Language & Mirror_ 혼합재료 설치(양면거울액자, 텍스트)_2002
이강우_철암역두선탄장 Tipple 2 of Cheoram Station_C 프린트_240×160cm_2006
이강우_코스트코 스타일 Costco's Style_C 프린트_120×160cm_2005

199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20여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우리 시대의 모습과 이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 있는 해석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



2001 : A SPACE COLONY / 폭발-환상적 전이




박광수展 / PARKGWANGSOO / ??? / painting   2011_0901 ▶ 2011_0930 / 일요일 휴관



박광수_2001 A SPACE COLONY_드로잉 애니메이션_00:03:10_2011_부분

초대일시 / 2011_090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비원 Gallery b'ONE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Tel. +82.2.732.1273 www.gallerybeone.kr


『2001 A SPACE COLONY』는 1982년 한 신문기사와 도판에서 시작한다. 우주과학의 발전으로 우주식민지를 건설하리라는 2001년 밀레니엄의 모습을 내다본 이 기사의 추측은 현실화 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의 이야기로 시간의 흐름이 뒤틀려 분열됨을 공상한다. 그리고 거대한 빌딩에 비행물체가 돌진했던 2001년의 실제사건을 지구정지궤도위에 건설된 우주식민지와 접붙여 가상의 폭발사건을 일으킨다. 우주도시의 사람들은 저마다 폭발로 인해 물리적 질서가 교란된 환상적 순간을 맞이한다. 공간을 베어버리는 회칼, 새로운 우주를 토해내는 블랙커피, 뒤섞인 시공으로 모두를 빨아들이는 욕조 배수구, 두루마리 풀리듯 풀려버린 엘리베이터, 별들을 얼려 떨어뜨리는 냉장고...
박광수_2001 A SPACE COLONY chapter1-1_종이에 잉크_2011
박광수_2001 A SPACE COLONY chapter1-2_종이에 잉크_2011
박광수_2001 A SPACE COLONY chapter1-3_종이에 잉크_2011

내가 매일 경험하는 물리적 세계의 이면에 대한 환타지가 드로잉의 내용을 구성한다. 원자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물질을 이루듯 펜이 한획 씩 그어지며 물질의 형체를 결정한다. 예측은 가능하지만 기계같을 수 없는 손의 움직임 때문에 드로잉은 불확정성을 가지게 되고 그 불확정성으로 인해 나도 처음 보는 물질과 공간이 종이위에 떠오르게 된다. 양손을 들고 벌을 받는 한 남자를 그린다. 그는 고통의 순간을 견디고 있지만 불확실한 손의 움직임으로 그려진 남자의 표정에서 왠지 만세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희열을 동시에 바라본다.
박광수_2001 A SPACE COLONY chapter2-1_종이에 잉크_2011
박광수_2001 A SPACE COLONY chapter2-2_종이에 잉크_2011
박광수_2001 A SPACE COLONY chapter5_종이에 잉크_2011

내 작업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이나 우연히 발견된 오브제, 또는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일상에서 나를 자극하는 그 어떤 대상을 발견하면 그 대상은 끝말이어가기와 유사한 형식으로 언어적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하나의 이야기를 구축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불연속적이다. 이렇게 출발한 이야기의 불연속적 구조들은 물리적 질서를 교란하며 또 하나의 현실을 제안한다. ■ 박광수
 




New Worlds

한호 수교 50주년 기념 국제교류展   2011_0827 ▶ 2011_0926 / 추석연휴(11~13일) 휴관



개막식 / 2011_0827_토요일_05:00pm

주관 / Australian Centre for Photography_Sydney 주최 / 한미사진미술관 후원 / Australia-Korea Foundation_주한 호주 대사관 협찬 / ㈜신지스튜디오클럽

관람료 일반 5,000원 / 학생 6,000원 / 단체 2,000원 할인(10인 이상) 사진전공학생, 송파구민 단체입장료 적용(신분증 확인)(중복할인 불가) 경로, 장애우, 미취학 아동 무료 관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30pm / 추석연휴(11~13일) 휴관

한미사진미술관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19층 Tel. +82.2.418.1315 www.photomuseum.or.kr


한국-호주 수교 50주년을 맞아 시드니 주재 비영리 사진전문기관인 The Australian Centre for Photography(이하 ACP)의 공식 초청 제안으로 열린 한미사진미술관의 기획전시 『Disappeared but Remained사라진 그러나 남아있는』(2011.7.29~8.27)에 이어 호주 측의 전시 『New Worlds』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오는 8월 27일부터 9월 26일까지 열린다. 본 전시는 ACP의 초청에 대한 화답으로 한미사진미술관이 주최하고, ACP가 기획한 전시이다.
ⓒ Catherine Nelson_Forster_2010

호주는 지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대륙중의 하나이며 문화사적으로도 기원이 오래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신대륙의 이미지로 주목 받고 있는 곳이다. 예전부터 유럽과 아시아에서 온 이주민들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의 땅으로 비춰졌으며, 오랜 기간 동안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땅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호주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문화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다문화 사회이다. 그 속에서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현재 혹은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것과 과거의 것들을 융합하고 그들 사이에서 유기적으로 소통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New Worlds』의 작가들은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각매체이자 가장 컨템포러리한 디지털 사진을 가지고 그들의 조상들이 대륙의 현재에 대해 꿈꿔온 것처럼 다음세대의 모습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표현했다. - 한미사진미술관
ⓒ Catherine Nelson_Snowy Mountains_2010

캐서린 넬슨(Catherine Nelson, 1970~) ● 캐서린 넬슨의 초월적 풍경 사진은 시각적 시상과 자연 사진 그리고 디지털 디자인이 어우러져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호주와 서유럽에서 촬영된 각각의 사진들은 고요히 우주를 부유하는 하나의 완벽한 지구의모습으로 자연환경을 극단적으로 변형시켰다. 사진들은 풍부한 디테일을 자랑하며, 각 장소들이 갖는 핵심을 복잡한 생태학적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창작된 캐서린의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오한 진리를 미묘하게 상기시키는 현대적 신화이다. 여기서 말하는 심오한 진리란 세상의 운명을 따르는 각 지역들이 갖는 풍부한 다양성을 말하는 것이다. 작가는 물랑루즈,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300,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다수의 호평 받은 영화작업에 참여해 왔다.
ⓒ Bronek Kozka_Pre-dinner drinks_2008

브로넥 코즈카(Bronek Kozka, 1970~) ● 브로넥 코즈카의 세밀하고 섬세하게 구성된 사진은 어떤 장면이나 사건을 회상하는 우리의 능력을 바탕으로 사실과 허구의 모호성에 대해 다루며 '기억'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그의 사진은 한편으로는 관객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불안함과 우울함을 느끼게 한다. 작업 속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공존하는 공간과, 이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불안에 관한 기억의 구조를 작가가 직접 탐색해 나감에 따라 실제 기억들과 뒤섞인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외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초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속 이미지들은 꿈과 현실, 낮과 밤의 구분이 확실치 않으며, 영화의 장면을 활용하여 어두우면서도 때로는 방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요소들은 겉보기에는 평안해 보이는 가정 생활에 내재된 긴장을 표면화시키고 있다. 사진은 하나의 순간을 그리고 있지만, 이 장면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 속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 Alexia Sinclair_Marie Antoinette_2007

알렉시아 싱클레어(Alexia Sinclair 1976~) ● 알렉시아 싱클레어의 초기연작 「군주의 사람들(The Regal Twelve, 2005-2007」은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자 군주들 및 그들과 관련된 신화를 주제로 한다. 이를 보완한 다음연작 「왕실의 사람들(Royal Dozen, 2007-2010)」에서는 왕자, 장군, 화려한 귀족과 외교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작가는 왕족과 귀족들의 독창적인 조합을 통해 역사적 인물들이 가진 리더십과 화려함, 후대사회에 지속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 Alexia Sinclair_Alexander the Great_2010

작품에 사용된 건물, 풍경 등의 이미지들은 작가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직접 촬영한 것들이다. 이후 호주로 돌아온 작가는 사진의 등장인물이 걸칠 의상 하나 하나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였으며, 모델 역시 사진 속의 캐릭터에 어울리는 인물로 섭외하였다. 그 후, 모델에 의상을 입혀 스튜디오에서 소품과 함께 사진을 촬영한 다음 최종 단계로 수천 장의 사진과 일러스트를 사용해 작품을 최종완성 하였다. 최종 마무리 작업은 수 개월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작업 과정 역시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작업 과정은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에 오히려 가까웠다고 할 수 있으나, 사진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현실과의 연계성을 그대로 살려냈다. 싱클레어는 르네상스 스타일을 반영하여, 개별 역사인물들과 관련된 상징들 및 스토리를 보여주는 개별 초상화 속에 상징적 모티브들을 녹아내었다.
ⓒ Polixeni Papapetrou_The Harvesters_2009

폴릭세니 파파페트루(Polixeni Papapegrou, 1960~) ● 다양한 문화권에서 동물은 인간의 보편적인 성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사람들은 동물에 자신을 투영하며 동물의 행동을 마치 그들과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동인 것처럼 의인화한다. 폴릭세니 파파페트루는 의 작품 또한 이 연장선상에 있으며,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듯 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고 부자연스러운 이미지들로 구성되어있다. 최근 연작인 「두 세계의 틈새(Between Worlds)」에서 동물 가면을 사용해 한 편으론 낯설면서도 또 한편으론 친숙하고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하였다. 파파페트루의 사진들 속에서 어린이는 사진 속의 반인반수들이 동물과 인간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대변하듯 중간 단계에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어른들이 정의하는 세상에서 어린이는 그 반대의 것인 '타자(others)'에 불과하지만,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번씩은 읽었을 법한 덴마크 작가 한크 크리스천 안데르센의 동화에서처럼 사랑스럽고, 겉보기가 아닌 내면을 통해 이들을 이해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 Gerard O'Connor & Marc Wasiak_The Battle_2010

제라드 오코너(Gerard O'Connor(1963~) & 마크 와지악(Mark Wasiak, 1970~) ● 요란하고 거칠면서도 어색한 근엄함이 서려 있는 제라드 오코너의 사진들은 18세기 Wiliam Hogarth의 도덕 풍자화와 19세기 역사화, 20세기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 색을 입힌 '테크니컬러' 이미지들의 다양한 전통들을 변형시킨다. 스타일리스트인 마크 와지악을 비롯해 포스트 프로덕션 전문가인 Harry Rekas 그리고 Visual Thing과의 공동 작업으로 창작된 오코너의 풍부한 사진이미지들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풍경을 재현해 냄으로써 관객들에게 격정적인 시각체험을 제공한다. -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의상의 디테일, 이야기의 흐름구조에 대해 작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시선은 각각의 사진이미지들을 장중한 영화적 서사가 최고조에 달한 영웅적 멜로드라마로 탈바꿈 시킨다. ■ The Australian Centre for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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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展 / LEEJOONHYUNG / 李俊亨 / painting   2011_0830 ▶ 2011_0905


이준형_untitled_리넨에 유채_72×6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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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관람시간 / 10:30am~06:00pm

서울대학교 우석홀 WOOSUK HALL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 56-1번지 서울대학교 종합교육연구단지(220동) B1 Tel. +82.2.880.7480


미술이 허상도 아니고 실상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회화라는 매체가 허상과 실상을 동시에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스스로 만든 허상 속에서 그것이 실제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지만 멀리 나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 안에서 내가 실제 살고 있는 현실을 발견 하기도 하는데, 나에게 그림을 그리고 보는 즐거움 중에 가장 큰 것은 이런 일련의 반복되는 허상과 실상이 조우하는 순간들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준형_untitled_리넨에 유채_72×60cm_2011
이준형_untitled_리넨에 유채_72×60cm_2011
이준형_untitled_리넨에 유채_72×60cm_2011

또한 시간, 공간, 색, 질감, 상징 등을 다른 매체에 비해 비교적 쉽게 제한 없이 사용 할 수 있는 점은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요소들은 개개인의 몸에 채화되어 미묘한 차이들로 그림 안에서 작가의 기호와 기법으로 나타나며, 작가와 작품간의 긴밀한 거리가 유지될 때 그림은 더 이상 그림이 아닌 작가가 머무는 이상적 공간이 되는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순간들이 화면에서 개인적 경험에 의해 선택된 상징들이 그리는 행위를 통해 미묘하고 긴밀한 관계로 드러나기를 바란다. ■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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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놀림 Body Talks


정기훈展 / JEONGKIHOON / 鄭祺勳 / mixed media   2011_0902 ▶ 2011_0930 / 월요일,9월 10일~13일 휴관


정기훈_몸놀림展_아트라운지 디방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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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902_금요일_06:00pm

아트라운지 디방 2011 출사표 선정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9월 10일~13일 휴관

아트라운지 디방 ART+LOUNGE DIBANG 서울 종로구 평창동 40길 4 Tel. +82.2.379.3085~6 www.dibang.org


허허로운 교란 작전_몸놀림허허로운 행위_몸놀림 몸놀림이라는 전시제목이 알려주듯, 작가는 다양한 행위의 체계를 허무개그처럼 살짝 비틀고 있다. 어떤 결론이나 소득이 없더라도 여러 번 소심한 비틀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작들이 공적 장소에 세워진 바리케이트, 교통통제표시 오브제, 신호등 통제박스 등과 같은 공적 기능을 가진 오브제나 장소, 건물 등에 개입하여 그 기능과 권위를 교란시키는 형세였다면, 새로운 작업에서는 '행위'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여기서 행위는 주로 암묵적으로 '약속 또는 동의된' 행동들에 관한 것,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행위들이다. 그는 전작에서 오브제에 개입해 행위를 함으로써 오브제의 기능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사회 통제적이고 규율적인 기념비적 속성에 균열을 가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브제나 설치보다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이에 따라 매뉴얼의 중요성이 강화된 모양새다. 매뉴얼은 바닥에 설치된 요가매트,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관람객의 즉각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암묵적으로 모두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행위들 자체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오히려 오브제를 활용하고 덧붙인다. 이 '행위'들은 큰 의미를 담거나 격렬한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 다만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행동들로, 초조할 때, 긴장을 풀기위해 하는 행동들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신발끈 묶기, 혀를 움직이기와 같은 행동이다. 이는 일상적인 소소한 행위이지만, 단순히 유희적인 몸놀림이라기엔 약간의 사회성을 지닌 것들이다. 긴장했을 때, 숨을 내쉬듯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행동들이다. 이번 전시의 신작 「몸놀림」의 경우, 신문이나 대중매체에 보도된 고위층 인사의 비리 혹은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이들이 언론에 노출되었을 때 취하는 포즈를 포착한 사진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같은 포즈를 패턴화하여 병렬시켰을 때, 우리는 그것이 굉장히 전형적이고 진부한 자세임을 알 수 있다. 사과, 사죄와 같은 미안한 감정 따윈 없는 듯 그렇지만 정중하게,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당당히 걸어오는 소위 고위층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형화 되어 어떤 전형이 되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그런 행위라는 것이다.
정기훈_매듭법_요가매트, 종이에 연필_56×76cm(드로잉), 62×178cm(매트)_2011

우회 전략으로서의 교란_치고 빠지기 ● 이 행위를 작가는 무기력하게,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즉, 모든 가치가 효율성에 의해, 극단적인 경쟁에 의해 유지되고 매겨지는 이 사회를 살짝 비틀며 치고 빠지는 전략이 정기훈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정기훈은 왜 행위를 비효율적,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일까? 왜 신발끈을 묶기 힘들게 만드는, 하지만 간신히 묶을 수 있는 행위를 개발하고, 그것을 심지어 매뉴얼로 만들어 참여를 유도하는 것일까? 왜 등수를 매기며 경쟁을 부추기는 '시상대'의 높낮이를 뒤바꾸어, 시상대의 기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일까? ● 작가는 지속적으로 각종 사회적 기호, 즉 약속된 어떤 것들에 대한 균열을 일으키는 작업을 해왔다. 뭔가 파괴할 것만 같은 어떤 폭발력을 가지기보다, 접혀진 부분을 살살 긁어주듯, 어떤 경계지점들을 넘나들어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정기훈이 취하는 교란의 방식이다. 정기훈의 '교란작전' 그것은 어떤 표상으로서의 기념비성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시스템, 관습과 같이 정형화된 구조들의 작은 틈 사이로 스며들며 비기념비적인 속성을 전파한다. 주름들 속을 떠돌며 어딘가 찝찝했지만, 미쳐 손이 닿지 않았던 곳을 살살 긁어가며 그 경계를 교란시키고 주름들을 펼치는 것이다.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 소심한 의미 비틀기이다. 이 소심한 교란작전은 핵심 그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며 직접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저리에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트는 우회적인 전략을 취한다.
정기훈_혀놀림_거울, 종이에 연필_42×60cm(드로잉), 32×48.5cm(거울)_2011
정기훈_몸놀림_벽에 시트지_2011

가깝고도 먼 사이_커뮤니케이션 하는 법 ● 이번 작업의 실마리를 풀어주는 것이 있다. 손바닥과 손등을 합성해 찍은 사진인데, 얼핏보면 그냥 손 같은데, 뭔가 이상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등과 바닥을 합성해 놓은 것이다. 제목 그대로 바로 앞뒤로 붙어있지만 한꺼번에는 볼 수 없는 가깝고도 먼 사이인 손등과 손바닥. 대화벽의 이쪽 편과 저쪽 편에 얼굴을 내어놓고 있는 두 사람의 상황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매우 명확하게 얘기해준다. 이 시리즈의 모티브가 되는 작업은 「발언석」이다. 이전 작업이 좀 더 직접적인 사회 속 공적 영역의 구조물과 기호를 이용한 것이라면,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업들은 사회적이건 개인적이건 개인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커뮤니케이션 기호에 관한 관심으로 조금 이동한 형세인 것이다.
정기훈_가깝고도 먼 사이_디지털 프린트_22×32cm_2011
정기훈_발언석_돌, 나무의자_81×43×43.5cm

실소, 꽉 차거나 과하지 않은, 2% 부족한 듯한 행간, 허허로운 유머가 정기훈 작업의 매력이다. 특히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매뉴얼 드로잉 작업은 더욱 그렇다. 작가는 스스로 이 같은 행위를 해보면서 그것을 사진 찍고 기록하여 드로잉하여 매뉴얼을 만든다. 매뉴얼은 그의 행위를 다른 이들에게 제안하고 전파하는 하나의 도구나 다름없다. 즉, 서바이벌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무한경쟁시대에 비효율적인 행위를 전파하고 시스템 속에 허허로이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허허로운 그의 개입이 사실은 매우 촉이 서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촉수를 뻗어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 이들의 관계 전반에 퍼져있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기준과 관습, 고정관념, 질서와 같은 것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작업은 매우 작은 촉수들 여러 겹을 가지고 있어, 가려운 구석구석을 살살 긁어주는 것처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들, 우리를 통제하는 것, 우리의 관계를 지배하는 무엇과, 그 관계를 길들이는 것들. 이 같은 것의 체계에 여러 개의 작은 틈들을 만든다. 구멍이 틈이 되고 그 틈은 어떤 경계와 표면을 갈라지게 하는 것이 된다. 결국 정기훈의 작업은 강한 발언, 사회적 주장을 하지는 않지만 우회적인 방법으로 여기저기 틈을 낸다.
정기훈_사랑의 신호_종이에 잉크_31×42.5cm_2011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정공법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장 핵심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 이상 전략적이지도, 영리하지도 않은 미련한 방식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통할 때도 마찬가지로 비판도 칭찬도 모두 우회적인 표현으로 둘러치는 식이다. 살짝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 우회적 전략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같은 사회현실을 살짝 재치 있게 비틀어 자신의 작업 방식과 태도 그 자체로 삼은 정기훈의 작업은 자꾸만 어긋나는 현실을 시사하며 단단한 구조와 규율, 체계를 유연하게 만들고 있다. ■ 김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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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 Somewhere



김지선展 / KIMJISUN / 金志宣 / drawing 2011_0906 ▶ 2011_1019 / 토,일,공휴일 휴관



김지선_어떤 곳 03_종이에 펜_120×120cm_2008


초대일시 / 2011_0906_화요일_05:00pm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관람시간 / 09:00am~06:30pm / 토,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어떤 곳」, 잠재된 이야기들 ● 가늘고 진한 펜선을 따라가다 보면, 보석인지 식물의 열매인지 모를 결정이 마디마디 맺혀져 있다. 성의 일부, 의자나 제단 같은 구조물들이 숨겨져 있는 이 곳은 숲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비밀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지선은 「어떤 곳」이라는 상상적 공간의 풍경을 시작으로, 그 공간 안의 세부적 사건들과 구성물들을 그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이들 그림을 볼 때 상상하게 되는 공간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곳곳에 뾰족한 물레바늘이 있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공간이다. 모두 잠들어 풀을 밟을 사람도, 열매를 따먹을 사람도 없는 공간, 그래서 화려하게 장식된 책이나 건물들이 오히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숨쉬고 있는 듯한 공간이다. 그런 한편, 날카롭고 정돈된 필치로 그려진 장식적 형상들은 보석이나 유리로 정밀히 세공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조건들을 보고 '어떤 공간'을 떠올릴까?
김지선_어떤 곳 06_종이에 연필_145×145cm_2009
김지선_어떤 곳 07_종이에 연필_110×200cm_2010

이 질문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답은, 보는 이들마다 서로 다른 상상적 공간을 이끌어내리라는 것이다. 부드럽고 짙은 흙색의 땅 보다는 단단한 회색 보도가 익숙한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누구나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 공간을 상상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대는 어김없이 어떤 비밀이나 모험을 간직한 숲이 되기 마련이다. 「어떤 곳」은 복잡한 장식적 형상의 숲 속에 일상 사물들을 조금씩 감추거나 보여준다. 작가가 사물들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고, 어지럽게 뒤엉킨 숲 속에 숨기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특징은 화면의 흑백 톤과 함께 그려진 것 이외의 다른 것을 상상하게끔 하는 것 같다. 검게 묘사된 열매는 혹시 짙은 붉은 색이거나 진한 향이 나지는 않을지, 그 감촉은 어떨지... 이러한 상상적 유희를 위해서는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의 요소들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지선의 그림에서는 전체 공간만큼, '전체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 중요해진다. (작가의 작업을 통틀어 보면, 하나의 그림이 또 다른 그림들의 전체이자 부분 역할을 한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김지선_a book a tree a house_종이에 펜_각 15×15cm_2011

작품의 이러한 성격은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연관이 있다. 작가는 화면 안에서 최초의 시작점을 가지고 드로잉을 진행해가면서 일상적인 사물이나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접합하여 화면을 채워나간다. 작가의 의식 흐름에 따라 한 요소에서 다른 요소로 연결되면서 화면이 구성되기 때문에, 그림 하나에도 여러 개의 전체와 부분이 생기게 된다. 세밀한 터치를 보려 화면에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앙증맞게 숨어 있는 다른 사물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엉뚱하게 등장한 작은 그림들은 유머러스하기도 하지만, 작품 속 공간이 무제한적으로 확대/축소 될 수 있는 상상적 공간임을 다시금 인식하게 해주는 것 같다.
김지선_어떤 곳 11_종이에 펜_72.5×56cm_2011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엉뚱한 잠복은 작업과정에서 우연이나 언어유희를 적극 수용하는 김지선의 성향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내게는 작가가 생활하는 내내 혼자 떠올리고 좋아하는 유머들, 말장난들, 생각을 바로 바로 옮기는 실천력과 자기가 해낸 일에 보이는 만족감 등의 습성이 그림에도 녹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뽐내는 듯이 얼굴을 내민 식물이나, 활짝 열려 그 내용을 똑똑하게 보여주는 책, 혼란한 공간 속에서도 똑 부러지게 정돈되어 있는 가구들이 풍기는 인상은 작가의 모습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김지선이 만들어내는 '상상적 공간'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어떤 이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나는 그것이 '뭔가 최고의 것, 어떤 경건한 완성의 상태'를 추구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며, 어떤 상상의 공간에 관한 이 작업에 분명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곳(이 이름을 가진 그림을 포함하여 작가가 묘사하는 상상적 공간 모두)」에서 공존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가의 삶 어딘가에서 끌어올려진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작가가 상상의 단서를 찾는 곳이 어디인가' 떠올려보면서 이 숨은 그림 찾기를 즐길 수 있다. 하나의 그림 속에서 '다른 그림'을 볼 수 있고, 같은 그림을 보면서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숨은 그림 찾기의 재미이자, 그림을 보는 이유가 아닐까? ■ 김보영
김지선_어떤 곳 13_종이에 펜_53×53cm_2011
김지선_어떤 곳 14_종이에 펜_53×53cm_2011


Somewhere – where stories are 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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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풍경: Emptiness




2011_0826 ▶ 2011_1016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초대일시 / 2011_0825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기철_김덕영_김주리_김태준_김해진 나현_박성훈_이정후_이주형_황지희

기획 /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

도슨트 설명 매일 2회 (02:00pm, 04:00pm) *단체는 사전에 전화문의 (Tel. +82.2.737.7650)

전시 연계 어린이 체험프로그램 - 21세기 풍경_우리가 바라보는 풍경 일정 : 8월 27(토)-10.16(일) 매주 토요일, 일요일 시간 : 10:00am~12:00pm / 02:00pm~04:00pm

관람료 어른 및 대학생(20~64세)_3,000원 / 학생(초, 중, 고교생)_2,000원 20인 이상 단체 1,000원 할인 * 65세이상 어르신, 7세 미만 어린이는 무료입장 *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단체관람료가 적용 * 2관 전시 관람료 별도

관람시간 / 10:00am~06:00pm / 목요일_10:00am~08:00pm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21세기 풍경: Emptiness』展은 국내외 작가들이 경험한 자기정체성과 가치관 혼란의 문제를 다룬 『from a distance, keep a distance』展에 이은 성곡미술관의 두 번째 여름기획전으로 첨단과학의 시대, 물질만능의 시대, 개발의 시대를 살면서 만나고 경험하는 황량하고 덧없는, 공허한 심리풍경을 이야기하고자 기획되었다. ● 주지하다시피, 사회가 무차별적으로 개방화되면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풍부한 선택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지만, 사회를 살아나가며 경험하는 이런저런 불균형은 갈수록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 계층간 빈부격차, 소득격차, 교육격차, 지역격차, 정보격차, 노사문제, 세대문제, 여성문제, 노인문제, 전통인식문제, 주택문제, 환경오염문제, 교통문제, 개발문제 등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은 이질감과 그 간극을 따라 잡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양극화되고 있다. 자유경쟁을 표방한 지나친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 증대하는 인간소외현상과 비인간화 현상도 사회통합에 있어 일종의 장애로 이어지고 있다. ● 이러한 가운데 사회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자기 정체성과 가치관에 대한 혼란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더욱 어렵게 하며 비판적 사고의 위축이나 상실을 초래하고 있다. 무분별한 일방적 개발논리는 자연과 인간이 물질문명 앞에서 본연의 개성을 상실하는 슬픈 현실을 노정하게 되었고 도시를 벗어나려는 '이도(移都)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려는 상호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번 전시는 21세기 현대사회의 물리적 풍경을 소개하기 보다는, 이와 같은 사회 변동과 갈등 요인에 대한 지성적, 비판적 관심이 배어 있는 심리적 풍경을 통해 그것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시각적으로 지적하고 모색하고자 한다. ■ 박천남
김기철_수원 화성(창용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94cm_2011 김태준_20080512_C 프린트, 싸이텍_100×113cm_2011

김기철 KIM Ki Cheol ● 김기철의 작업은 삶은 예술에 의하여 이뤄지고, 그러한 그의 삶은 바로 역사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모든 관심은 예술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문제에 있고,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삶을 다시금 살고 있는 이 역사의 길과 하나로 결합시키는 데 있다. ● 근래에 그는 고궁 건축물에 관심이 많다. 그가 건축물을 화폭에 담아내려는 동기는 그 고궁 건축물의 심미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그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에 참여했던 장인들과 일꾼들의 정신과 영혼, 그걸 위해 흘린 땀과 노력들에 관한 관심이며 그것이 역사이며 바로 예술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개개인의 삶과 영혼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지닌 정신과 정성, 피와 땀을 중시하는 것을 자신의 붓의 원칙으로 삼고자 한다. 화폭에 그 건축물을 더듬어 재현하듯 그려내면서 그 건축물이 세워지는 데 따른 정신과 정성, 의지와 노력을 묵묵히 전해 받아내고자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정신과 정성을 쏟은 몸으로 이뤄지는 그림이 자신의 그림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그의 작업을 위해 가감 없이 몸 전체를 던지고 싶은 것이다. ● 김태준 KIM Tae-Jun 2008년 5월 12일 중국 사천성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상자와 재산 피해가 있었다. 작가는 그 다음해에 사천성 네이장 사범대학교에서 1학기에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대지진 1주년 행사가 학교 내에서 있었다. 강의를 마친 후 8월 3일 지진 현장을 답사해서 사진촬영을 하러가던 중 다리가 무너져 내려 원래 처음 지진이 발생한 장소에는 가지 못하고 그 부근의 도시를 촬영하였다. 하지만 이 도시 역시도 일 년이 지났는데도 복구가 진행 중이었다. 다시 그 해 11월 28일부터 3박 4일의 여정으로 사천성 대지진의 첫 발생지인 원촨시를 중심으로 재촬영을 하였다. 이 대지진의 참혹한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일어났던 상황을 바탕으로 현장의 사진과 함께 작품을 제작하였다.
김덕영_PANG_Defensive/Offensive Space_합판, 수성페인트, 검정 핫멜트(검정색 글루)_2011 김주리_휘경 : 揮景-s03_흙, 물_23×750×750cm(유리포함)_2011

김덕영 GIM Deok Yeong ● 김덕영은 겉과 속, 알맹이와 껍데기 같은 양면(兩面) 혹은 이면(異面)에 대한 내용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 'pang' 이라는 타이틀로 겉과 속에 대한 이야기를 내부로부터 반응되어 외부에 드러나는 결과적 이미지인 크랙과 변형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풀어나가고 있다. ● 그는 보이지 않는 곳의 고통, 반응 자체는 언젠가 어떤 현상으로든 보여지게 되며 틀은 무언가에 의해 망가지고 변형되며 새로운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고 사유한다. 그는 보여지는 현상. 즉 결과는 과정을 꼭 담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무언가 벌어지기 전에 관심을 가진다기 보다는 어떤 결과든 보여져야 우리는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왜 그것이 이렇게 벌어지게 되었는지 역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 그는 반응에 대한 결과적 이미지인 크랙과 변형을 이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설치된 결과물로서 지금의 상황과 현상에 대한 원인이나 과정을 사람들이 마음껏 상상하도록 한다. ● 김주리 KIM Juree 김주리는 개인의 시간과 경험이 축적된 사물이나 풍경에 투영되어있는 이 사회의 모습들을 관찰하고 작업으로 옮기고 있다. 휘경揮景 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고 있는 주택 시리즈는 70~80년대에 대량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그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의 곳곳에서 구형 보급주택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옥들에 관한 작업이다. 일정한 비율로 축소 제작된 집은 실제의 주택을 원형으로 하고 있으며 질서 정연한 듯 무질서하고 무질서 한 듯 규칙적인 시대의 정서를 담고자 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마른 점토와 물이 만나면 형상이 파괴되는 물질적 성질을 이용하여 작품의 본래 형태가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흙이 어떤 형태를 가지기 까지는 많은 노동력을 요하지만 그것은 완성됨과 동시에 다시 해체되기 위한 시작점이다. 흙과 물이 만나게 되면서부터 작가는 그 과정에 전혀 개입할 수 없고 오롯이 그 둘의 상호작용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물은 파괴자인 동시에 작품에 생명을 불어 넣어 소멸의 과정을 완성시키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흙과 물은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두 가지 물질이지만 서로 만나게 되면 한 몸이 된다. 물은 흙탕물이 되고 흙은 스스로 단단한 자신에서 물컹하고 유연한 몸이 되어 본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둘은 한 몸이 되어 스스로를 무너트리며 자기부정을 완성한다.
김해진_버려진 풍경_시멘트_가변크기_2011

김해진 KIM Hae-jin ● 항상 무언가에 조급하고 불안한 현대인의 모습을 무너진 건물과 버려진 풍경을 통해 허무한 삶과 그 속에 나를 발견한다. 2009년이 끝나가던 해 부산 대신동에 있던 어느 마을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나지막한 집들, 과일 파는 아저씨와 처마 밑 그늘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바람에 여기저기 움직이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였다. ●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네를 또 다시 지나가게 되었다.하지만 그전의 모습과 달리 집들은 무너져 있었고 콘크리트 사이사이마다 철근이 나와 있었으며 생활용품들이 쓰레기 마냥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콘크리트 무더기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그 마을에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예전에 정겨운 마을의 추억들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마을과 함께 해온 나무와 전봇대들은 맥없이 쓰러져 있으며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아무생명조차 살지 않을 것 같은 황폐한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물론 개발하면서 나지막한 집들이 아파트가 되고 그 마을이 새롭게 마련되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겠지만 왠지 모를 삭막함이 느껴졌다.
이주형_Cut Your Hair_캔버스에 유채_227×182cm_2011 나현_이주와 정주_잉크젯 프린트_214.6×146cm_2010

이주형 RHEE Joo-Hyung ● 나의 신체는 성장을 멈추었다. 다만 머리카락만이 계속 자라날 뿐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정신도 성장을 멈추었다. 다만 두려움만이 자라날 뿐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머리카락이 나의 신체를 뒤덮듯, 나의 정신을 뒤덮는다. 두려움은 피폐해진 나의 삶의 조건들과 그에 따른 자신감의 상실에서 기인한다. 나는 사랑과 행복, 돈과 여유, 성취와 우정 따위의 인간들이 중요시하는 덕목을 추구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느끼며, 그것은 나만의 은밀한 덕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생성된 두려움은 나의 머리에서 벌레가 자라나게 만들기도 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구멍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정체 모를 무엇인가와 공생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작업이 이러한 나의 현재를 설명해 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결합하는 일 없이, 즉 생식 없이 단독으로 발아하는 무성적인 생식세포인 포자처럼, 나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원한다. (*포자(Spore): 무성적인 생식세포로 보통 홀씨라고도 한다. 다른 것과 결합하는 일 없이 단독으로 발아하여 새로운 개체가 된다.) ● 나현 NA Hyun 최근 한국 사회 내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이주민의 증가와 이에 따른 다양한 문화의 유입 그리고 다원화되어가는 문화적, 사회적 변화에 따른 갈등과 충돌의 현상들에 주목하고 2008년부터 보고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단일민족임을 자부하고 어느 면에서는 농도 짙은 민족적 배타성을 내재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로 한반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며 복합적인 문화와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풍경을 하나의 확장된 사건으로 바라보고 그 상대항으로서 환원적 사건을 구성하였다. 한민족의 시원이자 제로 포인트(Zero Point)로 알려진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를 답사하고 그곳에서 한국을 바라보고 인식한다. 바이칼 호수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자 역사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원시시대 맘모스 스텝(Mammoth Step)과 염전, 철새, 고려 이주민을 프로젝트에 불러들인다.
박성훈_In the Prologue of the End_원화 드로잉_2006

박성훈 PARK Sung-Hoon ● "등을 지고 앉아 있는 나는 또 다른 나를 꺼내어서 나와 대화를 한다. 내 안의 꺼내어진 나는 끊임없이 핍박하고 나를 꾸짖는다. 꺼내어진 나는 10년전의 나의 모습이었다가, 어릴 때의 나의 모습 그리고 몇 년 전의 나로 점점 더 바뀌어가고... 마주한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추억케 하면서, 나를 꾸짖는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너는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한다. ●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 또한 나이다. 그는 아주 냉철하고 명료하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이성적이다. 실제와 진실을 제시한다. 나는 그 실제와 진실들을 기억한다. 나는 개인의 개별성을 떠올리면서 나의 주관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를 마주한 나는 지금 기쁘다, 슬프다, 그리고 외롭다. 그는 나의 지난 감성들이 솔직한 표정들과 말들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 나의 일련의 자화상 작업들이 독백이었다면, 이제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려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감지한, 가치와 의미의 창조자가 바로 나임을 확인하려 한다. 이제 나는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실존의 단계에 와 있음을 느낀다. 이런 자아인식이 내가 가진 자유와 책임 그리고 고뇌를 투명하게 해주길 바라면서..." (작가노트 중)
이정후_유연한 풍경_나무, 스티로폼, LED_2011 황지희_신문을 구토하다_신문지_단채널 영상_00:05:12_2011

이정후 LEE Jeonghoo ● 여행지를 방문했을 때 기묘하게 느껴지던 그 공간에 대한 나의 느낌과 기억들은 그 장소의 존재를 되묻게 되고, 나로 하여금 그 공간들을 재구성 하도록 이끈다. 기억 또는 경험과 상상의 연결고리들은 쉽게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공간 그 자체는 기억이 시각적 매체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무엇들로든 덧발라지는 대상들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나타내는 오브제나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덧붙여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이 공간/순간에서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사다리를 통해 기억의 과정처럼 다시금 연결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기억/경험은 존재를 획득하고 비로소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 기억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 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을 복합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장소에서 스쳐 갈 법 했던 기억 속 풍경의 모습은 관객과 함께 나의 기억 속 모습으로 변모하여 다시 작은 동네를 만들고 그곳을 유영한다. ● 황지희 HWANG Jihee 신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걸친 광범위한 우리네 세상 속 이야기들이 그득하다. 신문을 구독한다는 것은 곧 그런 이야기들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의 표현일 것이다. 신문을 구토하는 것은 그런 것에의 무관심에 대한 반성이다. 당신은 신문을 구독하십니까? 구토하셨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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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꺼내야 할 것들의 세계


정철규展 / JUNGCHOULGUE / 鄭哲奎 / painting 2011_0907 ▶ 2011_0930 / 일요일 휴관


정철규_차가운 바람을 삼키며_캔버스에 유채_60×9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정철규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웅 갤러리 WOONG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96-4번지 삼경빌딩 B1 Tel. +82.2.546.2710 www.woonggallery.com


그리고 꺼내야 할 것들의 세계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고 서랍 속에 있다. 풍성한 포도를 들고 있다. 앙상한 포도 가지가 있다. 노란 풍선이 날아다닌다. 노란 전구가 어딘가를 비춰주고 있다. 포크레인은 이파리 없는 나무를 쓰러뜨린다. 산 너머에서 연기가 타오르고 있다. 어두운 바닷가에 축구골대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은 티브이가 있다. 그리고 무전기가 있다. 마이크가 있다.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를 화초가 정 중앙에 놓여있다. 파랑새가 무엇인가를 물고 날아왔다.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의자가 있다. 그 의자아래에서 자라나는 화분에 발 담은 식물이 있다. 흰 천을 뒤집어 쓴 무언가가 있다. 그곳을 빠져나가는 자동차가 있다. 저 멀리 우산이 놓인 채 뛰어내렸을까? 물웅덩이는 튀어 올랐다. 눈물을 머금은 코끼리가 있다. 소리를 머금은 아니, 이제는 잃은 앵무새 한 마리가 있다. 그리고 또, 음~ 그리고 지금 티브이에서는 앞을 보지 못한 채 감동이라는 것을 들려주는 한 소녀가 근근이 서 있다.
정철규_들을 수 없는 구절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1
정철규_이제는 쉬어야 할 OO시간_캔버스에 유채_60×90cm_2011
정철규_달고 밝은 바람이 멈추는 날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1
정철규_나무는 고백해_캔버스에 유채_60×90cm_2011
정철규_품속에서 데려오는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1

항상 화면은 현재 진행형이다가 멈춰진, 누군가가 멈추어 버려 고정되어 있지만, 움직일 것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또 무엇을 그렇게 말하고 싶은지 소리 없이 소리 지르려 하고 있다. 그곳에는 많은 것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게 지친 듯 혹은 격렬하게 보여주려고, 들려주려고 한다. 때로는 조용히 찾아가 속삭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는 말은 거짓이다. 거 짓 말 일 까? ● 크게 한 숨 쉬며 미친 듯이 그리고 귀찮게 서랍을 꺼내어 보여주려 한다. 다시 서랍을 닫았다. 누군가 열어 볼 수 없도록 굳게 닫고 굳게 닫고 확인하고 확인한다. 다시 서랍을 열었고 종이를 꺼냈고 온갖 이야기들 속에 등장하여 속이 내 비춰지는 옷을 입고 수줍게 춤을 추고 있다. ● 사라진 것을, 지나가 버린 것을,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을,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것을, 그것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조차 느낄 수 없는 것을 찾으려 헤매고 헤매다 지쳐버린다. 다시 서랍을 열고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고 수줍게 춤을 추다 딱 걸려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것 역시 안이 들여다보임을 알고나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 많은 것들이 섞여 뒹굴고 있다.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누군가가 들여다볼지 모를 어둠 속에서 팽팽하게 살아 숨 쉬며 내 서랍 속 그것들은 속이 내 비춰지는 옷을 입고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 ■ 정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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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속의 일탈


이현열展 / LEEHYUNYEOL / 李玄烈 / painting 2011_0907 ▶ 2011_0920 / 추석 휴관


이현열_한강로맨스2_한지에 수묵채색_116×9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현열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 추석 휴관

미술공간현 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www.artspace-hyun.co.kr


풍경 속의 일탈 ● 이현열은 실경을 바탕으로 한 풍경화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직접 화첩을 들고 산, 바다. 도시 곳곳의 풍경을 관찰하며, 스케치한 풍경들을 한지에 수묵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작품은 전통적 풍경이기보다는 그 풍경 속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의 풍경화 속에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시선을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현열_남해1 / 남해2_한지에 수묵채색_160×85cm_2011
이현열_울산바위_한지에 수묵채색_80×200cm_2011

이번 전시 「풍경 속의 일탈」를 통하여 작가는 풍경화에 현대적인 아이콘을 가미하여 새로운 일탈을 꾀함으로 자칫 평범하게 보여줄 수 있는 풍경화를 색다르게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작품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중에서 「남해」 시리즈는 여름 남해바다의 푸른색을 금방이라도 옮겨 놓을 듯 시원한 느낌을 주며, 「한강로맨스」 시리즈에서는 산수가 세로의 화폭에 길게 배치하여 표현함으로써 감상의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작가는 직접사생을 통해 보고 느낀 감정을 오버랩 시킨다. 현실과 이상을 하나의 화면에 보여줌으로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나 무릉도원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른다.
이현열_한강로맨스3_한지에 수묵채색_130×163cm_2011
이현열_한강로맨스1_한지에 수묵채색_130×163cm_2011

작품 안에 인공적인 요소가 담긴 현대적 풍경화를 통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다리, 터널 등의 가공된 이미지들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산, 강, 연기, 구름, 바람 등의 자연과 동물과 인간의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는데 마치 커다란 테마파크를 보고 있는 느낌을 자아내고 수많은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세계는 최근 각광받는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림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냄으로 감상자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타지의 그림 세계로 소통의 고리를 만들어 내는 게 이번 전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 이다.
이현열_어느행주산성_한지에 수묵채색_163×260cm_2011
이현열_포천에서의 하루_한지에 수묵채색_80×100cm_2011

지금까지 수묵화는 전통적인 풍경화를 주로 표현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 속의 현대의 인공적인 요소를 통해 보는 이가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의 다른 차이를 주고 자연만을 표현하는게 아닌 자연과의 인간적 요인들이 함께 어울러져 공존한다는 의도를 표현한 현대적 풍경화로 새롭게 평가를 받고자 한다. 단순히 어렵고 관객이 접근하기 힘든 현학적인 작품보다는 이현열의 작품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가미된 작품이 관객에게 좀 더 어필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대중이 이해하기에 어렵기만 한 작품은 그들에게 높게 평가받기도 힘들 것이다. 미술작품(소비재)도 어차피 관객(소비자)이 없다면 아무의미가 없는 것이다. 자연과 문명과의 공존뿐만 아니라, 관객과 미술장르의 공존을 꾀한 작가의 배려가 이채롭다. ■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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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s from the Ordinary Days


이환권展 / YIHWANKWON / 李桓權 / sculpture 2011_0908 ▶ 2011_1003


이환권_Rocky_합성수지, 스틸_201×23×40cm(Rocky), 344×46×15cm(meat), 447.5×100×90cm(installation)_2011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625b | 이환권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3_금요일_05:00pm

기획 / 가나아트

관람시간 / 10:00am~10:00pm

가나 컨템포러리 GANA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98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가나아트는 대상의 왜곡을 통해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 온 조각가, 이환권(1974-)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길게 늘여지거나 눌려진 영화 이미지에 대한 과거의 시각적 경험을 3차원 조각으로 재현해왔다. '늘어난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이 만들어낸 그의 작업은 국내외 미술계의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환권_Django_합성수지, 스틸_188×122×49cm_2010
이환권_Django_합성수지, 스틸_188×122×49cm_2010_부분
이환권_Rocky_합성수지, 스틸_201×23×40cm(Rocky), 344×46×15cm(meat), 447.5×100×90cm(installation)_2011
이환권_Rocky_합성수지, 스틸_201×23×40cm(Rocky), 344×46×15cm(meat), 447.5×100×90cm(installation)_2011

이번 개인전에서는 'Blade Runner', 'Rocky', 'Trinity' 등 국내전시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무비시리즈(Movie Series)의 신작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무비시리즈는 과거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선택하여, 이를 자신만의 독특한 어법으로 복원시킨 작업들이다. 이때 정지된 영상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대상의 움직임, 시간의 흐름, 대상을 둘러싼 공간 등을 재현해내기 위해, 작가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수많은 개별장면들을 편집하여 설득력 있는 입체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2차원의 영상화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조각으로 재현해내는 그의 작업은 작품 주변을 서성이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직접 영화 속 세계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실제와 가상 사이에서 혼동하게 되는 관람객은 생경한 느낌을 마주함으로써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2차원 이미지의 실체를 인식하게 된다.
이환권_A Leather-Clad Woman, Passerby (Blade Runner-Part)_228×31.5×29.5cm_합성수지_2011
이환권_A Leather-Clad Woman, Passerby (Blade Runner-Part)_228×31.5×29.5cm_합성수지_2011

본 전시는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대미술 속에서 전통조각의 맥을 잇는 동시에 창의적인 표현방법으로 특히 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환권의 최근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제작공정에서 발견되는 디지털 기술과 이환권 작품만의 특별한 시각적 효과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시각환경을 담고 있는 동시에,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는 동시대 한국조각의 모습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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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꿈'


인권재단 사람 기획展 2011 2011_0908 ▶ 2011_0919 / 9월12일 휴관


김용태_DMZ_C프린트_160×378cm_198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요배_김봉준_구본주_김용태_김정헌_노순택_류연복_류준화_민정기 박불똥_박영균_박종해_손장섭_신영복_신학철_오 윤_이윤엽_이응노 이종구_이철수_임옥상_최병수_최평곤_홍선웅_홍성담_황재형

후원/협찬/주최/기획 / 인권재단 사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9월12일 휴관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제1전시장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화가는 화폭에 씨를 뿌리고, 땀으로 물감을 풀어내 길을 내고, 고독으로 환을 치는 일을 거듭한 뒤라야 가을걷이를 할 수 있다. 안료가 잘 녹지 않으면 눈물을 섞어야 한다. 붓이 짧을 때는 머리털을 뽑아 심는다. 바람이 불지 않은 날에는 한숨을 길게 내뿜어 산과 골과 능선이 꿈틀거리도록 이내 두어야 한다. 조각가의 칼끝 또한 봄날 쟁기질을 닮을수록 생기를 얻는다. 모든 캔버스는 작가에게 들이자 대지다. 대중은 현실의 대지에서 살아간다. '대지의 꿈'은 21세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현재와 꿈에 관한 서사적 화폭이다. 태백에서 제주까지, 갑오년 동학에서 대추리, 이태 전 용산참사까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한국의 서사적 조형언어는 대지 어디쯤에 이르렀을까. 그 대지의 그늘진 곳, 가장 후미진 구석에 깃든 존재들이 있다. 인권은 거기에 사람꽃을 피우고자 하는 일이다. 이들이 모여 일꽃 문화꽃을 창조해내는 집을 짓고자 한 지는 오래 되었다. 이들 또한 '대지의 꿈'을 이뤄내고자 하고 있다. ● '대지의 꿈'은 26명 화가, 인권재단 사람 등 여러 대지에 나타난 손길과 숨결과 꿈으로 비손하여 여기에 이르렀다. 시대의 캔버스 안쪽, 그 대지로 손님들을 부른다. ■ 서해성

구본주_갑오농민전쟁_브론즈_2,600×1,200×2,670mm_1994(2004년 브론즈 캐스팅)
박불똥_코화카염콜병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30cm_2010

실천적 몽상가들의 아름다운 동행, 대지의 꿈 ●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해온 인권운동단체인 "인권재단 사람"과 한국의 대표적인 리얼리스트 예술가들이 만났다. 삶의 예술, 진실의 예술을 추구하는 리얼리스트들의 꿈은 "인권재단 사람"이 걷고 있는 사람 사랑의 큰 길과 맞닿아있다. 이 전시 『대지의 꿈』은 오랜 시간동안 예술과 사회, 예술과 인간 삶의 접점을 모색해온 예술가들이 "인권센터 사람"의 설립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마음을 모은 연대의 실천이다. 26인의 참여작가들은 이 전시를 통해 인권센터 설립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나아가 물적 토대 구축을 돕기 위해 자신의 대표작들을 출품했다. 인권운동의 지평 확산에 공감하는 리얼리스트 예술가들과 "인권재단 사람"의 실천가들이 함께 꾸는 꿈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이들은 대지를 꿈꾸는 현실 지평 위의 몽상가들이다. 여기 어머니 대지를 꿈꾸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 ● 나아가 이 전시는 26인의 참여 작가 작품을 통해서 한국의 리얼리즘 시각예술의 면면을 가늠해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다수는 '현실과 발언'이라는 대표적인 리얼리스트 그룹에서 활동했다. 또한 '광주자유미술인협회', '임술년', '두렁' 등의 그룹 활동을 통해서 민중미술 운동을 주도해온 대표적인 작가들도 많이 참가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시의 출품작들이 회고전 분위기의 구작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이응노나 오윤, 구본주 등 몇몇 작고 작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근작들을 출품했다. 따라서 이 전시는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의 리얼리즘 예술가들의 현재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 전시는 민중미술 계열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한국 리얼리즘 시각예술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긴 세월동안 한결같이 현장을 지키며 인권운동에 투신해온 활동가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전시에 참가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가치지향을 나누는 실천이다. 이 전시는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후배세대들을 통해서 이들이 이어오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최평곤이나 류준화, 박영균, 이윤엽, 노순택 등 40대 작가들의 작품세계는 민중미술 이후의 리얼리스트들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해준다. 이들 젊은 세대 리얼리스트들이 선배 세대들과 공유하는 지점은 민중미술이나 리얼리즘으로 분류되는 시각예술 흐름의 동질성만이 아니다. 이들이 인권운동가들이나 선배 세대 리얼리스트들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시각예술 내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그 외부와의 관계, 즉 삶의 지평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모색하며 나눔의 정신을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신학철_한국현대사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출품작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유형별로 나눠보다면, 가장 눈에 띄는 작품들은 '뜻을 담은 풍경화들'이다. 강요배와 김정헌, 민정기, 손장섭, 이종구, 황재형 등은 민중미술 1세대로서 현재까지도 꾸준히 풍경을 담는 회화작업을 통해서 예술세계의 일관성을 지켜오고 있는 예술가들이다. 금강산 풍경 연작을 출품한 강요배가 특유의 거칠면서도 깊은 서정성으로 풍경의 단면을 포착했다면, 민정기의 회화는 땅과 삶의 정서를 단단하게 담아내고 있다. 김정헌의 회화는 유머와 냉소의 서사를 함께 담은 정치적 풍경이다. 손장섭은 꿈틀거리는 붓질의 울림으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일군 풍경화를 출품했다. 이종구의 경주남산 풍경은 검푸른 하늘과 달빛, 그리고 산야의 선율 속에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담았다. 황재형은 태백에서의 삶의 체험을 토대로 한 붓질과 색채의 맛이 잘 살아있는 회화를 출품했다. ● 사물이나 상황을 초현실적인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들로는 김용태와 임옥상, 박불똥, 박종해, 신학철 등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김용태는 미군부대 준변의 기념사진들을 모아 분단현실을 속살을 드러낸 기념비적인 작품 「DMZ」를 선보인다. 임옥상은 코나 귀와 같은 인간신체의 부분과 꽃 이미지를 결합한 근작을 출품했다. 박불똥은 코카콜라와 화염병을 결합한 자신의 대표적인 사진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옮겨 그린 작품을 선보인다. 박종해는 특유의 엷은 수채화로 거대한 구조 속에서 꿈틀거리는 인간존재를 담고 있다. 4대강 공사 현장과 쇠고기파동 등의 왜곡된 현실을 합성한 신학철의 회화 또한 동시대의 난맥상을 집약한 초현실의 세계이다. ● 민중미술의 중요한 화두였던 전통적 미감의 동시대적 재생이라는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도 많다. 이응노와 오윤, 신영복, 김봉준, 홍성담 등의 공통점은 모필이나 수묵, 채색 등의 전통을 각자의 어법으로 재생했다는 데 있다. 이응노의 1987년 작 「군상」은 사회변혁의 에너지가 넘쳐났던 1980년대의 거리 풍경을 역동적인 운필로 표현한 작품이다. 오윤의 걸개그림 「통일대원도」는 전통회화와 현대미술을 접목하고자 했던 그의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신영복은 이번 전시에 출품하기 위해 새로 쓴 서예작품 「세계인권선언문」을 선보인다. 김봉준은 붓그림의 맛을 살려 글과 그림을 한 폭에 담아 복지의 시대정신을 표현했다. 홍성담은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는 도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회화 「도시 텃밭 농부」를 출품했다.
오윤_통일대원도_유화(걸개)_349×138cm_1985

민중미술 목판화의 옛 기억과 더불어 동시대의 감성을 살린 근작들도 여러 점 있다. 이 작품들은 민중미술의 시대 이후 지금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목판화라는 장르의 독특한 매력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게 해준다. 80년대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정서적 공감대와 에디션의 미덕을 가진 목판화라는 장르의 특성은 이번 전시가 품고 있는 나눔과 연대의 정신과 잘 맞아 떨어진다. 류연복과 이철수, 최병수, 황선웅 등이 그 작가들이다. 류연복은 목판의 질감과 목판각의 맛을 살린 대작목판화를 출품했다. 이철수는 목판각의 묘미와 화면구성의 절제미, 그리고 서사 구성의 힘을 겸비한 목판화 작품 여러 점을 출품한다. 최병수는 심플한 형상을 목판화의 맛과 결합한 작품 두 점을 선보인다. 홍선웅의 연작 두 점은 문자와 선묘, 색채를 결합하여 독도의 서사를 담고 있다. ● 민중미술의 시대 이후의 리얼리스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작업들 또한 한국 리얼리즘 시각예술의 지평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다. 최평곤은 거대한 대나무조형물을 통해 공공장소를 시각적으로 환기하면서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구본주의 기념비적인 대작 갑오농민전쟁은 1980년대의 사회변혁 에너지를 대변하는 걸작이다. 류준화는 문자도와 만화 캐릭터 등의 다양한 도상들을 차용해 독창적인 스타일과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박영균은 동시대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만화와 인형이 등장하는 팝아트 양식으로 보여준다. 용산참사 현장을 재구성한 이윤엽의 목판화는 현장예술가의 면모를 확인하게 해준다. 촛불의 현장을 담은 노순택의 작품은 기록의 힘과 표현의 묘미를 절묘하게 공유하고 있다. ●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여기 사람 있다". 20년 세월의 간극을 넘어 아직도 이 두 문장을 떨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1980년대에 들었던 정태춘의 노래를 21세기 동시대에 이윤엽의 걸개로 다시 보아야만 하는 현실이다. 둘 사이에는 청각언어와 시각언어라는 기표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속뜻은 같다. 노래와 그림뿐만 아니라 시와 춤 등 우리 시대의 수많은 예술은 이렇듯 척박한 현실을 담아왔다. 리얼리스트의 이름으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서서 현실 너머 초현실을 노래하는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인권운동의 실천가들 또한 현실의 지평에서 서서 현실 너머의 탈현실의 세계를 추구한다. 예술가들과 인권운동가들에게는 공히 실천가로서의 면모가 있다. 이들은 늘 연대해왔다. 담론적인 실천행위인 예술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실천행위인 인권운동과 동행해온 짧지 않은 역사가 이렇듯 가슴 따뜻한 만남을 낳았다. 여기 어머니 대지를 꿈꾸는 실천적 몽상가들의 아름다운 동행이 있다. ■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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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REAK: Young Chinese Artists


중국 젊은 작가 그룹展 2011_0908 ▶ 2011_1120


Li Hui_V_레이저, 철, 연기, 미러_가변크기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천안 / 程然Cheng Ran_?可Chen Ke_李?Li Qing_李?Li Hui 高磊Gao Lei_??公司 Made In_??Sun Xun 베이징 / 程然Cheng Ran_蔣?奕 Jiang Pengyi_李?Li Qing 李?Li Hui_宋琨 Song Kun_??Sun Xun 王郁洋 Wang Yuyang_?俊勇 Wu Junyong ?珩 Yan Heng_袁? Yuan Yuan

2011_0908 ▶ 2011_1030 관람료 / 천안_성인 3,000원 / 학생 2,000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ARARIO GALLERY CHEONAN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354-1번지 Tel. +82.41.551.5100 www.arariogallery.com

2011_0910 ▶ 2011_1120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갤러리 베이징 阿拉里?北京 Jiuchang Art Complex, Beihuqu Road, Anwaibeiyuan Street, Chaoyang District, Beijing, 100012 P.R. CHINA Tel . +86.10.5202.3800 www.arariobeijing.com


아라리오 갤러리는중국의 젊은 작가 단체전인 『DAYBEARK: Young Chinese Artists 』를 천안에서 2011년 9월 8일부터 10월 30일까지, 베이징에서 9월 10일에서 11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이 전시는 아라리오 갤러리 베이징과 천안 스페이스 전체 1,730 평방 미터에 이르는 공간에서 진행되며, 1970년에서 1980년대 사이에 태어난 열세 명의 신진 중국 작가들의 대표 작품 70 여 점을 전시하게 된다. 참가작품들은 회화, 드로잉, 사진, 영화,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설치 등의 분야를 포괄한다.
Gao Lei_NS24_혼합재료_300×600×280cm_2011_부분
Made In_Flying Dragon_메탈, 실스 스타킹_26×42×13cm_2010
Sun Xun_21 grams_종이에 파스텔, 프린팅_43×55×3cm_2010_부분

아침의 첫 햇살을 뜻하는 '여명(Daybreak)'은 어둠을 헤치고 다시 태어남과 부패의 사라짐을 표상한다. 예술의 긴 역사에서 보듯 상당수의 가장 강렬하고 지속적인 예술 업적은 그 작가의 활동 시기 중 초기에 이룩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은 전시명이다. 참가 작가들 또한 역사의 궤적을 더듬고 있다. 중국의 현대 미술을 국제 미술계의 뇌리에 각인시킨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문제점들이나 인간 사회 전체의 증후들에 의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역사를 새로이 창조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을 꾀하기보다는 역사의 흐름을 따라 쌓인 다양한 문제들과 현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발판 삼아 현대 미술의 동인으로 작용하는 세대 간의 역학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참가 작가들의 세대는 아직 개인주의, 소비주의, 도시주의 등의 몇몇 개념들을 넘어선 그 어떤 특성을 아직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지금도 중국 현대 미술의 시각 예술 문화를 활발히 탐사하고 있다. ● 본 전시 '여명'이 현대 중국의 젊은 세대에 속하면서도 그들이 직면한 문제들과 미학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취하는 13명의 작가들이 출품한 72점의 작품을 통해 신선한 세계관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아가 전시를 통해 현대 중국의 미술사를 그려내는 동시에 중국 현대 미술의 미래를 향한 미학적 여정을 제시하고자 한다. ■ 아라리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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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의 투구 The Casque of god




김영균展 / KIMYOUNGKYUN / 金榮均 / sculpture 2011_0914 ▶ 2011_0928



김영균_Lakshumi_합성수지_56×43×23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영균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8:00pm

텔레비전12갤러리 TELEVISION 12 GALLERY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0-12번지 2층 Tel. +82.2.3143.1210 www.television12.co.kr



기이한 이방인들 ● 최근 조금은 과장된 제목으로 번역된 「비주얼 컬처의 모든 것(An Introduction to Visual Culture)」의 저자 니콜라스 미로조에프는 이렇게 말한다. "신체는 다이어트, 보디빌딩, 레이저수술, 약물에 의한 뇌작용 변환 등 여러 수단들로 변형이 가능하다. 어느 누구도 순수하게 자연적인 신체로 살 수는 없다. 한편 소설가이자 문화사가인 마리나 워너는 "가끔은 정체성이라는 것이 매우 작은 것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 말하자면 우리의 정체성은 종종 아주 작은 것, 또는 매우 익숙해서 인식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왔던 것, 그리고 문화적이고 인공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소리다. 이런 단상(斷想)에서 김영균의 작품을 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변화된 시각문화와 현대미술의 현상이나 주제들을 음미하는 것이다.
김영균_Dragona_합성수지_60×50×50cm_2010

1 ●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는 신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거기엔 해프닝, 플럭서스, 행위미술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퍼포먼스의 한 지류로서 인체를 매체나 수단으로 한 활동이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자신의 몸을 폭력적으로 다루고, 원시부족의 문신과 신체변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사유를 적용해 나갔다.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상당 부분은 정체성의 문제와 몸 또는 신체라는 주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보았다. ● 김영균의 작품들은 그러한 흐름의 최신 경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작가의 디지털이미지는 그로테스크한 관절과 마디를 지닌 몸이라는 작가 특유의 해석과 변형을 통해 소위 근대와 계몽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해체하는 진영에 속한다. 여기서 인간의 몸은 나이, 젠더, 인종처럼 우리 자신과 타자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여러 시각적 상징이나 기호로 이해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난 시기 인간과 인간이라고 정의하는 정체성이 사실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주려고 한다. 거기에 주체와 타자의 문제가 부상하면서 타자로서 성과 신체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타자로서 신체는 다양한 해석과 갈래로 표현되어 왔고, 점차 불확실한 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성 등이 속속 등장한다. ● 그런가하면 현대를 새로운 문화적 고딕(Gothic)으로 이해하는 캐서린 스푸너의 말처럼 기형, 흉터, 병든 살, 괴물 같은 존재 등을 전면에 제시함으로써 포스트모던시대의 정보사회에서 탈물질화 되어가는 신체의 물질성을 복귀시키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신체를 혐오하고 수정 개조하고 인공적으로 구경거리로 만들고 마침내 제의의 장소로 만든다. 그렇게 신체에 집착한다. ● 김영균의 초기 작업은 실제 사람의 몸을 마치 관절인형처럼 변형한 이미지였다. 그 후 점차 다양한 형태의 변형된 인체를 조각하고 이미지화하여 현재는 자연계의 곤충과 벌레의 특징이 인간의 신체와 결합한 독특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의 이미지들을 보면서 기원전 2세기 중국의 칭하이 성에 거주했던 고대의 저족(?簇)을 연상하기도 했다. 저족은 오래전 오호십육국시대의 오호(五胡)의 하나였던 종족으로 벌레를 연상하는 의복을 입었다거나 또는 벌레를 숭상했다는 설이 있다. 어째든 그의 작품들이 현대 유전자조작이나 변이 따른 돌연변이, 변태하는 몸, 새로운 신체로 진화하는 인종 등과 관련되지만 동시에 매우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문화적으로 변형된(오염된) 인간을 생각할 수도 있다. 역사는 곧 변화를 의미하고 문화는 복잡성과 다양성을 뜻하니, 무엇이 되었건 김영균의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이미지가 현대 시각문화의 다수성, 복수성, 복합성, 혼돈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그런 것들이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다.
김영균_Avatar_합성수지_70×20×20cm_2010

2 ● 김영균의 이미지의 계보를 생각해보면, 프랑스의 신체미술가 오를랑, 크리메스터 시리즈로 잘 알려진 미국의 메튜 바니, 「돌연변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미국의 폴메카시 등을 떠올릴 수 있고, 기계와 몸을 결합한 퍼포먼스로 유명한 오스레일리아의 스텔락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으로 원화가인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대가 HR기거를 연상할 수도 한다. 이들은 영화나 대중문화를 통해 현대미술과 시각문화의 경계지점에 있는데 김영균의 이미지들 또한 그런 성격을 지닌다. 마치 영화 은행나무 침대나 중천에서 시도되었던 CG와의 관계처럼. ● 그의 신화적이면서도 기이한 제의적 신체들은 최신의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시간을 거꾸로 돌려 신들의 세계에 속했던 과거 원시 인류의 정신성을 은유하고 있다. 존재의 근원으로 신과 인간과 짐승이 하나로 융합된 존재를 구상한다. 굳이 스핑크스나 메두사를 떠올리지 않아도 김영균의 작품들이 신화성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새로운 중세가 대두된다는 가설이 등장한다. 통제를 벗어난 기술의 발달과 그 영향은 문명 이전 인류가 겪었던 통제할 수 없는 신비와 공포로서 자연과 신의 권능을 떠올리는 것이다. ● 여기서 우리는 이 제의성이 지닌 현대의 정치성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대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 아프리카 부족들이 '제의(祭儀)'로서 저항했던 것이나, 우리의 대한제국시기 후천개벽을 외치며 종교의 힘으로 제국주의열강에 저항했던 천도교의 예를 말한다. 제의가 단지 신화와 종교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더욱이 정치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미학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해석하기도 한다. ● 김영균의 신화적이며 제의적이 형태들이 꼭 정치적이라거나 미학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21세기로 들어서 이제 10년이 지난 시기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시각문화의 변화 속에서 그의 작품들이 은유하는 것들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매우 다양한 갈래로 전개되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조형예술로서의 전통적인 형상성을 견지하면서 말이다. ● 다시 김영균의 작품의 조형적 특징으로 돌아와서 보면 그의 신체들은 더 이상 우리가 배워온 정상적인 인간의 것이 아니다. 낯선 감각과 경험, 그것은 비정상이며 초현실적인 존재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초현실적 기이함과 그 이면의 정신성, 전통적인 젠더와 섹스를 넘어선새로운 존재, 추측컨대 새로운 주체이자 정체성의 담지체이다. ● 그 이미지들은 공교롭게도 시각문화를 포함해 첨단 과학문명시대의 인간의 정의와 인간의 신체가 급격하게 변하는 시기에 걸쳐있다. 세계를 돌며 『인체의 신비』전으로 악명을 날리는 군터 폰 하겐스 박사나 섬세하며 지적인 사진가 위트킨의 재조립된 신체들처럼 진짜와 모조(가짜)의 경계가 허물어진 신체는 너무도 불길하고 리얼하다. 육신을 초월하려는 보편적 욕망이 드러나는 그의 신체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오브제이로서 매우 이미지적이며 동시에 대단히 촉각적이다. 김영균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자유로운 예술가들은 새로운 형식과 형태를 창조하면서 자신을 새로운 주체로 변형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것은 조형의 문제를 넘어 고유한 미적 의미를 경작하는 것이다. ■ 김노암
김영균_Glance_무발포우레탄_43×30×24cm_2010


텔레비전12 갤러리에서는 9월 14일부터 9월 28일까지 김영균 작가의 세번째 개인전 『신(神)의 투구』전이 열린다. 2008년 SeMA 신진작가 선정 및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 7기 입주작가로 활동해온 김영균 작가는, 2009년 6월 유엠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자신의 신체를 중심으로한 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신체를 각도별, 부분별로 촬영하고, 각 부분을 해체한 뒤 자신의 모습을 신의 형상으로 변형시키고 재구성한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연장선으로 사진작업 속 신의 형상을 섬세하고, 강렬하게 표현한 부조,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 김영균은 초월적 존재인 신의 형상에 자신을 투영하고, 벌레형 투구라는 방어기제로 자신을 위장하여 두려움의 대상을 정복하고자 한다. 벌레공포증이 있는 작가에게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벌레형 투구는 두려운 대상에 대한 자기 방어 또는 과시의 수단이다. 단순히 벌레를 재현하기 보다 벌레를 뒤짚어 쓴 인물을 통해 두려운 대상을 앞에서 제거하고 정복하고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충격과 공포로부터 해방되려는 인물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 김영균의 작업은 방어기제가 위장이라는 형태로 시각화되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방어기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에 적응하도록하여 심리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갈등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고 관점만 바꾸는 방법을 사용하여 되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을 연상시키는 김영균 작가의 입체작품은 초월적 존재인 신의 형상에 자기방어, 위장의 도구인 투구를 얻음으로써, 현실과 사회적 압박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솔직한 내면보다는 강한 모습으로 위장하고 과시하며 살아가는 나약한 일면이 숨어있다. ■ 텔레비전12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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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ay




장-미셸 오토니엘展 / Jean-Michel Othoniel / mixed media 2011_0908 ▶ 2011_1127 / 월요일 휴관



장-미셸 오토니엘_커다란 두 개의 라캉의 매듭 The Great Double Lacan's Knot_ 거울 유리, 금속_210×396×186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삼성문화재단_삼성생명_퐁피두 센터 후원 / 프랑스문화원(French Institute)

관람료 일반 5,000원(단체 3,000원) 초중고생 3,000원(단체 2,000원) * 20인 이상 단체 관람료 적용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PLATEAU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150번지 삼성생명빌딩 1층 Tel. 1577.7595 www.plateau.or.kr



삼성미술관 플라토는 9월 8일(목)부터 11월 27(일)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명성의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 (Jean-Michel Othoniel)의 회고전『My Way(마이 웨이)』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1년 3월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프랑스 퐁피두 센터 전시에 이은 세계 순회전의 첫번째 전시로, 서울 삼성미술관 플라토 이후 도쿄의 하라 현대미술관, 그리고 2012년 여름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장-미셸 오토니엘_라캉의 매듭 Lacan's Knot_거울 유리, 금속_150×135×50cm_2009
장-미셸 오토니엘_소원을 비는 벽 The Wishing Wall_Wall, phosophore, matches_가변 크기_2011

파리 루브르박물관 지하철역 입구에 설치된 유리구슬 덮개로 만든 왕관 모양의 조형물 「야행자들의 키오스크」(2000)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오토니엘(1964년, 프랑스 생테티엔 출생)은 지난 25년간 주요 미술사조와는 거리를 둔 채, 개인적인 삶이 반영된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추구해 왔다. 상실과 소멸을 애도하는 예민한 감성은 유황, 밀랍, 유리 등 변형되는 다양한 재료들을 통해 신체의 아름다움과 혐오감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비극적 감성에 함몰하는 대신 이를 위로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작가는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장-미셸 오토니엘_눈물들 Tears_유리, 물, 테이블_140×500×70cm_2002
장-미셸 오토니엘_나의 침대 My Bed_ 무라노 글라스, 스틸, 알루미늄, 가정용 직물 제품, 펠트_290×240×190cm_2002

전시 제목인 『My Way』가 시사하듯 이번 전시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198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의 대규모 유리 설치 작업까지 작가의 예술적 성과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지속적인 여행과 우연한 만남들을 통해 예술적 자양분을 얻은 작가의 삶의 여정을 사진 아카이브로 제시하고, 관객이 작품에 직접 개입하는 「소원을 비는 벽」을 설치하여 작가와 관객 사이의 친밀한 교류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안소연
장-미셸 오토니엘_My Way展_삼성미술관 플라토_2011
장-미셸 오토니엘_My Way展_삼성미술관 플라토_2011


An exhibition of the Centre Pompidou, Paris ● The exhibition Jean-Michel Othoniel, My Way has been designed by the Centre Pompidou in close collaboration with Jean-Michel Othoniel, and was presented at the Centre Pompidou, Paris, from March 2 to May 23, 2011. ■

전시 프로그램 마림바 앙상블 [Marvellous Reality] 연주회 일시 / 2011_1006_목요일_07:00pm~08:00pm 장소 / 삼성미술관 플라토 글래스 파빌리온 대상 / 전시 관람객 무료 내용 / 유리 구슬의 영롱함을 청각화한 듯한 신비로운 음색의 마림바 연주를 통해 글래스 파빌리온의 조명 및 오토니엘의 작품과 어우러진 환상적인 분위기 체험 * 연주회가 있는 10월 6일은 저녁 21:00까지 연장 개관

관람객 체험 프로그램 1) Marvelous Reality (경이로운 세계) 오토니엘의 수채화 작품들을 픽토그램을 통해 3D로 형상화 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 2) A Shadow in Your Window (창문에 비친 그림자) 오토니엘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캡션으로 구성하여 관람객이 작가의 여정을 자유롭게 탐험하며 영감을 얻는 프로그램

10-minute talks 매주 수요일_12:40pm~12:50pm 서울 도심에 위치한 미술관의 특성에 맞춰, 인근 직장인이 점심식사 후 짧은 휴식시간에 가볍게 들러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전시설명 평일_02:00pm, 04:00pm / 토,일,공휴일_11:00am, 02:00pm, 04: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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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존재_1




태양을 가리는 나무의 나라 '인도네시아'展 2011_0831 ▶ 2011_0927





초대일시 / 2011_0831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아유 아리스따 무르띠 Ayu Arista Murti 카뚜르 비나쁘라세띠오 Catur Binaprasetyo 조니람란 Joni Ramlan 엠 아르빤 M_Irfan 우기 수기아르또 Ugy Sugiarto 와얀 꾼 앗냐나 Wayan_Kun_Adnyana 요가 마헨드라 Yoga Mahendra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존재의 그늘- 태양을 가리는 나무의 나라 '인도네시아'_2011년 8월, Sein 그 첫 번째 ● 더 이상 중국 현대미술이 동아시아의 우산이 아니라는 다니엘 코말라 라라사티 옥션 대표의 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에 눈 뜨길 요청합니다. 최근 세계 미술 시장의 관심은 아시아 미술의 두 개의 큰 거목, 중국과 인도에 이어 경제규모, 성장률, 풍부한 자원, 접근성 등을 바탕으로 한 급속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동남아시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관심과 더불어 인도네시아 미술은 국제교류 및 상업주의 열기를 토대로 급속하게 성장하여, 근래 홍콩 소더비에서 고가로 낙찰되면서 급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CNN 2010년 5월 27일자 Art Week 기사 참조).
아유 아리스따 무르띠_Buffalo Buffalo Soldier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50cm_2011

인도네시아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에 대해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그곳에는 자기들만의 광합성을 통해 예술열강의 햇빛을 성장의 에너지로 바꿔가고 있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나 이제 태양을 가리고 그늘을 만들며 한밭을 일구어 가고 있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오랜 식민지의 아픔과 빈곤, 근대화에 따른 사회적 불안과 불공정, 부패와 폭력, 인종 및 종교갈등 등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경험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기만의 광합성으로 신선한 산소들을 만들어 떠오르는 태양 아래 조용히 자신의 그늘진 안식처를 준비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입니다.
카뚜르 비나쁘라세띠오_B1 DKI Terjebak Macet di Kota Sendiri 도시의 교통체증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200cm_2010
조니람란_Sad so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60cm_2010

오랜 목마름이었습니다. 타는 듯 한 건기가 오고, 지긋한 스콜의 우기가 가고. 한여름 뙤약볕의 목마름이야 시원한 한줄기 스콜에 가셔지지만, 이내 가셔질 목마름이 아니었습니다. 서구 미술의 해석과 재인용. 또 중국 현대미술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그늘 속에서, 부초처럼 그들만의 질곡을 헤쳐 온, 기나긴 목마름이었습니다. 정치판이 뒤집어지고 IMF라는 경제 폭풍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대를, 전통과 민주?자본주의를, 그리고 '나'와 '우리'를 아우르려는 불볕 세월을 견뎠습니다.
엠 아르빤_Under-Construc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200cm_2010
우기 수기아르또_Free Will_캔버스에 유채_100×150cm_2010

흔히, 있는 자들의 향유물이요, 자본주의의 황금알을 낳는 예술이 그들에겐 자신들의 존재를 갈구하는 울부짖음이요, 성장통입니다. 1997년에 겪은 IMF의 통치는 자본주의의 날 선 칼과 마주하게 했고, 이듬해 몰락한 수하르토 정권은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한 판 한풀이를 허락했습니다. 그때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물결은 전통미술의 한계를 파도 등처럼 드러나게 했고, 근대적 정치권력의 몰락은 '나'와 '우리(국가)'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도록 작가들을 거리로 내 몰았습니다. 그 한 복판에 서서 작가들은 태양을 바라만 본 것이 아니라, 태양을 가리며 스스로 목마름을 이겨낼 자생력을 키웠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작가들은 전통을 이해하며 대중문화를 재해석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 새롭지 않았던 전통예술에 대중성을 가미하는 묘미를 보였습니다. 황색 피부의 모나리자라고 해야 할까요? 초록 물든 천안문광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붉게 타오르는 수마트라라고 해야 할까요?
와얀 꾼 앗냐나_The Last Beauty10_캔버스에 잉크, 아크릴채색_145×145cm
요가 마헨드라_Broth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0×140cm_2011

혹자는 인도네시아의 미술 사조를 말합니다. 혹자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인도네시아의 잠재적 시장성을 논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Sein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현대사와 닮아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태양을 가리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존재의 그늘 속에서 자신만의 태양을 준비하는 젊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사조도 좋고 시장성도 좋지만, 우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어떨런지요. 함께 느껴보시죠.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나'와 '우리'라는 공존을 즐겨봅시다. ■ SEIN art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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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는 물




신효순展 / SHINHYOSOON / 申孝順 / printing.glass printing 2011_0914 ▶ 2011_0920



신효순_한 방울의 흔들림_유리에 스텐실_지름 8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신효순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_10:30am~06:00pm

제이에이치갤러리 JH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인사갤러리빌딩 3층 Tel. +82.2.730.4854 www.jhgallery.net blog.naver.com/kjhgallery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라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의 표현과 정리가 완벽할 수는 없다. 이것은 늘 어렵고, 우리는 여전히 서툴다. 그래서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게 된다. 그저 이러한 상처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각자의 방식대로 치유하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효순_고요한 요동_유리에 스텐실_지름 80cm_2011
신효순_잔잔하게 일렁이는 1_유리에 스텐실_지름 80cm_2011

나는 인사동 길가나 절에 있는 돌 수반에 고인 물을 바라볼 때, 이러한 기억과 상처들을 떠올리게 된다. 고인 물은 투명하면서도 깊고 어두운 색감을 만들고, 고요하면서 미세하게 움직인다. 또 봉긋하게 솟은 표면은 수은처럼 무거워 보이고, 물속의 '안'과 반사되는 '밖'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고인 물의 물성은 바라보는 나의 존재와 그 대상인 고인 물의 존재,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까지도 잊게 한다. 오직 그 물질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몰입은 지난 시간속의 사람들과 그 기억들, 상처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두 수면위로 떠오를 때, 아프지만 아름답고 의미 있는 추억이 되는 것이다.
신효순_잔잔하게 일렁이는 2_종이에 스텐실_70×100cm_2011
신효순_똑 똑 흘리다 1_종이에 스텐실_70×50cm_2011
신효순_고인 물 1_종이에 스텐실_100×70cm_2011

나는 이러한 고인 물처럼 바라봄으로써 감정의 몰입과 치유가 이뤄지는 물질을 표현하고자 한다. 작품이 주로 '원'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물의 파장이나 수반의 형태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종교적이고 치유적인 만다라의 원형처럼 '소통하고 순환하는 원'을 말하고 있다. 공판화 기법을 이용하여 투명하게 여러 번 겹친 레이어는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깊은 질감과 색감을 만들고 있다. 유리를 사용한 작업에서는 그림자와 함께 이것이 더욱 극대화 된다. 이런 물성은 보는 이의 감정 개입과 치유를 이끌어 내고자 한다. 더불어서 작업을 겹겹이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도 감정의 안정과 치유가 이뤄진다.
신효순_깊은 흔들림_종이에 스텐실_70×50cm_2011

다른 사람과의 소통의 과정은 상처나 추억과 같은 내재화된 감정의 영역으로 옮겨진다. 나는 이런 감성적인 영역에서 보는 이가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작업을 통해 치유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작업은 나와 타자와의 소통의 방식이자 정신적 상처와 고통을 덜어내는 수단인 것이다. ■ 신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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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람 사랑




배남경展 / BAENAMKYUNG / 裵男慶 / printing 2011_0914 ▶ 2011_0923



배남경_밤 Night_목판화(한지, 먹, 한국화물감)_110×80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배남경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나무화랑기획 옴니버스 내러티브 - 삶. 사람. 사랑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옴니버스 내러티브- 삶, 사람, 사랑』展에 대하여 ● 산다는 것만큼 불명료한 것이 있을까?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지 않은 삶에서 말이다. 매일을 쳇바퀴처럼 단순하게 반복하더라도, 산다는 건 늘 새로운 경험을 발생시킨다. 사건과 현상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생각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회와 마주한다. 일상이다. 우리는 그 일상에 적응한 듯 살지만 그 이면엔 비일상적인 꿈·기억·희망 등을 저마다의 마음속에 내밀하게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무대인 사회는 이런 개인들의 은밀한 세계에는 관심이 없다. 사회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자가 개인이지만, 전체인 사회는 이런 개인의 유기적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구조나 체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시스템은 예측과 증명과 재현이 가능한 합리적 팩트Fact만을 요구한다. 실질적이고 실리적인 관계인 비즈니스처럼 숫자와 같은 객관적 기호들의 명증성이,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개인의 관념이나 상상과 같은 현상의 상부에서 작용하기에 그렇다. 이렇듯 사회가 중심이 되는 현대인들의 삶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으로 일탈을 꿈꾼다. 자유·희망·추억·기원·사유…등의 비가시적인 심리와 정서의 세계로. 예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런 일탈의 거의 유일한 기제라 하겠다. 홍인숙, 배남경, 이서미 세 명의 작가의 개인전으로 구성된「옴니버스 내러티브 - 삶, 사람, 사랑」전은 이들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되고 발견되는 개인적 체험과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작업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특화된 감성과 자기진술의 형식을 거쳐, 다시 '우리'라는 사회로 귀환하며 관객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일상적 문법으로부터 일탈한 이들 고유의 시각언어가, 관객과의 만남으로 다시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배남경_토요일 Saturday_목판화(한지, 먹, 한국화물감)_97.5×67.5cm_2009
배남경_운동장 Playground_목판화(한지, 먹, 한국화물감)_100×70cm_2009
배남경_탱고구두(먹) Tango Shoes(black)_목판화(한지, 먹)_119×78.7cm_2009

이 전시는 '삶', '사람', '사랑'이란 보편적 의미가 공통분모가 되어 내용의 축을 이룬다. 삶의 주체가 사람이고 또 사람들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사랑이라는, 어찌 보면 통속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누구나 겪었을 법한, 누구나 기억해낼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들이 작업의 출발선이다. 그러나 그 일반성에서 일탈하는 감성과 사유가 구축한 각자의 형식과 목소리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작품들이 대상이나 현상의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삶과 기억과 마음의 작가적 진술의 층위에서 표현되어진 것이라 그렇다. 상황의 설명이나 해설이 아닌 자신의 마음의 상태에 대한 진술로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전시를 통해서 확인해야 할 지점을 포착할 수 있다. 단순한 기록commentary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발화發話된 세계에 대한 시선, 구사되는 시각언어의 표현방식, 그리고 작업행위를 통한 삶에 대한 태도 등이 빚어내는 결과로서의 내러티브와 이미지를 좀 더 깊숙이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배남경_테오의 밀롱가-리아와 제이(색) Teo's Milonga-Lear and Jay(color)_목판화(한지, 먹, 한국화물감)_160.7×121.5cm_2010
배남경_현관-弘 Door-Hong 목판화(한지, 먹)_60.9×44.8cm_2011

한편 이 전시는 삶이라는 공통된 소재와 수사적 주제를 가진 단체전이다. 그러나 다시 개별로 분절해 보면 각 작가마다의 고유한 시각과 태도가 서로 다르게 제시되는 독립된 개인전이기도 하다. 개인전의 기준에서 보면 각 작가의 스타일과 어법이 독특하게 구축된 상태라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전과 개인전의 기능과 속성을 오버랩 시키는 전시구조를 택한 것은, 옴니버스라는 전개방식이 주는 차이점/공통점의 드러냄을 관객이 수용하는 방식의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전시를 통한 작품들의 내용전개와 전달방식은 기승전결이나 인과율처럼 단순명료한 수직의 구조가 아니다. 옴니버스는 각 작가의 단편들을 수평적인 병치와 병렬로 제시함으로 발생하는 차이/공통점을, 관객이 스스로 느끼고 인지하며 주제를 찾아가는 소통과정의 유효함이 도드라지는 구조다. 따라서 전시는, 전시주체인 기획자에 의해 가공되고 제련된 통일감에서 벗어나, 각 단위 개인전 사이 행간에서 자유로운 감상과 인식의 통로를 만들어 줄 것이라 여겨진다. 한편 전시의 진행과정이나 소통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이 즉발적으로 발생하는 우연과 돌출되는 변주들도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생각거리를 만들어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기획자가 준비단계에서부터 의도하는 전시공학적으로 잘 짜여지고 재단된 범주를 넘어서는, 또 다른 전시 개념과 의미들의 생성이 그래서 가능하다.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상태에서 부대끼며 발생하는 혼돈을 관객들은 능동적으로 수용함으로, 틀에 박혀 있는 "뻔"한 작품 느끼기/읽기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해 진다. 그래서 세 작가를 이어주는 공통분모인 전시명제만 제외한다면, 각기 다른 분자들의 차이와 충돌이 야기한 서사와 형식이 화장기 없는 얼굴로 싱싱하게 비교되는데 이 전시구성방식의 장점이 있다. 거기에서 관객은 전시의 큰 흐름인 주제와, 디테일로서의 미감을 주체적으로 느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진하
배남경_피아노-眞(색) Piano-Jin(corlor)_목판화(한지, 먹, 한국화물감)_137.8×112.5cm_2011


영원한 순간 ● '순간은 시간의 원자가 아니라 영원의 원자다. 시간에 투영된 최초의 영원이다. 곧 영원이 시간을 중단해 보려는 최초의 시도다. 순간은 시간과 영원이 만난 그 양의적인 것이다.' (키에르 케고르) 나는 삶의 현실적 단면 속에 영원한 가치가 만나는 '순간'을 구현하려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영원한 순간'으로 잘라내려는 것이다.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려봄으로써 그들의 삶, 사람, 사랑을 생각한다. 그리고 목판으로 각인(刻印)한다. 모든 현상(現象)은 변하고 소멸하는 것이어서, 보루(堡壘)로 세운 기억마저 언젠가는 희미해지고 그림조차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영원하게 남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림 한 장에 매달렸던 절실함 자체가 아닐까 믿는 것이다. 삶의 유한성, 예정된 상실과 영별(永別)로부터 오는 삶의 근원적 불안은 화면 속에 깊은 어둠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동시에 틀림없이 존재하는 빛의 요소는 삶에 있어 단 하나의 등대, 희망을 표상(表象)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빛날 것이다. 요컨대, 어둠 속에 빛이 빛나는, 현실 속에 이상이 비춰진, 시간 속에 영원이 투영된 '순간'이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 배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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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自-shape, shadow & empty




안경진展 / ANGYEONGJIN / 安京眞 / sculpture 2011_0914 ▶ 2011_0929



안경진_protector_혼합재료_40×40×5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안경진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14_수요일_05:00pm_갤러리 그림손

2011_0914 ▶ 2011_0920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2011_0922 ▶ 2011_0929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구로아트밸리 갤러리 GUROARTSVALLEY GALLERY 서울 구로구 의사당길 12 Tel. +82.2.2029.1700, 1742 www.guroartsvalley.or.kr



에로티즘의 모호한 섬광 ● 1. 확실히 아우라의 시대는 저물었다. 그러니 이제 예술은 삶의 모든 두께를 스스로 감내해야한다. 그 빈자리는 그러나,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은 움푹 페인 구덩이처럼 혹은 펼쳐내어야 할 저 '유리'(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의 주요 무대인 마을 이름)라는 절대 절명의 주권적이자 신학적인 실험 공간처럼 깊은 주름으로 함몰되어 있다. 하지만 비어있는 그 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의 이름, 율법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 팔루스(Phallus)와 금기, 즉 신화적 폭력 자체를 문제시 하는 자리이다. 내면 깊숙이 그것은, 끊어지지 않는 욕망의 페르소나들로 극화된다.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 아래에는 욕망의 둔탁한 흐름이 우리를 간간히 범람하고, 몽정이 우리를 할퀴고 지나간 자리마다 우울이 낮은 먹구름이 되어 지상을 휘덮는다. 우울한 자리는 이쪽과 저쪽의 어떤 거리, 간격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그것을 나르시시즘(거시기, 본능)과 승화(신, 초자아)와의 찢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찢김의 자리는 동시에 그것의 탄생이자 탄생이 벌어지는 간격자체이다. ● 안경진 작가의 작품들은 이러한 간격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이전의 작품들을 보라. 페르소나는 억눌리고, 욕망은 죄의 얼룩으로 승화된다. 초자아는 아직 당당하며, 종교적 상징의 변신들은 그 언저리를 맴돈다. 그러나 이번 작품들은 그 간격자체로 파고들어 그 간격자체를 만들고 생성시키는 간격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미지는 형상과 그림자라는 이중의 간격이 되고, 빛의 간격이 되며 마지막으로 그 둘의 묘한 간격을 증식시키기에 이른다. 따라서 작품들은 이러한 욕망의 할큄과 뜯김과 찢김의 느낌들을 극화하는 하나의 극장을 연출한다. 여기에 왜 잔혹성, 냉정성이 없겠는가? 왜 광기가 없겠는가? 외설적이고 도착적이고 변태적인 것이 당당히 자신의 틈을 열어 보인다. 바따이유가 말했듯 에로티즘이 이미 종교적 냄새를 띠고 있다면 이러한 장면들 속에서이다.
안경진_shape, shadow & empty_혼합재료_90×280×20cm_2010

격투의 장면을 보고 싶은가? 익살스럽게 캐리커쳐화된 대머리 인물들이 난투극을 벌인다. 그러나 곧바로 그것은 야릇한 장면으로 바뀌고, 그다음 스크린을 통해 격정적 에로스로 변한다. 그림자에서 가격하려는 자는 여성으로 탈바꿈한다. 정확히 그의 머리는 절정에 달한 젖가슴으로 변하고 깔려서 당하는 자는 남자가 된다. 지나치게 비대한 그림자의 가슴은 부풀린 욕망을 과장하며 스스로를 희롱한다. 남자-능동-행위자-지배자, 여자-수동-수용자-희생자의 구도는 단순히 뒤집어지는 게 아니다. 즉 여자가 남자가 되고, 남자가 여자가 되는 식이 아니다. 그런 뒤집기는 단순한 위치 바꾸기에 불과할 것이고 여전히 위치는 위치들의 관계는 고정될 것이다. 그러므로 장면들의 변환에는 수렴점이 없다. 오히려 ?에로스와 파토스?가 가격하는 지점은 정확히 이 위치의 고정성이다. 수렴을 모르는 무리수적 방황과 횡단. 이 위치관계를 끝없이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변이를 발산케 하는 것. 이것이 묘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이다. 너무나 가볍게도 우리는 고정화된 관계의 껍질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폭력-지배-희생에 기반한 에로스의 계보를 뒤흔드는 것이다. 이것이 잔혹성 다음에 오는 효과들이다. 외설과 도착이 만들어 내는 변태는 이러한 고정되지 않는 변이들의 생성이다.
안경진_shape, shadow & empty_혼합재료_90×280×20cm_2010

유혹하는 뱀을 보고 싶은가? 대가리를 물고 스스로 꼬인 두 뱀의 꿈틀거리는 입체감은 이중의 발기된 남성 성기처럼 근육질이고 동시에 그것은 절정에 오른 암수의 결합을 외설스럽게 안으로 말아 넣는다. 나아가 그 ?이브?는 여전히 유혹의 그림자를 비춘다.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원본의 복제, 그림자인가? 여기선 오직 복제의 복제라 불리는 시뮬라크르와 환상의 유희들만이 난무한다. 형상과 그림자 사이의 뒤집기, 부분으로 역전시키기, 투사하기는 근본적인 에로티즘 예술의 구문을 형성한다. 그리고 고귀함, 신실함과 순수함의 계열과 외설과 변태, 잔혹함의 계열 사이의 게슈탈트적(Gestalt, 혹은 형태심리학적) 교차가 있다. 이러한 교차는 ?Pray?,?Original Sin?,?Tree of Buddha?에서 두드러진다. 사과는 위에서 봤을 때 우리에게 하트모양의 진부할 수도 있는 사랑을 표현하지만 옆에서 보면 그것은 누군가 베어 물었던 사과 즉 이브의 유혹과 아담의 위반을 상징한다. 그러나 거기엔 게슈탈트적 형상이 개입한다. 베어 물린 형상을 배경으로 전치시키면 모호한 두 인물(두 남자 혹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형상이 게슈탈트로 나타난다. ?Pray?는 어떠한가? 얼핏 보면 두 남녀의 다정한 키스가 있고, 그 둘 사이에 기도의 형태-게슈탈트가 드러난다. 그러나 여인으로 보였던 자의 목젖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임신한 듯한 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기도의 성스러움은 외설적 형상물에 조롱당하는 듯이 거기 교차되고 있다. 나무-붓다는 순수와 외설의 계열에서 벗어나 자연과 신의 게슈탈트 관계를 엮어낸다. 나목은 잔챙이 나무로서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만을 비출 뿐인데, 그 사이 어느 샌가 붓다를 품고 있다. 그것은 겨우 빈 공간만을 품었을 뿐인데, 거기엔 이미 붓다의 게슈탈트가 배어든다.
안경진_eros & pathos_혼합재료_80×130×70cm_2011

2. 곳곳에서 관객은 작품의 의미추구에 좌절한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가?" - 이런 질문들을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이 작품은 어떻고 저 작품은 어떠하며 어떠해야하는지를 말하는가? 아마도 이러한 예술적 담론들과 비평들은 늘 빅 브라더 같은 '아버지'의 형상을 떠받치고 있거나 완화된 형태라면 기껏 주석적 자리만을 차지하거나이다. ● 그러나 안경진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형상 자체에서, 투사된 그림자에서, 그 둘의 관계에서, 의미는 부조리한 어떤 것의 회로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현대 예술의 운명은 이러한 것이 아닐까? 의미가 탄생하는 지점까지 그 극단을 밀고 나가는 것, 그 다음 그 의미가 무의미해질 때까지 표현운동을 가속화 하는 것. 그리하여 무엇이 의미이고 무의미인지를 묻는 고답적 질문을 단숨에 제거해버리고 오히려 무의미의 운동 속에서 어떤 무엇이 솟아나게 하는 것. 들뢰즈가 말했듯 예술이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블록들의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유 양태라 한다면, 그것이 철학적 사유와 만날 수 있는 장은 바로 이러한 무의미의 장(場)에서이다. 무의미의 장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의 부정이거나, 완고한 부인이자 정지를 의미한다. '아버지', God Father로의 회귀와 내면적 투사를 통한 복종이 아니라, 새로운 강제적 운동의 생성과 그에 대한 즐거운 순종인 것이 중요하다.
안경진_kill heal_혼합재료_80×30×20cm_2011

기꺼이 프리드가 언급한 비미술의 조건 즉 연극성을 받아들이는 것, 조각이 조각이기를 그치고 하나의 극이 되고자 하는 것,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다. "세계는 내가 재현하는 표상이미지가 아니다. 반대로 나의 이미지가 생성의 긴장과 고통 속에서 겪고 있는 세계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나의 조각들 또한 그러한 변형물이다. 나는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으며 어떤 상징적 의미도 표현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이기를 그치는 가장자리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의 압력에 굴복하고, 기꺼이 순종할 뿐이다. 이러한 압박으로부터 올라오는 강도적 이미지들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안경진_eve_혼합재료_70×40×30cm_2010

그러므로 우리는 저 괴기하고 악마 같은 해저의 원초적 자연에서부터 인간의 승화된 모습까지의 지속 모두를 단번에 포착해야한다. 스크린에 투사된 사람의 형상은 초인의 형상이 된다. 해저 물고기들의 간격은 초인을 예비하고, 그 아가리들은 초인의 두 손을 욕망하며, 급기야 그 몸뚱이들은 초인의 날개를 꿈꾸지 않는가? 약동의 현기증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불가피하다. 물고기와 초인 사이에 진화적 간격은 아찔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경험적인 진화론의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험 세계에는 이러한 해저 물고기도 이러한 초인도 없다. 이것은 진화론을 가능케 하는 자연의 욕망과 꿈의 문제이다. 모든 존재하는 이차적인 자연이 역겨워질 때 우리는 존재의 가려움에 떠는 것이다. 2차적인 자연이 품고 있는 법과 금기와 정해진 조화와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때 의미는 무의미를 꿈꾸는 것이다. ● 따라서 원초적 자연과 힘을 정지된 하나의 이미지에 결정화시키는 게 문제다. 예술이 현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의 거부의 몸짓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현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단번의 정지, 얼어붙음, 서스펜스의 명령을 내리고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잔혹과 광기가 있다면 이러한 행위 이외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신의 폭력이라 할 그것, 진정한 사유의 탄생이라 할 그것, 혹은 원한다면 진정한 죽음이어야 할 그것이 아니라면. ● 이제 예술작업(poiesis)은 독립적 작품(ergon)을 내놓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프락시스(praxis)로 회귀하고 있는 예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작품-생산물을 산출하고 그것이 작품-수용의 장에 들어가 이러저러한 판단과 평가를 받는 식의 방식만이 아니라(때로 그것은 얼마나 지겹게도 닫힌 회로인가?) 그보다 더 한 것, 그러니까 예술 이전의 장 자체를 열어 놓는 행위, 원초적 자연의 힘으로의 회귀 행위, 우리 안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욕망과 꿈의 언저리에 섬광을 폭발케 하는 행위이며 그것의 징후-되기일 것이다. ■ 백용성
안경진_pray_혼합재료_100×65×40cm_2011


A blurry flash of Eroticism





Timelessness


윤영석展 / YOONYOUNGSEOK / 尹永錫 / photography 2011_0915 ▶ 2011_1016 / 일,공휴일 휴관


윤영석_Egg Moving_렌티큘러_110×110cm_2011

초대일시 / 2011_0915_목요일_05:00pm

기획 / 아트사이드 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6길 15 Tel. +82.2.725.1020 www.artside.org


영원(timelessness), 존재하지 않은 시간의 존재 ● 생물 분류학상으로 영장목 사람과의 포유류로서 인류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거쳐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지금의 현대인들로 진화되어 왔다. 이 진화의 흐름이 여전히 유효한지 아니면 지난 반만년을 두고 더 이상 생물학적인 진화는 멈추고 문명의 근간인 기술의 진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진화의 근간에는 인류라고 하는 거대 개체의 보존을 위해 소멸과 생성이라고 하는 반복적 번식이 자리한다. 지구라고 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그곳에서 하나의 개체로 종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전적 정보를 다음의 개체에 전달한다. 이로서 인류는 인류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바라볼 때, 윤영석의 영원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인류 존재를 가능하게 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시각적 연구의 결과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윤영석_Egg moving_렌티큘러_90×110cm_2011

영원성의 시작 - 자기 검열의 렌즈 ● 윤영석은 렌티큘러라고 하는 굉장히 섬세한 작업을 요하는 재료를 통해 변화하는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프로그래밍된 정적인 이미지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따라 동적인 이미지화 되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교하게 렌티큘러를 프로그래밍하여 최대한 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의 움직이는 렌즈 역시 이와 같은 정교함을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관객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고자 움직이는 렌즈는 관객으로 하여금 관객이면서 동시에 관찰대상의 역할을 강요한다. 이는 작가의 자기 검열과 대상을 정교하게 관찰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윤영석_looking on hearing_마이크로 렌즈, 안티 모션 렌티큘러_100×100cm

관객과 작품의 위치 이동은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고민하는 주제다. 따라서 거울과 같은 사물을 이용해 관객들의 보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고 다시 재고할 수 있는 작품들을 조금은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윤영석의 경우는 렌즈라고 하는 메타포를 이용하여 보다 고차원적인 사고를 유도한다. 관객의 반응과 움직임을 쫓고 있는 렌즈의 움직임은 섬뜩하리만큼 정교하게 관객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한다. 따라서 바라보는 행위와 보여지는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의 렌즈는 대립의 양극을 강력하게 끌어 당겨 그들 사이의 거리를 제로로 만든다. ● 이 부분은 우로보로스(ouroboros)와 같이 자신의 꼬리를 물어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고 있는 고대의 순환적 역사관을 반영하듯이 생성과 소멸을 동시에 사고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정적인 이미지의 교차를 이용해 동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 즉 카메라의 렌즈들을 보는 행위와 보여지는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치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자체 내 아무런 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무한으로 반복된다. 보는 이의 움직이는 시선만 존재한다면. 말하자면, 타자의 존재에 의한 영구적인 무동력 장치이며 시간의 개념적이고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스프링보드다.
윤영석_Near the Moon_디지털 프린트_70×90cm_2011

시간은"알"과 같은 형태로 시각화 되었다. ● "알"은 그가 지닌 단순한 형태와는 다르게 소멸과 생성의 과정으로 번식하는 개체들의 종족보존을 위해 나름의 완벽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달리 말해 진화에 필요했던 시간의 응축이자 결과다. 이합집산이 가장 용이한 형태로서 원형은 우주적 질서의 근원적 형태면서 실제적으로 시간을 계측하는 무한반복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합집산은 생명을 유지하고 생성하는 중요한 기초운동 중 하나인 분열과 접합을 일컫는다. 이는 정과 동의 무한한 반복 운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알"은 그 스스로 시간의 형태와 생명의 운동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말 그대로 생명과 시간의 시작점이다. ● 따라서 조각적 조형언어를 통해 인류의 근원과 미래를 찾고 있는 윤영석에게 "알"은 형태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충분히 그 의미를 지닌다. 그는 인류의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보다는 그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우리의 근원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이동이야말로 전 우주적 유목이자 유토피아를 만들어 내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동의 중심에는 "알"이 있다. 작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유전적 정보를 운반하고 있는 윤영석의 방주인 셈이다. ● 또한, 작가는 그 "알"을 렌티큘러를 이용하여 심리적으로 만들어진 무한의 역사적 공간 속에 띄워놓는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시각적 움직임에 따른 이미지의 변화를 위해 렌티큘러를 사용했다면, "알" 시리즈에서는 이미지의 변화 보다는 공간의 변화를 극대화 시켜 실재 존재하지 않지만 렌티큘러의 착시 효과를 통한 무한의 깊이를 만들고 그 위에 알이 떠 있게 한다. 이는 짐짓 시공간을 넘나드는 유전적 정보에 의해 인류 자체가 하나의 개체로 또는 한 개의 덩어리로 이어져 있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윤영석_mind scope_마이크로 렌즈, 안티 모션 렌티큘러_80×118cm

영원성을 위한 이동 ● 영원성. 그것은 인류 존재의 희망을 극대화한 개념이다. 따라서 신의 세계에 속한 표현이기도 하다. 누가 뭐래도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 인류 서로간의 약속이며, 수적 질서에 의한 개념적 표현법이다. 화석이나 여타의 유적을 통해 수십 억만년이라고 하는 지구의 시간을 측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수적인 환산일 뿐이다. 우리에게 과거란 단순한 기억의 집합이기 전에 현재로의 축적일 뿐이다. 쉽게 말해 모든 인류는 주어진 생명이 소멸되기 까지 현재만을 살고 있다고 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단지 반복적으로 새로운 의식이, 자아가 생기면서 개체적 분산이 이루어질 뿐 우리에게 과거는 어제이기도 하고 수 억 만년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일, 즉 미래는 시간적 흐름으로 인해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현재적 모습의 투영일 뿐이다. 이는 발전의 논리가 아니라 이동과 의지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윤영석_The first now01_마이크로 렌즈, 3D 렌티큘러_96×118cm

예를 들어, 오늘 우리가 원하는 강력한 내일에의 의지와 행동들이 내일을 만들어 낸다. 현재의 이동이자 변화다. 윤영석의 영원성 역시 끊임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이동이다. 그 이동의 매개로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 낸다. 시간의 개념을 없애는 것이야 말로 작가가 이야기하는 영원성이다. ● 인류의 근원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으로서 작가는 영원성을 탐구해 왔다. 시간에 대한 인류의 근본적인 개념을 삭제하고 현재의 지속적인 이동에서 그 해답을 찾은 작가는 우리에게 영원 속에서의 자유로움을 찾도록 권유한다. ● 사실, 최초의 인류로부터 지속적으로 전해지는 인류의 유전적 정보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더 이상 인류는 지구에 존재해야 할 의미를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시간의 역학관계가 사라진 현재에 대한 영원성을 알에 새겨진 뼈와 같이 혹은 양의 뿔로 만들어진 독수리의 발톱과 같이 시각화 한다. 이종의 혼합에서 느껴지는 지난한 생명력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뼈의 흔적들이야말로 무엇인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에 대한 작가의 신념일 것이다. ■ <
2011.09.09 15:01:11 / Good : 496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09.14 08: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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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ixt






박지현展 / PARKJIHYUN / 朴志賢 / painting 2011_0916 ▶ 2011_1009 / 월요일 휴관




박지현_Two for One–Tunnel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canvas_130×26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70819c | 박지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811_목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1_0811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722.3503 www.16bungee.com




모호한 형상의 출현 ● 박지현은 언어가 갖는 기의(signified)적 상징성을 물질적 차원으로 치환시키며 고정된 인식체계에 혼선을 야기하는 작업세계를 견지해왔다. 그가 시도하는 언어의 유희는 그의 초기 작업부터 일관되게 이어져왔다. 1996년 서울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그는 대상체로서의 언어와 수용체로서의 인식의 사이에 위치하는 익숙한 관습에 교란을 가하는 작업들을 발표했다. 그가 소재로 삼은 언어의 속성은 대개 그가 붙인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나왔다. 예를 들면 못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못된 놈'이라고 칭하거나 발이 세 개인 낙지를 표현하고 '세발낙지'라고 이름 붙이는 식이었다. ● 개인적으로 막대한 부담과 권위적 무게를 부과했을 가능성이 다분한 미술계에서 첫 발을 딛는 박지현의 태도가 생각보다 가벼웠다는 점은 흥미롭다. 물론 이것이 작품의 기저를 형성하는 진지한 심적 태도가 부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그의 작품이 주로 취해온 형식은 키치나 유머와 같이 가벼운 것들이었다. 이는 박지현이 당시 한국 미술계의 젊은 작가들을 매료시켰던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력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가 지속적으로 시각화해 온 '말들의 미끄럼타기'는 그 이전까지 한국 미술계를 지배해 온 거대담론의 유효적 속성이 변화하고 있음과 함께 스스로 찬반의 양단적 구조에서의 입장표명을 유보하며 내면의 모호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적 발언이 당시 한국미술계에 새로운 흐름으로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 준다. 그 발언의 모호성은 이후의 작업들에서도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지현_Two for One-Guardian 2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canvas_186×260cm_2011
박지현_Two for One–butterfly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canvas_186×260cm_2011

유학을 계기로 10여년간 뉴욕에 거주하게 된 박지현은 새로운 언어로 자신의 유희를 지속했다. 언어를 근간으로 작업했던 작가에게 언어적 환경이 전면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예상보다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작업이 관계하는 언어적 속성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문화적 맥락에 보다 중층적인 시각을 입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켜왔다. '치킨 앤 브로컬리'를 비롯한 이 시기의 작업은 그 이전까지 지속해온 언어적 상황의 즉흥성에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을 가진 문화들이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도시에서 감지한 어색한 접점들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들을 진술해내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주로 한국의 전통 목가구를 조악하게 복제한 키치적 형식의 레디메이드 가구에 플라스틱 오브제와 같은 것들을 첨가시킨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색적이고 유머러스한 이 작업들의 '가벼움'의 이면에는 사실 정주의 배경이 바뀌고 새로운 문화적 프레임속에서 어색하기 자신을 끼워맞춰나가고 있는 실존적 상황에 처한 작가의 '무거운' 심적 상황들이 존재하고 있다. ● 이러한 시점에서 작업의 새로운 재료로서 향에 매료된 것은 흥미로운 우연 혹은 필연이다. 작가는 짧은 시간 일정한 효력을 발산하고 사라지는 향이 '약하면서도 강한 목소리를 내는 재료'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향을 태우는 행위는 늘 어떤 '염원'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러한 '염원'들이 대부분 어떤 '욕망'에서 기인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작가에게 향이라는 재료가 스스로 동경을 품어 왔고 실존적 삶을 살아내고 있던 '뉴욕'이라는 곳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는 향을 질료로 하여 오브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작품이 품고 있는 개념적 측면과 연결시키는 독특한 설치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형식과 함께 타고 있는 향으로 한지 위에 이미지를 구성한 새로운 형식의 평면 작업들이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박지현_Two for One-Long Island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_162×260cm
박지현_Two for One-Vessel 1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canvas_130×120cm_2011
박지현_The Air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skateboard_2011

전시장 지하공간에 셀 수 없이 많은 향들이 조밀하게 모여 재현된 작품 'Li:ving'은 '살다'라는 뜻의 영단어인 'Live'와 '떠나다'라는 뜻의 'Leave'를 조합해서 만든 제목이라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향 작업이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하늘에 떠 있는 섬, 라퓨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주의 함축적 구현으로서 축소된 세계에 대한 작가의 취향을 유추할 수 있다. 작품 'Li:ving'은 향으로 만들어진 거대 도시의 모델링이라 할 만 하다. 드높은 고층 건물들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는 모습은 오늘날 거대 도시의 상징체이자 작가가 거주하게도 했던 뉴욕의 단면일수도 있고, 우리 모두의 욕망이 투사된 익명의 메트로폴리스일수도 있다. 늘어선 건물들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하늘에 솟구쳐 있지만 결국 전체적으로 거대도시가 갖는 어떤 전형적 속성으로 수렴되어 버린다. 현실사회의 영역에 직설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이 작품의 명료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향이 주는 명상적 정서와 시선을 압도하는 스케일은 작품의 감상을 보다 중층적인 시선의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 전시장의 1,2층을 주로 채우고 있는 작업들은 향을 태우는 행위의 과정을 통해 얻어낸 새로운 형상들이다. 박지현은 얇은 한지에 타고 있는 향으로 촘촘히 구멍을 내어 이미지를 그려낸다. 구멍은 각각 다른 정도도 조금씩 타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구멍의 균질성과 윤곽선의 다양성이 공존하게 된다. 이것은 생성과 소멸이 병존하는 모순적 상황을 거친 후에야 출현한 '모호한 형상'인 것이다.
박지현_Li:ving_향, 거울_80×300×38cm_2011

그의 평면 작업들은 데칼코마니 기법과 같이 반전된 형식의 두 개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형상을 가진 두 개의 면이 만나서 처음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로 수렴된다. 이러한 조형 질서는 그의 평면 작품들을 읽어 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Tunnel'은 조밀하게 들어선 뭉게구름 같은 형상이 양면으로 배치되면서 화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화면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환시적 느낌을 준다. 형상의 평면적 속성이 운동 에너지의 방향성과 입체성으로 전환되었다. 'Fly'의 경우 한쪽 면의 이미지는 핵폭발 직후 발생하는 버섯구름을 연상시킨다. 두 개의 면이 만나서 이루는 형상은 가볍고 명랑한 느낌을 주는 나비의 이미지이다. 버섯 구름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나비의 발랄한 분위기로 전환된 것이다. 이미지가 가진 기호적 연상작용이 정 반대의 방향으로 반전되었다. 작품 'Rooting'에서는 나무의 잔가지들의 형상이 양면으로 만나면서 조밀한 뿌리의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이 경우에는 이미지의 방향성 전환을 통해 말단의 영역을 기저의 근원적 영역으로 변화시키는 순간적 위치이동이 발생하고 있다. 이 반전의 과정을 통해 박지현은 처음과 끝이라는 선형적 세계관을 탈피하고 끝이 시작과 맞물리는 순환적 세계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Long Island'는 위의 작품들과 동일한 기법과 재료를 활용한 것이지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변화를 꾀한 것이다. 벽에 걸린 평면 작품들이 얇은 한지에 남은 흔적을 주로 캔버스의 형태에 접목하여 보여준 것임에 반해 이 작품은 얇은 종이 형태 그대로를 걸어 놓았다.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일상적인 풍경을 담아낸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담고 있는 투과의 가능성들로 인해 관람자의 시선 너머의 풍경과 중첩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박지현은 한지 위에 타는 향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평면 조각'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 작품은 작가의 이러한 미학적 지향점을 보다 원형적인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스케이드 보드 윗면을 이용해 향이 남긴 이미지를 구현하는 작품 'The Air' 또한 평면의 조각적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케이트 보딩에서 점프를 칭하는 용어인 'Air'에서 착안, 구름의 이미지들을 윗면에 부착시킨 이 작품은 수많은 보딩의 경험이 남긴 흔적들을 구름과 조우시키며 새로운 해석의 시점을 부여하고 있다. ● 박지현은 우리에게 '모호한 형상'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업 앞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과 끝이 분명하게 직조된 세계에서 유리된 외부인이 아니라 관객의 눈 앞에 자신의 작업을 소멸시킴으로써 구현된 새로운 생성의 과정으로 관객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 모호한 형상에서 발견되는 것은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고 인공물도 아니다. 그가 'Between'과 'Twist'를 합성하여 조어한 전시의 제목 'Betwixt'는 그러한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뚜렷하지 않고 분명할 수 없는 내면의 의식으로 인해 생기는 인간의 번뇌와도 같이 그의 작업은 모호한 정신세계의 불명확한 본성을 조용히 언급하고 있다. ● 박지현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그동안 축적해온 작가적 사유의 성숙된 측면을 제시했다. 이것은 그의 작가적 조형언어가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하는 경로의 중요한 지점임을 암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초월의 과정에 자신의 실존적 삶을 용해시킴으로써 삶과 작업이 일치된 어떤 방향을 얻어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작업은 새로운 국면의 시작점이다. 이번 전시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기억해야 할 이유이다. ■ 고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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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慶美 - YOU DON'T OWN ME






이경미展 / LEEKYOUNGMI / 李慶美 / painting 2011_0916 ▶ 2011_1011 / 일요일 휴관




이경미_우주인과 두 신1(Hagia Sophia)_캔버스에 유채_168×168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124d | 이경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2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카이스 갤러리 CAIS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7-16번지 Tel. +82.2.518.0668 www.caisgallery.com




카이스 갤러리 서울에서는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통해 세상의 모습을 담아내는 작가 이경미의개인전'You Don't Own Me'를 오는 9월 16일 (목)부터 10월14일(금)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그 동안 작가의 회화 작업의 근간이 되는 설치와 오브제 등이 함께 전시되어 관람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게 될 것이다. ● 이경미의 작품을 마주하면 회화를 "작가의 자기 반영적 매체"로 정의한 알베르트의 회화론이 다시금 떠오르게 된다. 전통적으로 화가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상의 이면을 재현해왔다. 회화 작가들이 가지는 장인적인 재현의 기술 너머에는 그들만이 가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해석이 존재하며, 여기에 현대 회화가 가지는 개념적 특성이 존재하게 된다. ● 이경미의 화면은 관람객에게 마치 연극무대에 올려진 극중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는 작업실의 동거자이자 오래된 상처를 가진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존재이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유년 시절에 위로를 선물해주었던 고양이는 이제 캔버스 안에서 바깥세상을 꿈꾸며 이국의 도시를 동경하고,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무한의 공간인 우주를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세상과 만나고 소통하는 작가의 모습을 담아낸다. 고양이와 함께 나타나는 단골 소재는 커튼인데 엄마의 치마폭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색감의 천이 고양이를 숨기고, 받치고, 품고, 때론 고양이 위에 드리워진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요소인 '책'은 작가에게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의미하고 있다. 고양이 및 커튼 책 이외에도 이경미 그림에 등장하는 요소는 외부의 풍경인 바다, 우주, 녹색 정원, 오래된 성당과 기억 속의 아버지의 이미지로 각인된 풍선 등이다.
이경미_우주인과 두 신2(Hagia Sophia)_캔버스에 유채_168×168cm_2011

서 너 살 남짓 어린 내가 어머니가 부재하던 두어 해를 통해 갖게 된 최초의 각인은 끝없는 외로움이었다. 이 외로움은 나를 조숙하게 만들었고 다소 예민한 감각과 기억력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얻은 감각들로 내가 인지하는 자연의 색과 움직임, 생생함 그런 것들을 나는 기록하고 그려냈다. 돌아온 어머니는 단칸방에서 우리를 재우고 한복 일을 하셨다. 돌돌 말린 한복 지를 펼치는 순간 그 화려하고 고운 빛깔에 그 풍성한 주름과 광택이 너무나 황홀하게 느껴졌다. ● 성장이란 얼마나 극악하고 끔찍하고 눈물겹고 애잔한 단어 아니던가... 나는 그렇게 여겨진다. 사춘기도 독특하게 청년기도 이른 사회경험과 낯선 도시의 이방인으로 살게 되며 긴 공부를 간신히 끝내고 돌이켜 보면 나는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누구의 인생 하나 머리 아프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떠올릴 때 각각의 기준에 맞는 선별의 프레임을 형식으로 갖게 된다. 내가 선택한 프레임은 거대한 우주 속의 물리적 공간과 시간 속의 미미한 존재의 외로움이며... 이러한 외로움의 환원은 나의 고통 따위를 잊게 만드는 혹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상상이나 근거가 되어주었다. 나를 채워주는 총천연색의 자연들과 나의 고양이들, 거대한 바다, 그 속에 담긴 프랙탈은 우주가 그러하듯 나에게 멀미를 안겨주지만 그래서 감사할 수도 있다.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감각이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이를 나누고 보듬을 수 있는 사랑이 있음에 조물주에게 감사하고 어머니에게 감사한다. (작가노트 中) 형태적인 면에서 작가는 층을 두고 각을 세우면서 안과 구분되는 바깥을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공간에 대한 재해석은 감상자로 하여금 잠시나마 3차원의 세계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회화와 3차원의 결합은 잼통이나 와인병 등에 고양이를 그렸던 작가의 초기 작업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후 작가는 본격적으로 회화와 입체가 갖는 서로 다른 매력을 한 화면에 담아내고자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입체적인 건축 요소로 구성된 화면의 작품을 선보였다. 대개는 도심의 정경을 배경으로 책들이 잇대어져 있는 모습은 그 자체의 형태가 도심의 연장된 일부로 보이도록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같은 기존의 입체적 도심의 정경을 보다 다양한 시점에서 다층적으로 발전시킨 대형 회화 작품 1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미국 뉴욕의 번화한 타임스퀘어, 이탈리아의 눈 내리는 톨레도나 성 소피아 성당, 혹은 한국 분당의 미금역 등 구체적이지만 그 어디에나 있는 누구라도 한번쯤 지나쳤을지도 모를 풍경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잼통이나 와인병을 이용한 설치 작업과 풍선설치작업, 우주복을 입은 고양이 조각 등을 통해 작가의 작업세계 전반을 아우를 예정이다.
이경미_You Don't Own Me_채색된 유리병과 선반을 이용한 설치작업_가변크기_2011

평면이 갖게 되는 지루함과 극단, 그러나 그림이 갖는 매력은 거부할 수 없고 입체가 갖는 시점자의 다양성 때문에 나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해 새로운 볼거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화면의 세세한 것들은 거대한 자연이고 이를 받쳐주는 입체의 구조와 건축들은 인류의 문명이다. 그 속의 고양이는 나 혹은 관계인 것이다. ● 나의 그림들이 의도하는 바는 모호함과 다양함이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은 모양이 다 비슷한 것 같지만 언제나 감동을 주는 이유는 서로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균형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나 혹은 인류 혹은 지구는 거대한 자연 위에 선별된 프레임을 통해 구축한 건축과 인식, 그리고 관계 등이 조합된 나름의 종합세트인 것이다. (작업노트 中) 이경미의 작품에서 작가의 다소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따뜻한 세상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자기 반영적 과정은 오랜 기간 연마해 획득한 사실적 묘사와 섬세한 구성 등을 통해 그리기 기법으로서의 회화의 본질에 충실하게 표현되고 있다. 카이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You Don't Own Me'전이 관람자의 눈과 가슴을 통해 담담하게 읽혀지며 아울러 회화의 본질에 더하여진 작가의 실험적인 정신에 공감하기를 기대해 본다. ■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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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CROWD






이상원展 / LEESANGWON / 李尙遠 / painting.video.installation 2011_0916 ▶ 2011_1005 / 일,공휴일,추석연휴 휴관




이상원_Night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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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916_금요일_4:00pm

CAN foundation P.S.Beijing 창작스튜디오 9기 작가展

주최,주관 / (사)국제시각예술교류협회(CAN foundation)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추석연휴 휴관

스페이스 캔 Space CAN 서울 성북구 성북동 46-26번지 Tel. +82.2.766.7660 www.can-foundation.org




(사)국제시각예술교류협회(CAN foundation)에서 주최, 지원하는 P.S.Beijing 창작스튜디오 9기 작가 이상원 작가의 개인전. ● 본 전시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 속에 반복되고 획일화된 사람들의 움직임과 행동을 패턴화하여 보여주었던 이상원 작가의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페인팅작업을 미디어 컨텐츠로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형식의 영상프로젝트로 선보임. ●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젝트 P.S.B (Project Space Beijing)는 현재, 중국 베이징 798예술지역인 따산즈에 위치해 있으며,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작가에게 해외진출과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한 작가지원프로그램임. ● 2008년 6월 입주를 시작으로 김을, 김승택, 박종필, 박희섭, 신선주, 송준호, 이상선, 윤정선, 이베르, 양진우, 이호진, 채우승, 홍순명 등의 작가들이 참여하였음. ■ 스페이스 캔
이상원_하늘공원 사람들_편집이미지_2009

19세기 러시아의 문예평론가인 체르니셰프스키(N.G.Chernyshevskii, 1828~1889)는 "생활을 재현해내는 것은 예술의 일반적인 특징이고 그의 본질이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일상과 주변을 반영한다는 것은 예술의 고유한 본질적 특징 중에 하나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사회와 문화를 담아내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미술사에서는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일상적 관점 이후, 20세기 미술을 통해 일상의 사물과 사건은 예술의 주요한 주제와 관점으로 인식되어 왔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주변환경과 일상을 기록하려는 목적을 넘어 미시적으로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거시적으로는 사회와 문화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주변 환경을 읽어내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 주목한다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느냐, 그것이 단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닮아있는가 하는 점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상원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현대인의 일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보여주고자 하며 단순히 미시적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의 일상적 구조까지 확대하는 접근을 통해서라는 전제 하에서 다루고 있다. 특정한 일상의 모습을 가능하게 하는 시대적 성격으로서의 일상성에 주목했던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일상성 논의를 바탕으로, 단지 일상의 표면들을 그리는 데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사회전체의 성격을 조망해볼 수 있는 도구로서의 일상의 모습을 읽어 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상원_Run_애니메이션_00:10:37_2011

이상원은 그의 회화 작업을 통해 오랫동안 일상 속에서 보여지는 현대인의 패턴을 관찰해 왔으며, 특히 여가생활에서 발견한 공통된 패턴에 주목하였다. 작업은 우선 공원이나 산, 수영장, 스키장과 같이 현대인들의 휴식과 레저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수집된 이미지는 부감적 시점이나 파노라마 시점으로 조합하여 거대한 공간을 포함한 대형회화로 제작이 되거나, 패턴화 된 개개인의 형태를 드로잉하여 애니메이션으로 편집되기도 한다.
이상원_The Street_캔버스에 유채_130×518cm_2010

사회학적으로 생활시간은 수면, 식사와 같은 생리적 '필수시간'과 사회적 존재로서 노동, 참여와 같은 사회적 '구속시간', 그리고 이 두 필수적인 시간을 제외한 자유로운 시간으로 각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선택시간'으로 나뉘고 있다. 여가, 즉 이 자유로운 선택시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사용되는가에 따라 이 자유시간에 펼쳐지는 활동의 질은 각각의 개인적 취향을 넘어, 사회적?문화적인 배경을 포함한 사회문제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시간 감소와 레저시간 증대로 '여가'는 심리학이나 사회인류학적인 연구과제를 넘어, 정책적으로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연구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작가 이상원이 현대인의 '여가생활'에서 발견한 공통된 패턴은 이러한 정책적 배경으로부터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근?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여가활동은 정책적(강제적)으로 발전되었는데, 통행금지의 해제, 해외여행의 자유화, 프로스포츠의 대중화, 레저타운정책 그리고 2004년부터 시작된 주5일 근무제도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을 단시간에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유사한 노동조건의 일반인들의 여가를 대중화, 대량화 그리고 획일화 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원_White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1

이상원은 이러한 환경에서 '여가'의 개인화, 사유화와 같은 본질적 특성과 대중화, 획일화로 나타나는 가시적 현상 사이에서 포착되는 아이러니한 차이를 발견하고 현대인의 생활패턴(Pattern of Life Style)을 유희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차림으로 공원에서 조깅을 하거나, 유사한 모습으로 스키를 타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이미 개별적 특성을 잃고 익명의 대중을 대표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반복된 행위는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종합적인 움직임에 가까우며, 대중 혹은 무리의 요소로 보인다. 즉, 여가활동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개념은 매우 주체적이고 사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대량의 패턴으로 표현되는 순간, 바로 객관적이고 공공적인 행위가 된다. 이것은 개인의 생산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소비적인 면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원이 선택하고 읽어내려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인 것 같다. 때문에 그의 회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감성과 관념을 배제한 채 관찰하고 있으며, 인물들은 표정이 제거된 익명의 '어떤 이'로 표현이 되어있다. 이상원의 회화는 대부분 내려다 보는 듯한 시점으로,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다른 레벨에 위치해 있어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화면에서도 각각의 인물은 복합적인 시점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는 시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의 '낯설게 하기'가 회화에 적용이 되어, 매우 친숙하고 익숙한 장면들을 지루하지 않고 약간은 특별하게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즉, 매우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사건과 행위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공공성을 강조하려는 약간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상원_White Night_종이에 수채_20×27cm_2011

최근 이상원은 작업의 확장을 위해 새로운 실험을 해나가고 있다. 회화작업을 근간으로 하지만 이러한 기본 평면으로 움직이는 화면을 연출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작업 「Run Project」는 공원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각각 반복적으로 조깅하는 사람을 그려낸다. 그리고, 익명화된 수많은 사람들의 회화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펼쳐내어, 마치 커다란 벽지(Wall paper)를 보든 듯한 패턴으로 표현한다. 이 회화 이미지들은 또한, 유사한 행위를 하는 다수의 이미지를 중복시켜 마치 한 사람이 조깅을 하는 하나의 영상이미지처럼 보이도록 편집한다. 다시 말해, 회화라는 평면중심에서 설치작품과 영상작품으로 확장되며, 또한 가능한 어떠한 장르와도 융합하여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최근 국립국악원의 공연 『피리그림』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회화영상이라는 새로운 시도로서, 음악과 미술, 그리고 공연예술이 조화롭게 구성된 복합예술로서의 가능성으로 보여주었다. 이상원이 시도하는 작업영역의 확장은 그가 주목하고 있는 일상의 소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 발견한 현대인의 생활 패턴들을 주변 환경에서 읽어 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그가 발견한 일상의 패턴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특정한 문화공간이 아니라, 도심의 거리, 공원, 스포츠매장과 같은 생활공간에서의 감상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상원_White Night_종이에 수채_가변크기_2011

주변의 사소한 일상에서 현대인의 패턴을 읽어 내는 이상원의 특별한 관찰력은 일상적 행위의 나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 구성원인 개인의 일상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모습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작가 이상원은 회화를 근간으로 타 영역과의 소통에 대한 시도와 실험을 끊임없이 추구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 김성희


Vol.20110916e | 이상원展 / LEESANGWON / 李尙遠 / painting.video.installation









abstractly




이상선展 / LEESANGSUN / 李尙宣 / painting   2011_0917 ▶ 2011_1004



이상선_s118588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_150×21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103e | 이상선展 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비잉 Gallery Being 서울 종로구 견지동 111번지 B1 Tel. +82.2.722.6477 www.gallerybeing.com



숙명의 벽 아래서 자유를 그리다. ● 프랑스의 자유주의 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Ale×is de Tocqueville, 1805~59)은 말한다. "신의 섭리는 인간을 전적으로 독립적이지도 전적으로 자유롭지도 않게 만들었다. 모든 인간의 주위에는 그 누구도 넘어갈 수 없는 숙명적인 벽이 있다. 그러나 그 넓은 벽의 테두리 내에서 인간은 강력하며 자유롭다." 이상선이라는 인격을 대할 때마다 또 그의 회화 작품과 마주할 때마다 토크빌의 준엄한 명제가 떠오른다. 이상선은 주제는 언제나 현실의 벽에 갇힐 수밖에 없는 고된 인생살이 속에서 피어 오르는 일말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이상선은 세상을 보려는 관찰자가 아니다. 세상을 발견하려는 발견자이다. 단순히 보는 것은 세상 속을 그저 유영한다는 뜻이며, 발견한다는 것은 세상과 나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관계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정립시킨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의 차이다. 특정 모티브로 자기 상표를 등록하는 여타 다른 예술가들과 다르게 이상선은 세상살이가 곧 주제가 된다. 그가 접하는 일상의 세상살이, 그 온갖 풍경들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화면에 배치한다. 낮은 명도와 채도의, 큰 붓으로 호방하게 덧칠한 배경 앞으로 순수의 표정이 관람객에 말을 걸며, 들꽃들은 화면에 난분분 난분분 떨어진다. 이상선의 습윤한 붓질은 젊음의 맛이며, 화면의 들꽃들 역시 봄을 상기시킨다. 이들은 아이들의 표정과도 어울린다. 다만 이러한 분위기와 서로 상충하는 낮은 채도와 명도의 배경처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음울한 메타포인가, 아니면 아이들의 미소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려는 대조의 극화된 연출인가?
이상선_s119557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_91×117cm_2011
이상선_s118709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_91×117cm_2011
이상선_s117208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_120×170cm_2011

"그림이 인생의 전부라고 0.1초도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는 이상선의 자신감 있는 어투는 근자에 들어서서 미술가들 사이에서 제법 회자되는 말이 되었는데, 물론 이는 붓질하는 순간의 즐거움이나 형식 완결의 기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삶을 예술에 송두리째 반영시켰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어투이기 때문이다.
이상선_s110269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_91×117cm_2011
이상선_s114318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paintstick_91×117cm_2011

이상선은 카를 만하임(Karl Manheim)의 유명한 테제에 대해서 언제나 상기한다. '사유 존재의 구속성(Seinsverbundenheit)'이 그것인데, 이 말은 행동하는 주체는 그가 뿌리내린 토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지닌다는 뜻이다. 자연과학자에게 그런 일은 물론 없겠지만, 사회과학자나 철학자, 문화사가, 사상가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주어진 숙명이며 예술가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성질이다. 그러나,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본질을 학적 시스템으로 구축하려는 철학자나 사상가에게 '사유 존재의 구속성'은 치명적인 독이지만, 한 시대라는 벽을 넘어서려는 의지와 한 시대라는 토양에서 발아한 한계치의 영양분으로 꿈꾼 이상이 형식이 될 때 '사유 존재의 구속성'은 치명적인 독이 아니라 한 시대의 시상(時狀)이 되며 세기를 넘는 공감이 된다.
이상선_s117293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_91×117cm_2011

누군가 이상선의 회화를 가리켜 '드라마 없는 기교가 아니라 무기교의 드라마'라고 했다. 참으로 적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즉, 이상선은 아이들을 점점 어른처럼 만들어가는 동시대에 관해 그린 것이다. 이상선의 회화가 믿기지 않게 젊은 이유는 그가 자기의 삶 자체를 '드라마 없는 기교보다도 기교 없는 드라마'로 살려는 낭만적 태도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자기의 삶에 동시대 아이들의 삶을 투영시켜 세상을 바라보려는 태도 덕분이다.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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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TRUTH




93'휘트니 비엔날레 판화展   2011_0915 ▶ 2011_092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Whitney Biennial Print Portfolio in Seoul: A Benefit Print Portfolio for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1993 Fourteen prints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이브갤러리 EVE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동 91-25번지 이브자리 코디센 빌딩 5층 Tel. +82.2.540.5695 www.evegallery.co.kr blog.naver.com/codisenss



1932년에 창설된 휘트니 비엔날레는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더불어 세계 3대 비엔날레 이다. ● 휘트니 비엔날레 개최 이후 최초로, 1993년 (故)백남준의 주선하에 국립현대 미술관(서울)에서 교류전을 가졌었다. ●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가 당대의 미술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비난을 자각하고, 사회적 관심사를 쟁점으로 새롭게 변신해 전시를 기획함으로써 주목 받은 전시이기도 하다
Jonas Mekas 조나스 메커스_Untitled(Elzbieta Mekas, my mother, Lithuania, 1971 (From Reminiscences of a journey to Lithuania))_Screenprint in colors_63.5×49.5cm_1994
Kiki Smith 키키 스미스_Untitled_Photo sceenprint and silks on paper_63.5×49.5cm_1994
Merce Cunningham 머스 커닝햄_Untitled_Screenprint in colors_49.5×63.5cm_1994
Lorna Simpson 로나 심슨_Van Der Zee Prop Vase_ Photo screenprint in colors on paper_63.2×49.5cm_1994
Nam June Paik 백남준_Untitled_Screen rint in colors_63.5×49.5cm_1994
Alan Rath 알란 래쓰_Untitled_Screenprint in colors_49.5×63.5cm_1994
Izhar Patkin 이자르 파킨 Israeli_Untitled_Offset lithograph in colors_63.5×49.5cm_1994
Alison Saar 앨리슨 사_Lazarus_Screenprint in colors_63.5×49.5cm_1994
William Wegman 윌리엄 웨그만_Me_Screenprint in colors_63.5×49.5cm_1994
Allen Ginsberg 알렌 긴스버그_Mother Ghost_Intaglio_65.4×50cm_1994
Byron Kim 바이런 킴_Maebyong_Screenprint on hand-made paper_61×45.7 cm_1994
Hillary Leone and Jennifer MacDonald_Chromosomes_ Lithograph and screenprint in colors on paper_49.4×126.6 cm_1994
Gary Simmons 게리 시먼스_Untitled (Lineup Wall Chart)_Screenprint in colors_63.5×49.5cm_1994
Robert Longo 로버트 롱고_Body Hammers, 38 Special_Screenprint in colors_63.2×44.5cm_1994

경계선(Boderline)이란 주제의 전시는 동성애, 소수민족보호문제, 페미니즘 등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실제로 '경계선상의 삶'을 영위 하고 있는 소수 민족(흑인, 스페니쉬, 아시아계)작가들을 적극 수용했을 뿐 아니라 동성연애, 여성, 환경 문제를 주로 다루는 작가들도 과감히 포함 시켰다. 국내에서는 그 당시 관람자들이 보기에 노골적이고 다소 충격적 이미지들이 있어, 전시가 되기 까지 사진을 삭제하는 등 개최여부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1993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93'휘트니 비엔날레 서울』展은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 트렌드와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고, 작품을 통한 쇼크를 계기로 한국 미술계의 성장에 기폭제가 되었다. ● 이번 전시될 작품은 『93'휘트니 비엔날레 서울』展61명 작가의 작품 100여점 가운데 14점을 선별하여 제작된 판화이다. ● 이제는 세계적인 작가가 된 비엔날레 작가들의 작품을 판화로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양민지




 


Artists with Arario 2011-Part 1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_청담 첫 개관展 2011_0920 ▶ 2011_110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920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수보드 굽타 Subodh Gupta_권오상 Osang Gwon 제럴딘 하비엘 Geraldine Javier_지티쉬 칼랏 Jitish Kallat 강형구 Hyung Koo Kang_김인배 Inbai Kim 이승애 Seungae Lee_날리니 말라니 Nalini Malani 나와 코헤이 Kohei Nawa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 ARARIO GALLERY SEOUL CHEONGDAM 서울 강남구 청담동 99-5번지 Tel. +82.2.541.5701 www.arariogallery.com


2002년 개관이래 도전과 패기로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아라리오 갤러리는 한국의 두 도시, 천안과 서울을 포함해 2005년 중국 베이징에 갤러리를 오픈하여 그 동안 활발한 대외활동을 해 왔으며 2011년 9월 20일에 서울 청담동에 또 하나의 지점을 오픈한다. 문화의 트랜드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청담이라는 지역의 특성에 맞게 이번 새로운 공간에서는 한국, 중국, 인도, 동남아 등의 국내외 작가들과의 좀 더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선 보일 것이며 국내 작가들이 국외로 뻗어 나가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새로운 청담점은 더 나아가 각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장을 만드는데 앞장 설 것이다.
수보드 굽타_Untitled 3_캔버스에 유채_228×167cm_2010
권오상_Sherpa_혼합재료_215×90×88cm_2011
지티쉬 칼랏_Untitled(Stations of a Pau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브론즈 조각_213.4×352cm_2010~11
강형구_Van Gogh in red_캔버스에 유채_259×194cm_2010
김인배_직각의 디스코 Disco of the right angle_합성수지, 스틸_47×15×47cm
이승애_1979_종이에 연필_244×305cm_2010
날리니 말라니_Listen 1_아크릴 시트에 에나멜, 잉크, 아크릴채색_지름 122cm_2009

2011년 9월 20일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점 개관 전시로는 『Artists with Arario 2011('AA 11' 이하)』이라는 타이틀로 아라리오 갤러리와 함께 성장해 온 또는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국내외 대표 9명 작가의 작품이 1부에 전시될 예정이다. 『AA 11』전은 2010년 『Artists with Arario』첫 전시 이후 이번 청담점 오픈에 맞춰 두 번째로 열리는 아라리오의 대규모 대표 그룹전이다. 이번 9월 20일 개관 전 1부를 시작으로 2012년 2월까지 2-3부로 나누어 진행 될 것이며 약 30여명의 아라리오 대표작가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 한국 극 사실 회화의 대표작가인 강형구는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얼굴을 알루미늄판 위에 에어브러시, 못, 드릴 등 각종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피사체를 표현해 내고 있다. '사진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권오상은 10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 고른 이미지를 사용해 만든 기존의 데오도란트 타입이 아닌 현대사회의 매체인 잡지에서 선택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조합해 만든 새로운 버전의 데오도란트 타입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움직임을 정체된 조각에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조각가 김인배는 작품 속 불필요한 소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조각들의 움직임, 역동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순간을 포착하여 작품을 표현하고 있으며 작가의 수호신인 몬스터 드로잉으로 잘 알려진 이승애의 작품은 작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재 상황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응하고 픈 나약한 자신의 욕망을 괴물들로 탄생되어 시킨 것이다. 일상을 예술로 승화하고 있는 인도의 대표작가 수보드 굽타는 인도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물들을 재현하여 인도인들의 삶처럼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며, 급부상하고 있는 또 다른 인도 작가인 지티쉬 칼랏은 회화와 조각이 공존하고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인도인들의 삶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도의 시대상을 볼 수 있다. 날리리말라니의 작품은 수보드 굽타, 지티쉬 칼랏과는 다르게 인도의 어두운 면을 화려한 색채와 어린아이가 그린 듯 자유로운 붓질로 인도 문화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화면에 표현하고 있다. 2010년 동남아시아 미술계에서 가장주목 받은 작가 제럴딘 하비엘은 전통적인 회화에 형형색색의 자수나 레이스를 덧붙이거나, 자수가 들어 있는 유리액자를 화면에 설치하는 형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에 전시 될 신작에서도 회화 위에 표현된 그녀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통해 어린아이가 마치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보여 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젊은 작가로는 최초로 동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친 코헤이 나와의 작품은 PixCell = Pixel + Cell 라는 개념을 가지고 사물, 동물의 표면에 투명하고 빛나는 크리스탈 구슬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렇게 총 9명으로 구성된 국내외 주역들의 작품을 이번 새로운 공간인 청담점 개관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아라리오 서울 청담은 아시아 대표작가 전시와 동시에 그간 강남 소재 상업 갤러리 공간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국외 작가들의 참신한 전시를 연계하면서 청담동의 새로운 아트 메카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2011년 가을 개관 이후 대표 전시로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이을 일본의 대표작가로 급부상한 코헤이 나와, 동남아 대표 회화 작가 나티 유타릿 (Natee Utarit, b.1970, 태국), 인도의 데미안 허스트라 불려지는 수보드 굽타 등의 전시가 계획 되어있다. ■ 아리리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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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09.19 20: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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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Life

오상택展 / OHSANGTAEK / 吳尙澤 / photography   2011_0920 ▶ 2011_1002 / 월,공휴일 휴관


오상택_Closet #36, 37, 38_캔버스에 프린트_각 150×95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812h | 오상택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0_화요일_05:00pm

주최 / 서울대학교미술관

관람료 / 일반_3,000원 / 청소년,단체_2,000원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MoA Museum of 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 관악구 관악로 599 3갤러리 Tel. +82.2.880.9504 www.snumoa.org


서울대학교미술관은 오상택의 근작 40 여점을 선보이는 전시를 마련했습니다. 오상택은 현대인이 꿈꾸는 이상향과 현실 세계의 간극을 퍼포먼스, 사진, 디지털 작업 등 다양한 장르의 특성을 활용하여 포착해 왔습니다.
오상택_PRS2-002 BAND_컬러 프린트_190×160cm_2008
오상택_PRS-003 MARCH_컬러 프린트_160×252.5cm_2006
오상택_CR-002 Tower of Babel_캔버스에 프린트_106×158cm_2009
오상택_s-pole valte1_캔버스에 프린트_95×95cm_2008

「Process」, 「City Romance」, 「Sports」 연작과 「(un)Necessaries」 주제의 신작이 포함된 이번 전시는 독특한 공간 설정과 연출을 통해 일상적인 소재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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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ING GATE (회전문)


이승희展 / LEESEUNGHEE / 李昇姬 / mixed media   2011_0921 ▶ 2011_0926


이승희_bathroom_혼합재료_60×60×3.5cm_2009

초대일시 / 2011_09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이승희의 화폭은 백사장의 모래알같이 반짝인다. 라벤나의 어느 한 성당의 모자이크에 둘러싸인듯 한 환영에서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면, 화면 속 소재들은 종교적 주제의 비잔틴 모자이크와 달리 작가 주변 아니 우리의 일상에서 조금은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는 장소의 오브제들이다. 화장실의 세면기와 변기들 그리고 부엌의 전자렌즈 속 햄버거와 도마 위에 생선처럼 말이다. 이 같은 소재 앞에서 우선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녀의 화폭을 오색으로 빛나게 해 주는 유리가루를 감싼 것이 다름 아닌 호스 튜브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랄 것이다. 이렇게 작가의 재료와 소재는 소위 '전통적' 혹은 '신성한' 미술과는 거리가 먼 일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승희_bathroom_혼합재료_80×70×3.5cm_2007
이승희_bathroom_혼합재료_70×70cm_2011
이승희_bathroom_혼합재료_80×70cm_2011

오늘날처럼 팝 아트에 익숙한 우리에게 미술에 차용된 일상은 또 그리 신기하거나 기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승희의 일상은 일견 1960년대 팝 아트 작가들의 작품의 클리셰(cliché)에 지나지 않아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이 1960년대 초반 즐겨 그린 일련의 가사 그림들(Household painting) 곁에선 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승희의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리히텐슈타인의 회화에 등장하는 부엌과 화장실, 세탁실은 실제 작가 자신의 생활의 영역이 아닌 1950년대 당시 잡지들의 광고에서 청결과 질서의 이미지로 강조된 장소의 문맥에 위치한다. 반면 이승희의 그곳은 그녀의 '생활의 발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모자이크의 신비스러운 빛깔을 연출하는 비닐호스와 유리가루의 가능성을 그녀가 여느 다른 날과 같이 자신의 집을 오가던 중 주변 철물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듯 말이다. 즉 생활의 발견으로 화면을 채우기 시작한 비닐호스가 만들어 낸 화면의 풍경 또한 삶의 습관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어느 날 마주친 일탈적 해석에서 오는 생활의 발견에 의한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 경수가 선영의 집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서는 자신을 청평사 설화의 뱀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반복적 삶의 일상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행동이 설화의 영역으로 변용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요컨대 그녀는 리히텐슈타인과 달리 청결과 질서의 공간으로 화장실과 부엌을 재현하는 대신 일상의 일탈에서 오는 생활의 발견을 화면에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습관과 같이 소소한 일상에서 일탈이 제공해주는 의미를 길게 회상하듯 말이다.
이승희_Kitchen_혼합재료_80×80cm_2011

이처럼 작가는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항상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일상의 장소의 오브제들이 그 같은 영역에서 일탈해 어느 날 자신에게 불쑥 다가오는 순간을 화폭에 옮겨옴으로써 미술로서 일상적인 것의 변용을 시각화 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시선의 대상이 아닌 그냥 펼쳐져 있는 장소의 오브제들이 유리라는 특질에 의해 영롱하게 빛을 내면서 관객 앞에 위치함으로써 그것은 분명 다른 존재로 현현한다. 그렇다. 그녀의 작품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생활의 발견에서 오는 일상의 일탈 뿐 아니라 미적 아름다움 또한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그녀의 전시장에 들어 선 관람객은 회전문에서처럼 미술과 일상의 경계선을 돌아 나온다. ■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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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ELESS


정수용展 / JEONGSOOYONG / 鄭琇溶 / sculpture   2011_0921 ▶ 2011_0927


정수용_게스트 The Guest_혼합재료, 피규어_65×38×35cm_2011_부분

초대일시 / 2011_09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미술공간현 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www.artspace-hyun.co.kr


조율되지 않은 의식의 시간들의식이란 어떤 자극에 대한 조직체의 반응이라 말할 수 있다._이차크 벤토프,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에서 ● 정수용의 작품 「게스트」는 벌거벗은 한 여성이 한손은 가슴을 감싸않고 또 다른 손은 등을 꼭 쥐어 잡으며 머리를 반쯤 돌려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다. 「게스트」의 상황은 여성들이 흔히 무방비상태로 마주하게 되는 일상의 하나의 사소한 사건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사건을 겪은 여성은 심리적으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난감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지만... 「게스트」에서 연출된 사건은 사회 구성원들 간에 서로를 섬세하게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의, 한 개인의 실존적인 상황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 하지만 정수용 작가가 「게스트」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타인에 대해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적·문화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조지 시걸의 군상 작업에서 보듯이 실물크기의 인체 조각상은 일상 사회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일상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면, 실물보다 작거나 또는 확대하는 인체조형물들은 극사실주의 조각가인 론 뮤엑의 인체 형상에서 보듯이 인간의 내면의 심리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 실존적인 상황들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 정수용이 이번 전시에 제작한 인체 조형물들 또한 실물크기 보다 작거나 또는 크게 제작되어 있다. 그 인체 조형물들은 전반적으로 극사실주의적인 조각가들이 사용하는 폴리에스테르 레진의 재료를 사용하여 「게스트」의 형상에서 보듯이 그 동작들은 살아있는 인체의 동작들을 보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그 인체 조형물들은 론 뮤엑이나 그 밖의 극사실주의 조각가들이 제작한 인체 조형물과 같이 실물 전체가 살아있는 인체를 보는 것과 같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정수용_이질적 발육-i Disparate Growth-i_혼합재료_55×50×40cm_2011
정수용_게스트 The Guest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정수용_게스트 The Guest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심리적인 긴장과 이질적인 시간들 ● 정수용의 인체 조형물들은 일상에서 겪는 내면의 심리를 「복부팽만」에서 보듯이 신체를 왜곡시키거나, 또는 「이질적인 발육 I, II, III」에서 보듯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형의 신체들을 캐스팅하여 드러내고 있다. 그의 인체 조형물들은 부조리 연극을 보는 것과 같이 시각적으로 서로 유사성이 없이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인체 조형물들은 일상의 삶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긴장된 심리 상황을 신체와의 관계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이번 전시에서 제일 먼저 시선을 향하게 하는 것은 삭발한 머리를 한 여성의 인체이다. 「게스트」나 「복부팽만」, 그리고 「여분의 관심」에서 보듯이 여성의 인체들은 누드의 상태를 하고 있지만, 머리를 삭발하고 있다. 그 인체 조형물은 우리의 시선을 누드의 상태를 하고 있는 여인의 신체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삭발한 머리와 얼굴의 표정이나 몸의 동작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 「게스트」의 여성은 손과 몸짓으로 드러난 상황으로 볼 때 상당히 당혹스런 심리적인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게스트」의 상황은 한 여인이, 또는 한 개인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겪게 되는 하나의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그 상태는 작가의 시선에서 볼 때 한 여성이, 아니 한 개인이 잠깐 겪고 끝나고 마는 일시적인 심리 현상이 아니다. 「게스트」의 여성은 심리적으로 긴장되어 신체적으로 한껏 움츠린 상태를 하고 있다. 일상적인 피부 색깔과는 다른 「게스트」의 분홍색의 피부 색채는 그러한 긴장된 심리 상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게스트」의 여성이 움츠리고 긴장된 심신을 완화시키는 과정은 작가의 시선에서는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여분의 관심」의 여성의 시선과 몸짓에서 보듯이 타인의 생각과 행동들이 자신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심리적인 반응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복무팽만」의 여성의 신체에서 보듯이 배는 올챙이배와 같이 부풀어 오르고, 몸은 약간은 황달기의 증상을 보이는 형태이다. 다시 말해 「여분의 관심」에서 보여주는 인체 조형물의 몸짓과 얼굴 표정이나,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복부팽만」에서 보여주는 인체조형물의 배는 「게스트」의 인체조형물이 겪은 심리적인 상황과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 「여분의 관심」과 「복무팽만」의 심신의 상태는 한 여성이, 한 개인이 심신을 정상적으로 발달시키는 시간이 정체된 상태, 아니 기차가 레일을 이탈하는 것과 같은 탈선의 시간들이다. 그러한 시간은 한 여성이, 한 개인이 정상으로 심신을 성장시켜가는 시간이 정체된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한 시간은 작가에게 있어서 한 여성이 아이인지 어른인지, 또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중간의 상태를 의미하며, 그 심리적인 상태는 신체상으로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그 모습을 뚜렷하게 알아볼 수 없는 삭발한 머리의 인체 조형물과는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정수용_복부팽만 Abdominal Fullness_혼합재료_110×45×53cm_2011_부분
정수용_복부팽만 Abdominal Fullness_혼합재료_110×45×53cm_2011_부분
정수용_여분의 관심 E×tra Attention_혼합재료_62×31×50cm_2010

기형의 신체와 의식의 흐름 ● 「이질적인 발육 I, II, III」의 인체 조형물들은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 아니다. 목 부위에 주렁주렁 혹을 단 「이질적인 발육 I」의 인물 두상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실제의 인물이다. 「이질적인 발육 II」의 발 모양은 신장에 이상이 생겨 온 몸이 퉁퉁 부은 환자와 같이 부어 있다. 그러한 기형의 신체들은 작가에게 있어서 「복부팽만」이나 「구토」의 인체 조형물의 모습과 동떨어져 보이는 것은 아니다. ● 석고로 캐스팅한 「구토」의 인체 조형물은 「복부팽만」에서 보이는 심리적인 상황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복부팽만」의 심리적인 상황은 먹은 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토해내는 상황, 즉 심신이 피폐화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토」의 인체 조형물이 보이는 심리적인 증후는 자신이 마주하는 현실의 사건들이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상태임을 신체를 통해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마주하는 긴장된 심리 상황이 여성들에게 비만을 가져오며, 그 비만의 신체는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복부팽만」의 인체조형물과 같은 모습을 띠는 것이다. 「구토」의 인체조형물의 모습에서 보이는 심리적인 상황과 「복부팽만」의 인체 조형물의 모습에서 보이는 심리적인 상황은 작가의 시선에서 볼 때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 일상의 심리적인 불협화음은 이차크 벤토프의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에서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 때문에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있으면, 결국에는 육체의 변화가 일어나든가 정신질환으로 나타난다. 화를 계속 참으면 무척 강력한 감정이므로 암에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생각에 의하면 한 개인의 부조화된 심리 상태는 신체에 변화를 주며, 심지어 암을 유발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심리적인 긴장 상태들은 유전적인 질환을 야기하여 「이질적인 발육」의 인체 조형물들에서 보이는 기형의 신체를 낳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 흐름들은 작가에게 있어서 신체의 반응과는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질적인 발육 I, II, III」에서 보이는 기형적인 신체들의 모습은 작가의 시선으로 볼 때 「게스트」의 긴장된 심리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 정수용의 인체 조형물들은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의 흐름을 통해 인간의 의식과 신체 간에 서로 연결된 의식의 흐름들을 그 안에 내재시키고 있다. 그의 인체 조형물들은 인간의 심리와 신체를 분리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파악하는 것이며, 분리되지 않는 심신의 상태가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성숙해갈 수 있는 가에 그 의식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 조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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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불처럼 숨쉬다


이민혁展 / LEEMINHYUK / 李民赫 / painting   2011_0921 ▶ 2011_0927


이민혁_아마 암울한 6월이었을거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4×130.3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민혁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2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한 광화사(狂畵師)가 들려주는 도시 이야기 ● Ⅰ. 이민혁이 즐겨 다루는 소재는 도시의 일상이다. 그것도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megalopolis)의 일상적 삶의 단면들이다. 아니, 사실 그는 서울을 그리는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굳이 '서울과 같은'이라고 한 이유는 예의 문화적 보편성 때문이다. 오늘날 인구 천만 명을 상회하는 뉴욕, 런던, 북경, 파리, 상파울루, 모스크바와 같은 거대도시들이 갖고 있는 도시적 삶의 평균성과 익명성은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도시적 삶의 양상들이 서로 유사함을 말해준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삶의 모습들은 맥도널드를 비롯하여 스타 벅스, 월마트, 그리고 복합영화 상영관과 같은 대중적 소비 내지는 문화 시설을 통해 평준화된다. 이미 공룡처럼 비대해진 거대도시는 따라서 국적 불명의 문화를 낳고 있으며, 팝이라는 미명 하에 특유의 왕성한 번식력으로 교류되고 순환되며, 서로 뒤섞이는 가운데 다문화를 형성한다. ● 이처럼 다문화를 형성하는 요인은 비단 인적 물적 교류뿐만 아니라, 유튜브(You tube)를 비롯하여 근자에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ing service)에도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도시적 삶의 단면을 그리는 문제는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더욱 어렵고 미묘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른바 팝의 번성과 관련한 비평적 자유방임의 상태는 바로 이처럼 거대도시가 지닌 문제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내가 이민혁의 작업을 주목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의 시선이 철저히 서울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언젠가 내가 호칭한 것처럼 그는 서울의 일상적 삶의 단면을 그리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풍속화가이다. 풍속화가로서 그의 시선은 거대도시 특유의 팝적 현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인 특유의 삶의 양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려내는 그림들은 서울이라는 국지적인 지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열거한 거대도시들이 보여주는 보편적 지평에 맞닿아 있다. 서울의 문제는 곧 뉴욕의 문제이고 북경 혹은 런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거대도시가 안고 있는 슬럼화 현상을 비롯하여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 익명성, 홈리스, 재개발, 상업주의의 팽배, 부랑자, 자살, 폭력, 유흥, 섹스산업, 군중 속의 고독 등등이 그대로 이민혁 그림의 주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민혁_경계는 만들어지고 넘어간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27.3cm_2009~2010
이민혁_책을 태우고 거짓을 꿈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227.3cm_2009~2010
이민혁_대한민국은 자살 천국입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0~2011
이민혁_신(新) 강강술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0
이민혁_질퍽한 세상 맴맴 돌다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227.3cm_2010
이민혁_강의 길 눈의 길 사람의 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454.6cm_2009~2011

Ⅱ. 탁월한 풍속화가로서 이민혁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풍자성이다. 만일 그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톡 쏘는 풍자가 없었더라면 아마 그가 그처럼 빠르게 각광을 받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양념처럼 그 특유의 풍자성이 곁들여진다. 그것은 그가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힘에서 나온다. 남들이 그냥 스쳐지나가기 쉬운 광경도 그의 눈에 띄면 그대로 소재가 된다. 사실 그의 그림의 소재는 평범한 것들이다. 철교, 고수부지, 지하철, 나이트클럽, 노래방, 책방, 슈퍼마켓, 관공서, 놀이터, 사창가 등등은 비단 서울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도시면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민혁 그림의 소재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소재를 다루는 이민혁의 솜씨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 이민혁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스타일, 즉 회화적 양식이다. 이것이야 말로 그를 가장 그답게 만드는 점이다. 소위 '이민혁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난마(亂麻)와도 같은 자유분방한 필치, 그 저며서 풀어 헤진 삼(麻)처럼 난무하는 필치가 현란한 색채와 어울리면서 관객의 시선을 작품 속으로 깊숙이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민혁의 그림이 일종의 중독성을 지닌 까닭도 따지고 보면 재미의 요소와 함께 관객의 시선을 흡인하는 특유의 구도에 기인한다. 이 점은 앞으로 상세히 논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재의 평이함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 즉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단면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그가 지닌 작가적 재능 가운데 하나다. 이민혁은 「오줌분수와 해골 조명」 연작에서 보는 것처럼 분방한 상상력을 통해 기상천외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런 경우는 이민혁의 작품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 Ⅲ. 이민혁의 그림은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와 사람은 없고 오직 풍경만 존재하는 경우 등 두 가지가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관공서」(2007) 연작을 들 수 있다. 헌법재판소를 비롯하여 국세청, 대법원, 강동구청, 서울동부지방법원, 고등검찰청, 국회 등등의 관공서 건물을 그특유의 빠른 필치로 그린 이 「관공서」 연작에는 유독 사람이 부재한다. 청색 혹은 붉은색의 단색조를 띤 관공서 건물들은 사람이 부재함으로써 오히려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정부기관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강조되고 있다. 의도적으로 건물의 전면이 화면에 가득 차게 구도를 잡고, 예의 난무하는 듯한 필치로 현란하게 묘사한 관청 건물의 위압적인 모습은 관(官)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한 암시를 주고 있다. ● 이민혁이 그려내고 있는 관청건물들이 아래서 위로 올려다본 시점을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 또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그는 그런 구도를 통해 국민 위에 존재하는 듯한, 즉 국민이 편안하게 다가가기 힘든 관청의 상(像)을 완곡하게 비판하고 있다. ● 이처럼 사회에 대한 이민혁의 예리한 비판의식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근작에도 역시 잘 드러나 있다. 이민혁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에 대해 '흘러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를 스쳐지나가듯이 흘러가는 사람들, 이는 어쩌면 나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지만, 거기에는 역으로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작가의 질타가 숨겨져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만의 잘 알려진 저서 「군중 속의 고독」을 이민혁만큼 잘 포착해 드러내는 작가도 드물다. 그의 그림에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속의 인간군상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염원하는 작가의 애틋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그의 그림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대안이 없는 비판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기원하며, 그럼으로써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완곡한 메시지로 작용하는 이면에는 이처럼 탁월한 그의 풍자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풍자정신은 직설적이거나 보기에 거북한 것이 아니라 유머러스하기조차 하다. 이것이 바로 이민혁 특유의 풍자성의 특징이다. ● Ⅳ. 이민혁의 「5분후 같은 자리」는 도시의 비정함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대체로 그의 그림이 도시의 익명성과 비정함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이 작품만큼 소름이 끼치도록 냉정하게 도시의 비정함을 다룬 작품도 드물다. 이 그림은 한강 둔치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시체를 네 명의 경찰이 들것에 담아 계단을 오르는데, 그 아래에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농도 짙은 애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해 보여준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너머로 술잔을 앞에 놓고 시름에 잠긴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군중을 다룬 이민혁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구도를 취하고 있다. 이 일망무제로 탁 트인 조망을 담아내는 이민혁 특유의 구도법은 한강 둔치를 그린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닌 서민들을 즐겨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부시켜 볼 때 일종의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여겨진다. 햇살이 환히 부채 살처럼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한강 둔치에서 운동을 하거나, 개를 끌고 산책을 하거나, 난간을 뛰어넘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고 한다. ● 「대한민국은 자살 천국입니다」는 요즈음 한창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자살은 아노미 현상과 짝을 이룬다. 인터넷의 자살 사이트를 통해 만나 동반 자살을 기도하는 일은 가끔 신문지상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저명인사들의 잇단 한강 투신은 한국 사회가 부정의 천국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기에 충분하다. 그 이면에는 늘 정치적 사건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만, 이민혁은 그것조차 화려한 한판의 불꽃축제처럼 화면을 연출하여 죽음을 희화화(戱畵化)한다. 이 그림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처음에는 밤 수영을 하거나 낚시질을 하는 장면으로 오인될 법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이제 막 물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임을 알게 된다. 한강 다리의 교각에 설치된 화려한 조명은 화려해 보이는 대도시가 실은 자살을 할 정도로 비참한 삶들로 얽혀 있음을 은근히 암시해 준다. ● 「삽겹살집 강제 연행사건」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삽겹살집에서 이루어지는 강제 연행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언뜻 보면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실체가 숨은 그림처럼 가려져 있다. 이민혁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화려한 색채와 어지러운 붓질로 인해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이 세심하게 잘 살펴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서민들이 삽겹살을 먹고 있는 식당에 경찰들이 몰려와 누군가를 잡으려 하는 장면을 포착한 그림이다. 화면의 맨 오른쪽에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이 서 있는 것으로 봐서 곤봉을 뒤에 숨긴 경찰은 아마 그 사람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 뒤에 서너 명의 경찰이 더 있고, 창밖에서는 이제 막 용의자를 연행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민혁이 촛불시위와 같은 정치적 사건을 주로 다루는 풍자화가인 것만은 아니다. 「신강강술래」와 같은 작품은 축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한강 고수부지가 배경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서 사람들은 가운데 타오르는 불꽃을 두고 이제 막 한판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화면의 왼쪽 상단은 불길에 휩싸인 뭔가가 보인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강강술래'라는 민속춤을 소재로 한 것 같지만, 강한 에로틱 포스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무리들 중에는 남자의 성기를 잡은 여자를 비롯하여 겁탈을 하는 남자, 타인을 짓밟고 있는 사람 등 일탈의 장면들이 보인다. 이처럼 이민혁에게서 성적 판타지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그는 사창가 풍경을 비롯하여 이미 여러 차례 성적 모티브를 다룬 작품을 시도한 바 있다. 성적 모티브는 이민혁 작품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을 만큼 강렬하다. 그는 작품을 제작할 때 주사기에 물감을 넣어 마치 사정을 하듯이 뿜어내는 특유의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마치 도시 위에 사정을 하는 것 같은 강한 엑스터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 「강의 길, 눈의 길, 사람의 길」은 3년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길이가 무려 4.5미터에 높이가 2미터에 가까운 대작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그가 이제까지 구사해 온 현란한 색채에 난무하는 듯한 붓질을 그치고 시종 쿨한 태도로 일관한 데 있다. 눈이 내리는 겨울 풍경을 실내에서 포착한 작품으로 높은 건물에서 아래를 부감법으로 잡아낸 것이다. 푸른색 단색조를 사용하여 눈 내리는 겨울밤의 정취를 잘 드러낸 수작(秀作)이다. 한강 변 어딘가에 있을 밤의 카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연인들이 술집에 앉아 도란거리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이고 창밖에는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한 남자가 무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창 밖에는 눈발에 섞여 희미하게 다리가 보인다. 피아노 옆에서는 악사 한 사람이 섹스폰을 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흥겨워야 할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동사하기라도 한 것처럼 싸늘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실내는 흥겨움은 고사하고 일순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이민혁의 이 그림에서 보이는 스타일상의 이 반전(反轉)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내게 이제까지 그가 걸어왔던 그림의 행로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모색으로 보인다. ● Ⅴ. 이민혁에게 있어서 그림은 작가가 사회와 나누는 지속적인 대화이다. 따라서 사회는 그에게 있어서 지속적으로 파헤쳐져야할 화두인 동시에 소재의 젓줄이다. 그에게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는 속도로 인식된다. 한국사회에 깊숙이 형성된 '빨리빨리' 증후군처럼 속도는 속도를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을 낳았다. 이민혁은 파렛트 위에서 물감을 곱게 개서 원하는 색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여러 색의 물감을 붓으로 거칠게 낚아채 그대로 화면에 칠한다. 그러한 동작은 매우 빠른 순발력을 요구하며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담고 있는 이민혁의 화면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판단과 구상력의 소산이다. 소재를 해석하는 기발한 발상, 그것을 요리하는 기법, 순간적인 판단력 등등은 풍자화가로서 이민혁의 회화적 재능을 말해주는 지표들이다. 그는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을 그릴 때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처럼 다양하고 재기발랄한 그림들이 양산될 수 있을까? 이민혁은 다작(多作)의 작가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려낸 작품들은 한결같이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눈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화려한 색과 붓질의 난무는 관객들의 시각적 카타르시스는 물론 때로는 숨막힐 듯한 감각적 엑스터시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가 뿜어내는 화려한 언설들은 그 배면에 눈물겨운 페이소스를 깔고 있다. 그것이 인간에 기울이는 작가의 진한 애정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의 그림을 한번 쓱 살펴보면 알만한 것이기에.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어 여기에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는다. ● "내가 죽어서 나의 영혼이 어둠의 공간을 영원히 날아가야 한다면, 무엇이 죽은 자의 자살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까?" ■ 윤진섭




 
2011.09.19 20:43:15 / Good : 345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09.24 23: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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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자리 Away from Here


정지현展 / JUNGJIHYUN / 鄭知鉉 / installation 2011_0916 ▶ 2011_1015


정지현_빗나간 자리展_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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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PROJECT SPACE SARUBIA 서울 종로구 창성동 158-2번지 B1 Tel. +82.2.733.0440 sarubia.org


관객 앞에 기이한 탁구 경기가 펼쳐진다. 선수도 탁구채도 없다. 그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손수레 안에 탁구공이 가득 쌓여 있고, 맞은편에는 드문드문 구멍 뚫린 벽이 서 있을 뿐. ● 버튼을 누르면, 탁구공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 입구를 통해 무작위로 튀어나온다. 마치 복권이 당첨되는 순간 같다. 하지만 튀어나온 공들은 아무 데나 가서 부딪힌 다음, 힘없이 굴러가 버린다. 이따금 운 좋게 벽의 구멍을 통과하는 공도 있지만, 들려오는 건 팡파레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뉴스 소리다.
정지현_빗나간 자리展_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_2011
정지현_빗나간 자리展_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_2011

"상대방이 보낸 공을 어떻게 받아 넘길 것인가?" ● 탁구 경기의 핵심적 질문을 현실에 대입해보는 데서 정지현의 작업은 출발한다. 그러나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은 탁구의 세계처럼 순탄하게 쌍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중매체는 오늘도 세상의 소식을 열심히 전달해 주지만, 뉴스 한 토막이 제공하는 제한된 정보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간에 흥미진진한 관심사로 떠오를수록 의구심은 커지게 마련이고, 때로는 무관심이 가장 편리한 선택지가 된다. ● 기상천외한 사건들. 믿기 힘든 정보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들. 작가가 지금까지 수집해 온 현실세계의 풍경은, 한마디로 카오스다. 그 속에서 진실과 거짓, 현실과 환상을 예민하게 가려내는 것이 가능할까? 작가는 대답을 유보하는 대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어떤 가능성의 세계를 구축하기로 한다. 무대 뒷편, 벽이 감추고 있던 공간에, 또 하나의 카오스를 만드는 것이다.
정지현_빗나간 자리展_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_2011
정지현_빗나간 자리展_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_2011
정지현_빗나간 자리展_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_2011

바닷가에서 쓸려 온 동물의 턱뼈, 골목길에 버려진 액자와 고장난 악기, 괘종시계에서 떨어져 나온 시계추... 정지현은 우연히 주워 모은 사물들을 분해하고 결합해 수수께끼같은 오브제로 변형시킨다. 나름의 알고리즘을 사용해 의외의 움직임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제 사물은 원래의 이름을 잃고 명사로 형용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거기에는 질서와 무질서가, 우연과 필연이, 현실과 환상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 이런 실험의 공간에서 진실게임이 필요할 리 없다. 작가가 펼쳐 놓은 심리적 풍경의 이미지들이 담담하게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빗나간 자리』는 세상에 대한 의심과 무력감 위에 일시적으로 세워지는 확신의 세계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믿어야 하고, 믿을 만하고,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자꾸 보게 되는 것은,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는 예술가의 손일 것이다. ■ 김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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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 Ghost Series 트랜스레이션 - 고스트 시리즈


신미경展 / SHINMEEKYOUNG / ??? / sculpture 2011_0922 ▶ 2011_1112 / 일요일 휴관


신미경_Ghost Series(Pink) 2010_비누, 바니시_가변 크기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505h | 신미경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2_목요일_05:00pm

후원 / 하몬 코리아(Hamon Korea)_자생한방병원 핫셀블라드(Hasselblad)_그린피쉬하우스(Greenfish House) 기획 / 숨 아카데미 & 프로젝트

관람시간 / 화~토요일_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월요일 사전 예약

아트클럽1563 ARTCLUB 1563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63-6번지 하몬프라자 B1 Tel. +82.2.585.5022 www.artclub1563.com


지난 2010년 10월 서초동에 개관한 비영리 아트센터, 숨 아트클럽1563(artclub1563)에서 2011년 9월 22일부터 11월 12일까지 그 다섯 번째 전시로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신미경의 개인전, 'Translation – Ghost Series 『트랜스레이션 – 고스트 시리즈』'가 열린다.
신미경_Ghost Series(Jade) 2010_비누, 바니시_가변크기

신미경은 특정 문화를 대표하는 역사적 유물 및 예술품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현해 보는 작품 활동을 해 왔다. 15년 전, 작가는 유럽으로 이주한 후, 서양의 고전을 베끼고 본뜨는 복제 과정을 통해 면밀하게 복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작품에 담을 수 없다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 후로부터 작가는 '트랜스레이션'이란 타이틀 아래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형되는 문화적 번역에 대하여 작업을 해오고 있다. ● 작가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서양의 고대 유물과 조각상들도 수천 세월이 지나면 마치 비누처럼 닳아지는 모습과, 그 둘의 유사한 질감에서 영감을 얻어 비누라는 재료를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된 신미경의 초기 트렌스레이션 시리즈는 서양 고대 조각상들과 동일한 모습을 한 복제품이기도 하지만, 비누라는 유기적이면서도 변형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가만의 방법으로 재해석하였기에 작가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되기도 한다.
신미경_Ghost Series 2010_Haunch of venison gallery, London

본 전시에서 소개되는 'Ghost Series 「고스트 시리즈」'는 쉽게 깨질 것 같은 무라노의 유리 공예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양 각색의 투명 비누로 만들어진 비누도자기 시리즈이다. 원본 형태에 충실하게 제작되었으며, 값 비싼 도자기가 지니고 있는 견고함과 화려함의 요소를 제거한 작품으로, 작가가 특별히 고안한 몰드를 사용한 후, 모두 손으로 파내어 제작되었다. 또한 그의 초기 트렌스레이션 시리즈 중 그리스 조각을 재해석한 「몸을 웅크린 아프로디테」(2002)등을 같이 선 보여 도자기의 부드러움과 화려함, 조각상의 강하고 웅장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을 것임과 동시에, 비누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을 통해 관객들에게 또 다른 직접적인 체험을 선사 할 것이다. ● 이번 「고스트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재현을 통하여 새로운 미학 및 해석을 발견하는 것에서 나아가, 제작 과정을 통해 유물들에 대한 단순한 복제적 재현을 넘어 그 유물들이 내포하고 있는 예술 정신과 그 작품을 제작한 수 많은 예술가들의 혼과 영을 탐구한다고 볼 수 있다. ■ 아트클럽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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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낭만주의


Bad Romanticism展 2011_0915 ▶ 2011_1030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915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민수_강소영릴릴_권대훈_김신일_김지아나_김진 박병춘_박재환_이동주_이창원_이세경_이준_이혁준 이혜인_정승_조이수_최승훈 박선민_최종운_한정림(19팀/20인)

관람시간 / 화~일_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아르코미술관 ARKO ART CENTER 서울 종로구 대학로 100번지 Tel. +82.2.760.4608 www.arkoartcenter.or.kr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오광수) 아르코미술관은 2011년 뮤지움 링크(Museum Link)전의 일환으로, 9월 15일(목)부터 10월 30일(일)까지 『몹쓸 낭만주의(Bad Romanticism)』 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오늘날 디지털화된 낭만주의 감성(Techno-Romanticism)을 내재한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문명을 비판한 작품을 선보이며, 이를 통하여 오늘날의 테크놀로지 미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전시 연출에서도 다양한 장르(회화, 설치, 사진, 영상, 미디어아트)의 작가 20인을 초대하여, 관객들이 각각의 작품을 보다 개별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아트 페어 형식의 동일한 부스 공간 20개로 나누어 전시하여 일반적 전시 연출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몹쓸 낭만주의』 전은 9월 15일 오후 6시에 오프닝 리셉션이 시작되며, 이준 작가의 게임과 보컬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퍼포먼스 「Etude for Fong v.0.8」가 열린다. 오프닝 이후에는 매주 초대 작가와 함께 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된다. 또한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과 소마 미술관, 아르코미술관이 함께 진행하는 공공 프로젝트 「뮤지움 링크_있잖아요」(작가 양수인)는 아르코 미술관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도 관람, 참여할 수 있다. ● 근대로 이행하는 시대의 전환기에서 낭만주의자들은 이성주의, 합리주의를 추구하던 계몽주의자들과는 사뭇 다른 입장에 서있었다. '낭만' 혹은 '낭만적'이라는 단어가 모호하고 광범위한 뜻의 스펙트럼을 지녔지만, 본래 낭만주의는 예술가와 자연 사이의 신비스러운 교감, 개인주의, 열정과 감수성, 상상력의 강조, 묘사적이고 섬뜩하며 이국적인 경향을 띄는 것이 특징이었다.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의 한계를 파악하고, 세계의 중심이라는 절대적 주관성을 내세우는 낭만주의의 이러한 경향은 이성과 기능에 치우친 현대 사회에서 점차 유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때 낭만주의는 '시대착오적'이거나 '비현실적', 심지어 '몹쓸' 생각과 태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일례로 디지털 스토리텔링, 디지털 시 등 우리 시대의 글쓰기와 낭만주의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와 논문이 점차 증대되는 추세이며, 이에 따라 뉴 미디어적 감성은 새롭게 정의된다. 즉, 생생한 표현과 섬세한 감정 전달,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독창성이라는 가장 진보적이고 탈근대적인 움직임의 동력을 낭만주의라는 개념으로 재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몹쓸 낭만주의』 전시 또한 '표현할 수 없는 것의 표현'이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문학과 예술에 부여한 낭만주의 시대처럼, 고도로 디지털화된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관점과 감성이 작가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되어 나타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들 작가들이 테크놀로지를 낭만주의적 감수성으로, 즉 심미적이고 감정적인 실체로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작품에 이러한 테크놀로지를 정의한 방식은―기술 친화적인 경우부터 기술 종속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경우까지―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낭만주의 감수성으로 테크놀로지 매체를 이용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관점과 시도는, 한 때 '몹쓸'이라고까지 여겨졌던 낭만주의가 '테크놀로지'라는 현대적 옷을 입고, 지금의 예술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전시에서는 미술 전시의 한계를 넘어서서 밀도감 있는 공간 연출을 선보일 것이며, 형식적으로 보다 새롭고, 실험적이며, 다양한 매체를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적극적인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관람자들이 이러한 젊은 작가들에게서 솟구치고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를 기대해 본다.
강민수_Idyll-광장 / 김신일_시간적 연속, 직관적으로 알게되는, 생의 약동에 의한 작용, 공(空)
강소영 릴릴_검은 파도 / 강소영 릴릴_검은 파도 김진_N_either1003 / 김진_Untitled
권대훈_Lost in Forest 박병춘_창밖의 풍경-숲바다
김지아나_빛소리 / 박재환_보이지않는건축물_ACE 이세경_Hair on the White Porcelain

제 1 전시실 참여작가 : 권대훈(입체/설치), 김신일(미디어아트/설치), 김지아나(미디어아트/설치) 김진(회화), 박재환(미디어아트), 이세경(입체), 이혜인(회화), 최승훈?박선민(설치), 최종운(미디어아트/설치), 한정림(입체/설치) ● 제 1전시실은 테크놀로지와 현대 미술의 결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과 원시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설치, 회화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여 대조적이고 극적인 분위기가 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김지아나 작가의 「빛소리(Light Sound)」는 투광성을 지닌 얇은 도편을 사용하여 마치 화가가 다양한 색상의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듯이 LED의 빛과 DIMMER를 연출한다. 권대훈 작가는 작가 자신의 경험 속 하나의 순간을 담으려는 시도와 그것을 보여주는 장치로부터 출발한다. 작품 「Lost in the forest」는 숲에서 길을 잃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약 14m의 길이의 나무판에 70,000개의 금속핀을 박아 넣어, 그것에 비추어지는 조명의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세경 작가의 경우는 머리카락에 주목한다. 자라나 있을 때는 아름다움과 장식의 기능을 하지만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부터 더러움의 상징이 되는 모순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아무런 무늬가 없는 흰 도자기나 타일, 접시 등을 모아 역사적인 도자 무늬와 장식패턴에 근거해 머리카락을 그 표면 위에 붙이고 코팅한 뒤 좌대나 유리 진열장 안에 설치한 작업을 보여준다.
이세경_Hair on the China Set / 양수인_있잖아요_소근소근 이동주_돌아가는 세상 / 이준_Weather Pong
이혁준_Forest_Eden 19-3 이창원_Release / 이혜인_밑
조이수_검고깊은호수_홉스굴 한정림_The Library of Barbel / 최승훈 박선민_ Lonesome Green / 최종운_Vertical Sea 정승_M.Made in China와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제 2 전시실 참여작가 : 강소영릴릴(미디어아트), 강민수(회화), 박병춘(회화/설치), 이동주(미디어아트), 이준(미디어아트), 조이수(미디어아트), 이창원(입체), 이혁준(사진), 정승(미디어아트/설치) ● 제 2전시실은 관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을 배치해 현대미술의 전시가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을 줄이고 전시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중간 계단을 활용한 작품 설치로 전시 공간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제 1전시실처럼 각 공간의 작품들이 서로의 간섭 없이 보이도록 배치하되 전체적인 모습은 바닥 위에 떠있는 섬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정승 작가는 약 800개의 노호혼 인형이 놓여 진 반원형의 세트를 배경으로 관람객들이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노호혼 인형(M. Made In China)을 마주하고 앉아 명상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작가는 현대사회의 거대한 산업구조 속에서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개인의 정체성과 가상현실화(virtualization)에 익숙해져 가는 현대인들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을 유도하고자 한다. 강소영 작가는 바닥에는 제주에서 가져온 몽돌을 쌓아 올리고 애니메이션 "검은 파도"를 상영하는데 이때의 '검은 파도'는 물과 불을 동시에 상징하며, 더불어 전시 내내 울려 퍼지는 송광사 새벽 예불의 사물(四物) 소리는 하늘, 바다, 지상, 지하 모든 것의 초월을 염원하는 공명을 나타낸다. 이준 작가의 작품 「Weather Pong Season 1」은 서울 아트센터나비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설치된 환경 센서 장치에서 수집된 실시간 환경 데이터, 구글 날씨 데이터, 트위터 등에서 추출된 사람들의 감정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게임아트 작품이다.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날씨와 감정이 버무려진 가상의 날씨 공간에서 관객은 공과 라켓을 가지고 적절한 버블을 터뜨리게 된다. 현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상의 날씨 속에서 관객은 우리 환경의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최근 자연과 문명의 불균형으로 발생한 생태 환경적 이슈들을 재인식하게 된다. ■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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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_Drive Inn


욕망의 공간에서 충동의 공간으로展 2011_0909 ▶ 2011_0930 / 월요일 휴관


김혜나_cucurucu pen1, cucurucu pen2_종이에 아크릴채색_122×145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혜나Kim Hyena_이순주Yi soonjoo 이태경Lee Taekyung_최인호Choi Inho_허윤희Huh Yunhee 신쪼Sinzow(일본)_스타스키 브리네스Starsky Brines(베네쥬엘라)

기획_박현수Park HyunSue 기획자문_유경희You KyungHee(미술평론가)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통의동 보안여관 Boan Inn 서울 종로구 통의동 2-1번지 Tel. +82.2.720.8409 cafe.naver.com/boaninn


『충동-욕망의 공간에서 충동의 공간으로-』전은 '신체적 예술충동'을 시각화하는 작가들의 전시이다. '신체적 예술충동'은 신체를 통한 순간적 감각이 예술 창작의 즉발적인 충동에너지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드로잉 혹은 드로잉적 회화의 방식은 이러한 순간을 포착한다. 영감(inspiration)의 최초기록으로서 이러한 작업들은 예술가의 신체를 통해 발산되는 원형적인 힘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예술행위의 결과와 함께 창작 과정의 순간들과 마주 한다.
신조Sinzow_Friend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5cm_2011 / siesta_종이에 잉크_62×95cm_2011 외2점
이순주_9호실 시인이 산다_혼합재료_설치_2011
이순주_2호실 미안합니다_혼합재료_설치_2011
이순주_꽃뱀_혼합재료_설치_2011
이순주_Yes- man_혼합재료_설치_2011
이순주-너랑 나_Drawing slide show_영상_가변설치_2008~11

최근 개념과 아이디어 중심의 첨단 매체를 이용한 작업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에 반하여 육체성을 담보한 예술작업과 전시는 적잖이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존재의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힘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향유하고자 하는 관람자의 욕구는 (무의식적으로)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 전시는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이 잃어버린 신체를 통한 감각의 회복이라는 문제를 환기하는 동시에 드로잉이 주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태경
이태경_e,s1101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11 이태경_h,w1101_캔버스에 유채_200×100cm_2011 이태경_e,s1102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11
이태경_e,s1102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11
이태경_h,w1101_캔버스에 유채_200×100cm_2011

충동의 미학적 의미 ● 예술에 있어서 충동은 유희충동, 추상충동 등 인간 본연의 '긍정적인 심리 에너지'가 표출되는 것으로 정신분석학자이며 미학자인 자크 라캉의 후기 이론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는 유기체를 그 목적으로 향하게 만드는 힘, 즉 에너지의 충만함 속에 본질이 있다는 역동적 과정을 의미한다. 이 때 충동은 긴장을 방출하며, 이로써 심적 만족과 미적 쾌락을 준다. '욕망의 공간에서 충동의 공간으로' 라는 부제는 욕망의 공간이 사회적이고 공적인 공간이라면 충동의 공간은 쾌락과 만족의 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회가 가진 폐해를 돌아보고, 하나의 육체로서 인간 본연의 생명성을 추구하자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 유경희
최인호_바바리맨_지점토 채색_15×6×2cm_2011
최인호_아~르_혼합재료_85×50×45cm_2011
허윤희_끝없는 이야기_종이에 아크릴채색_500×150cm_2011
Starsky Brines_silent instrument 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50×150cm_2010

충동과 보안여관 ● 한국 근대 예술과 역사를 간직한 이곳은 아직도 살아있는 역사의 상징적 공간이다. '충동'展에서 보안여관은 예술을 잉태하기 위한 은밀한 신체가 된다. 보안여관이라는 신체로 들어간 7명의 작가들은 이것의 벗겨지고 감추어진 은밀한 육체성을 재생한다. 재생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죽음을 반복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순환구조와 유사하다. 다시 사는 삶, 다시 살리는 것으로의 '충동'이다. ■ 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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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ion Market


2011_0921 ▶ 2011_092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소선_강은영_김가슬_김온환_김재수 김진영_김태현_박기훈_박상아_박준형 서담원_서문기_윤혜지_이언정_이정인 전선영_전선하_전소향_정진경_천영진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판화역사의 대부분은 인쇄기술의 역사와 함께합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다양한 장르의 미술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했고, 작가들 또한 관객에게 자신의 의도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판화매체를 이용했습니다. 현재의 미술계는 엄청나게 팽창되고 상업화되어 있습니다. 사진과 인쇄의 여러 가지 형태발전으로 오리지널 판화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여러 장의 작품을 찍어내는 판화의 복수성은 각각의 오리지널리티 (originality) 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화의 일품성과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상황의 판화매체를 사용하는 20명의 청년작가들이 참여합니다. 그들 각자의 메시지를 위트 있게, 또는 진지하게 종이에 찍어 놓았습니다. 동시대 미술을 판화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더불어 정확한 한정판(Limited Edition)을 통해 가치 있는 소품을 구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입니다. ■ 김재수
강은영_안녕! 친구들~ / 강소선_1-3 untitled
김가슬_Garden
김온환_4Color Cycle
김진영_A lemon
김태현_Untitled / 전선하_Paradise VII-I
박기훈_Strange Landscape / 김재수_Sighthole
박상아_The Animalbody Streamline-Environmental Pollution
박준형_Self-portrait / 천영진_VOYEUR the sideⅡ
서담원_私 的 空 間 Ⅰ / 정진경_마주하다
서문기_Sum41-Still wating
윤혜지_Spiritual things
이언정_CITY A
전선영_Ribbon
전소향_Monster 과유불급 / 이정인_Sky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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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Scape


2011 한-아세안 현대미디어아트전展 2011_0922 ▶ 2012_0226


Manit SRIWANICHPOOM_pink man in paradise 9_람다 프린트_110×135cm_2003_Thailand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한-아세안센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2_목요일_05:00pm_금호미술관

참여국가 브루나이_캄보디아_인도네시아_라오스_말레이시아 미얀마_필리핀_싱가포르_태국_베트남

참여작가 브루나이 / Mr. Hh Mohammad Zulkhairi Zainal Abidin_Mr. Zul Abdul RAHMAN) 캄보디아 / Mr. Socheat HUOY_Mr. Borak POK) 인도네시아 / Mr. Imam Hartoyo_Mr. Wimo BAYANG) 라오스 / Ms. Phetmalayvanh KEOBOUNMA_Ms. Souliya PHOUMIVONG) 말레이시아 / Ms. Minstrel KUIK_Mr. Sherman ONG)_미얀마(Mr. Htein Win_Mr. Tin Myint) 필리핀 / Mr. Frank CALLAGHAN_Ms. Lena COBANGBANG) 싱가포르 / Ms. Genevieve CHUA_Mr. Tristan CAI) 태국 / Mr. Manit SRIWANICHPOOM_Mr. Tatiya UDOMSAWAT) 베트남 / Mr. Quang PHAN_Ms. Tiffany CHUNG) 한국 / 광모_김대남_난다_박승훈_이원철_이혁준_임상빈

기획 / 신혜경 큐레이터 주최 / 한-아세안센터 (www.aseankorea.org)

2011_0922 ▶ 2011_1008 관람시간 / 10:00am~06:00pm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7개 전시실 전관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2011_1028 ▶ 2011_1127 관람시간 / 10:00am~06:00pm

전북도립미술관 JEONBUK PROVINCE ART MUSEUM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1068-7번지 Tel. +82.63.280.4343 www.jbartmuse.go.kr

2011_1217 ▶ 2012_0226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신정, 설연휴 휴관

고은사진미술관 GoEun Museum of Photography 부산 해운대구 온천길 2번지 Tel. +82.51.746.0055 goeunmuseum.org


한-아세안 10개국의 현대 사진작가의 작품이 한자리에-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미술 교류를 통한 현대예술의 관계 모색 ● 한-아세안센터에서 주최하는 『Cross-Scape』전은 한국과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대 사진작가 27인을 초대하여 아세안국가들과의 문화적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면서, 아시아 동시대 예술을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로서 서울을 비롯 전주, 부산에서 순회 개최될 예정이다. ● 2000년대 초반부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동남아시아 미술은 미술시장의 다변화 추세를 반영하듯 갈수록 그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Cross-Scape』전은 동남아시아 사진의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면서 현대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창조적 콘텐츠를 지향한다. ● '교차(cross)하며 소통하고 융합하는 풍경(scape)'이라는 주제 아래, 각국의 독특한 문화 양식과 다양한 관점들로 본 현대사진들이 전시된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풍경사진과 더불어, 특히 한국 사진작가 7인이 아세안 10개국을 여행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감성으로 재해석한 풍경사진들은 이번 전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임상빈_People-Singapore_람다 프린트_△50.8×190.5cm / ▽44.5×190.5cm_2011_Korea
박승훈_TEXTUS 063-1_디지털 C 프린트_100×125cm_2011_Korea
난다_Cambodia_디지털 프린트_60×150cm_2011_Korea
이원철_'TIME'Hochiminh_피그먼트 프린트_120×150cm_2011_Korea

한-아세안센터의 지원으로 한국작가 5인(광모,난다, 박승훈, 이원철, 임상빈)은 아세안 10개국 중 2개국을 선정하여, 지난 6월-7월에 이번 전시를 위한 여행을 다녀왔다. 브루나이를 다녀 온 광모는 국왕사진에 관심을 보이며, 여왕사진이 함께 있는 특이함에 주목하며 작품에 담았다. 또한, 말레이시아가 도심 개발로 인해 훼손된 자연, 황폐해진 도시를 관찰하여 사진으로 표출해내었다. 필리핀과 캄보디아를 여행한 난다는 디지털 편집을 통한 독특한 감성으로 카톨릭과 불교를 기반으로 한 두 도시의 다른 풍경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태국과 라오스에 다녀온 박승훈은 마치 옷감을 짜듯 필름을 엮어 하나의 이미지로 만드는 연출 방식을 이번 풍경사진에도 보여주었다. 임상빈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택하였다.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을 조합하여 왜곡하면서 도시의 과장된 풍경을 유머러스하게 재현해 내는 임상빈은 마리나베이 옥상 수영장의 풍경과, 발리 해변에서 개미처럼 모여있는 인간 군상들을 과장되게 그려내었다. 이번엔 시계에 관심을 보였던 이원철은 베트남의과 미얀마에서 시계만을 담아왔다. 일상의 기준이자 한 때는 권력의 상징이었던 시계에서 바늘을 사라지게 하여 장시간 노출된 주변의 기록을 통해 또 다른 물리적 시간을 보여준다. ● 그 외에도 평소 아세안 지역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작품활동을 해왔던 김대남이혁준 또한 이번 전시에 동남아시아 특유의 풍경 사진을 함께 전시한다. ■ 신혜경
Frank CALLAGHAN_Green Water_디지털 프린트_70×140cm_2011_Philippines
Tatiya UDOMSAWAT_mbk hall Large department_디지털 아트_92×160cm_2003_Thailand
Minstrel KUIK_Kuala Lumpur_Kuala Lumpur_디지털 C 프린트_70×140cm_2011_Malaysia
Phan QUANG_Fusillade_디지털 C 프린트_ed.4+1AP_70×105cm_2010_Vietnam

부대행사 "아세안과 한국 현대사진"워크샵 일정 일시/ 2011년 9월 24일(토) 02:00pm~05:00pm 장소 / 한-아세안센터 아세안홀(서울 중구)

Time / Speakers & Contents 02:00~02:30 pm / Manit SRIWANICHIPOOM (태국 사진작가)-Manit & Pinkman 02:30~03:00pm / 임상빈(한국 사진작가)-임상빈의 SCAPE(가제) 03:00~03:30pm / 이지호(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현대미술이 아시아를 주목하는 이유 Manit와 임상빈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론 03:30~03:40pm / Break 03:40~04:20pm / 신혜경(Cross-Scape 큐레이터) 한국작가의 아세안 사진과 아세안 작가의 서울사진 One day shooting Presentation 04:20~5:00pm / 김미진(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 현대미술에서 아시아 사진의 위상 워크샵 발표작가에 대한 평론 -워크샵에 함께하시는 모든 분께 『2011 한아세안 현대미디어아트』전 도록을 드립니다. -워크샵 원활한 진행을 위해, 미리 예약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약문의 / 한-아세안센터 문화관광부 이유미 Tel. 02.2287.1146 / 011.348.7556

현장이벤트 "가까운 이웃 동남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동남아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재조명, 일반인들도 친숙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주말 나들이 가족 단위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현장 이벤트 진행합니다. 기간 / 9월 24일~25일(토, 일), 10월 1일~2일(토, 일) 내용 / 스탬프이벤트(여권 스탬프를 찍어주는 이벤트), 기념품 증정 이벤트(방문객대상 아시안 투어 가이드북 및 에코백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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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ving


권영술展 / KWONYOUNGSUL / 權暎述 / painting 2011_0923 ▶ 2011_1011


권영술_Crav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623d | 권영술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CSP111 ArtSpac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Tel. +82.2.3143.0121 blog.naver.com/biz_analyst


바이러스 주체성으로의 여정 ● 욕망의 자리는 언제나 경계에 위치한다. 때로는 생산의 토대로서 작용하여 새로운 생산성을 만들어 내지만 때로는 평범한 결합관계를 훼손하는 카오스로 돌진하여 다가치적인 해충으로서 나타난다. ● 그러므로 욕망의 장소는 항상 팽팽한 긴장이 유지된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충돌하는 것이다. 권영술의 욕망은 그 충돌의 지점에서 원심력보다는 좀 더 큰 구심력으로 작용하여 욕망을 넘어서 갈망(Craving,간절한 욕망)으로 질주하고 있다. 작가는 갈망의 장을 펼치고 있다.
권영술_Crav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60.6cm_2011
권영술_Crav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11

갈망은 경계 안에서 유영하지 못한다. 갈망은 본성상 안으로 침잠한다. 형태 안으로, 부처의 상 안으로, 자동차 안으로, 세상 속으로, 구심력적 갈망이 끊임없이 형태 안으로 침잠하고 또한 침식한다. 작가의 상위의 경험이자 능력은 그 갈망의 형태 안으로 욕망의 원심력적 작용을 불어 넣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유영 안에서 갈망은 그것의 속박을 건너뛰듯이, 형태와 형태를 뛰어넘고 형태가 결속된 장을 배회하고 있다. ● 이러한 갈망과 욕망의 융합이 때로는 그리고, 그리고로 종종 혹은, 혹은으로 나아가서는 가정과 조건의 세계로 펼쳐나간다. 이 융합의 장이 배경과 형태를 흐릿하게 유지하면서 그러한 구별성을 허물어뜨리는 새로운 형태가 연속적으로 연결된다. 이 형태는 불현듯 드러난다. 그것은 어디에서 도래하는가?
권영술_Craving-Mahamaya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1
권영술_Craving-Mahamaya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1
권영술_Craving-Siyamatara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1

갈망과 욕망의 이중주가 펼치는 형태의 연속적이고 단속적인 세계는 작가의 기억에서 기어 올라오고 있다. 지나간 삶의 흔적과 현재적 갈망의 양상들이 다양한 변이적 형태들 속에서 시공간을 풀어헤치면서 기억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권영술_Craving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65.2×91cm_2011

그 시공간에 속박된 형태 속에서 원심력적 욕망으로 탈(脫)하는 것이 작가의 생명적 발아, 생의 변이이다. 그런데 이 변이는 또 다른 형태를 추구한다. 곧 탈(persona, mask)을 쓰고 또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 아름다운 성의 형태 속에서, 양주, 보석, 배, 비행기, 꽃, 구름 등등으로 부유하며 변이하고 있다. 이러한 탈의 행위 속에서 탈을 쓸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욕망은 갈망의 파도 속에서 몸담고 있는 세계가 탈(disease)이난 영역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 그러나 작가가 소유하는 탈이 난 장소는 탈 주체성이 잉태하는 빈곳이기도 하다. 탈이 났기에 그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에. 가득 찬 곳에 거주하는 그것에 비밀스럽게 거주하는 바이러스처럼 작가는 이 빈장소를 소유하게 된다. 아직 어떤 것도 채우지 못한 빈 곳. 시각적으로는 가득 채웠지만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가득 찬 곳 그리고 그것의 끊임없는 환상 그리고 또 다시 빈곳으로의 변형. 이 빈곳의 정향은 새로운 주체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빈곳이기에 긍정할 수 있는 초월론적 지점이다. ● 그 초월론적 지점에서 새로운 주체성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생산된다. 곧 회한과 끝없는 용기와 침잠 속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항상 어떠한 환영도 없는 표면에서 사후적으로 기입된다. 사후적으로 곧 뒤 돌아선 등 뒤에서만 볼 수 있는 바이러스의 위력. 그렇지만 작가가 발견한 사후적 표면은 탈의 변이 속에서 잉태한 갈망과 욕망의 생산성을 또 다시 함축한다. 그것은 갈망 안에 내재한 욕망의 탈주체성을 발견하는 것 곧 삶의 생산적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것이다. 권영술은 끊임없는 바이러스의 주체성을 추구한다. ■ 安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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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led Box


박기일展 / PARKKIILL / 朴基一 / painting 2011_0923 ▶ 2011_1015 / 일요일 휴관


박기일_Plastic Memo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12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926h | 박기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3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포월스 GALLERY 4WALLS 서울 강남구 논현동 248-7번지 임피리얼팰리스 호텔 1층 Tel. +82.2.545.8571 www.gallery4walls.com


소유한 것을 다시 소유하는 방법 ● 이번 개인전에서 박기일은 '피규어'라 불리는 모형 인형으로 재현된 초상연작을 선보인다. 보통 피규어로 묘사되는 것들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속의 캐릭터가 일반적이나, 그가 그린 것은 현실 속의 실존인물들이다. 게다가 이 피규어들은 뜯지도 않은 포장 상자 속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동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물론, 유년기의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유리 갤러, 미스터 빈, 요기 다니엘까지. 이들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기에 작은 플라스틱 인형으로 박제된 채 우리 앞에 진열된 것일까? ● 상자 속 주인공들은 평범한 삶의 패턴을 고수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닌 인물들이다. 비범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 혹은 인간적 한계를 넘어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 자신을 타인에게 강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 이들이 가진 고유의 개성은 한편으로 예술가가 갈구하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그 인물을 깨끗한 비닐과 플라스틱 안에 말끔히 포장된 인형의 모습으로 묘사한 작가의 시선은, 마치 장난감 가게 안에 가득 쌓인 인형들을 유리창에 붙어 바라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을 연상케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봄으로써 갖고자 하는 아이의 욕망. 이것은 현실의 물리적 대상을 평면 이미지로 재생산하여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는 회화 고유의 방법을 암시한다.
박기일_Plastic Memory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89cm_2011

전작인 엔진 시리즈에 등장하는 튜닝카들은 이러한 소유의 특성을 극명히 드러내는 소재였다. 그런데 흔히 수집광을 대변하는 사물인 자동차 액세서리나 액션 피규어의 외형을 묘사하면서도, 정작 작가 자신은 수집의 취미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그 거리를 견지한 채 그는 오히려 피규어라는 형식의 특성을 작업에 끌어들여, 독창성, 추진력, 유별난 습관, 사회적 성취를 소유의 개념으로 읽어낸다. 이 점은 작가가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특정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졌거나 사용했을 법한 사물들도 포장 상자에 함께 집어넣은 데에서도 발견된다. 캔버스 속 인물들이 소유한 물건들은 다시 한 번 작가의 시선에 포획된다. 여기서 소유의 매커니즘은 두 번 발생한다. 인물들이 지닌 개성, 특별한 커리어를 대변하는 사물들은 다시금 화가에 의해, 그 소유주들과 함께 포장되어 캔버스 위에 가지런히 배치된다. ● 그런데 이 사물들이 암시하는 소유의 개념은 돈을 주고 구입한 물건들에 자동적으로 동반되는 역할, 그것을 가진 사람의 경제력이나 미적 취향을 암시하는 역할만 전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누구도 아닌 당사자가 소유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사물들, 그 한 사람의 영향으로 사후적으로 변모한 사물들이다. 박기일의 사물들에서 '상징 가치'라는 것은, 경제적인 가치로 소유주의 일면을 나타내는 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용자와의 물리적 접촉을 통해, 혹은 사물들의 집합이 지니는 독특한 성격을 통해 소유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곧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을 넘어서 보다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까지 투사하여 보여주는 포괄적인 상징 가치인 것이다. 현대인들이 사물을 통해 인물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방식, 사물의 금전적 요소만으로 인물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판단하는 관습은 실상 사물이 담아내는 가치의 범위가 훨씬 넓다는 사실을 가린다. ● 어찌 보면, 박기일의 작업은 시각적 재현에 대한 욕망이라는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본다는 것, 무엇인가를 관찰한대로 평면에 옮겨 갖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망. 원시 예술의 발생과 함께 이야기되는 이 전통적인 동기는 이 동시대 작가에게도 역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회화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대상에 대한 소유욕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인류의 영리한 발명품일 것이다. 어떤 물리적 상처도 남기지 않은 채 오로지 시신경의 힘만으로 대상을 갈취하는 방법.
박기일_Holder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5cm_2011
박기일_Hold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146cm_2011

박기일의 사실적인 묘사방법은 그러한 시각적 소유욕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역량을 발휘한다. 종종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라 오해되기도 하는 그의 그림은 실상 하이퍼리얼리즘의 편집증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의 빈틈없는 묘사는 선택적으로 대상을 포착하는 우리 눈의 시각성을 벗어난다. 그것이 도리어 육안으로 보는 현실과 다른 실재(The Real)를 표상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박기일의 관심사는 이미 그러한 실재성의 반영에 있지 않다. 하이퍼리얼리즘이 지니는 극단적인 성격 대신 그의 작업은 지극히 인간적인 현실성(reality)만을 표상한다. 작가는 자신의 눈에 비친 사실성만을 화폭에 담아낸다. ● 그런데 그의 캔버스에 묘사된 인물의 피부는 완전한 인간의 피부도, 그렇다고 인형의 매끈한 플라스틱 표면도 아니다. 주름살과 흉터는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기는 하지만, 마치 인공 피부를 다시 보고 그린 것 같은 그러한 정도의 사실성만이 표현될 뿐이다. 그 인물들의 출처가 미디어에 비친 이미지이기에, 또한 작가가 피규어를 그대로 모방한 것 또한 아니기에, 그러한 모호함은 정직한 회화적 재현의 결과물인 셈이 된다. 그리고 이는 오직 회화만이 포착할 수 있는, 사진이 재현할 수 없는 그 모호성에 관해서도 생각게 한다. 인간의 피부 혹은 인형의 표면을 찍은 사진으로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어떤 경계적인 특성.
박기일_Holder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7cm_2011
박기일_Plastic Memory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80cm_2011

동시대 미술가, 특히 평면작업을 고수하는 젊은 미술가들에게 회화의 시대성, 그리고 존재론적 당위성은 끊임없는 탐구 주제다. 넘쳐나는 스펙터클한 이미지들 사이에서 미술, 그것도 회화가 할 수 일은 무엇인가. 산포되어 빈틈없이 축적된 이미지의 시대에 회화는 과연 어느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것일까? ● 자신이 보았거나, 보고 있는 세계를, 자신에게 보이는 만큼의 정교함으로 묘사하는 박기일은 그리는 작업을 통해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표명하는 '화가'의 입장을 견지한다. 대상이 소유한 사물을 다시 소유의 관점으로 풀어낸 방법론이라든가, 수집의 습관과 거리를 둔 채 그러한 행위를 작업의 틀로 긴밀하게 끌어들인 점은 박기일 회화의 메타적 측면과 연관된다. 그의 작업은 곧 '보는 자'로서의 예술가의 역할을 실천한 흔적이다. 그 메타성, 곧 그의 작업에 일관된 제 3자의 시선은 작품 자체의 뛰어난 묘사력을 넘어서, 보는 이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 유혜인
박기일展_갤러리 포월스_2011

A Way of Owning What Is Owned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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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01: GOODMONEY


2011_0923 ▶ 2011_1023


$300 HOUSE_Documentation_2010

초대일시 / 2011_0922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정현_장석준_전보경_정이바_탐스코리아TOMS KOREA_$300 HOUSE

후원/협찬/주최/기획 / KT&G 상상마당 시각예술팀

관람시간 / 01:00pm~10:00pm

KT&G 상상마당 갤러리 I KT&G SANGSANGMADANG GALLERY I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7-5번지 KT&G 상상마당 2층 Tel. +82.2.330.6223 www.sangsangmadang.com


『GOODMONEY』 전시의 가장 주된 목적은 현대사회의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자본주의-시장경제의 속성인 '자본'의 기능을 탐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맞물려져 왔으며 이는 시장경제 체제를 대변한다. 개인의 자율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투쟁했던 인간의 본성이 과연 얼마나 자본주의를 자생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 시초이다. 현 체제(시장주의-자본주의-민주주의)는 과연 성공했는가.
김정현_Darth Vader_Photograph_72×72cm_2011
장석준_핑크가 모자라_Digital backlit_가변설치_2011

1970년대 이후 미국은 세 차례의 불황에도 크게 성장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의 IMF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국내의 대기업과 금융권은 세계시장주의에 발맞추어 더 경쟁적이고 지구적이고 혁신적이게 되었다. (기업들의 국외 성공에 우리는 마치 그것의 나의 일인 양 기뻐했고 자긍심마저 가지게 된다.) 기술의 발달은 노동력보다 더 정확한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에 일조한다. 노동력은 퇴보되고 년식에 따라 변모하는 iPod/iPhone G, 하이브리드 카의 유혹만이 남겨진다.
전보경_나는 보여지지 않는 과잉에 불과하다(process)_Bone ash_가변설치_2009
정이바_The Samples of Emotion_Documentation of street intervention_Chinatown, NY_2007

인간 개인 능력의 퇴보는 민주주의의 퇴보를 불러 왔다. 각각의 개인은 국가나 오히려 국가를 넘어선 초국가적 기업의 경쟁 앞에 도외시 된다. 이들 발전의 양태를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근로자에게 이윤이 돌아가지 않을 경우, 그들은 구매력 자체를 상실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어렵고도 정확한 시도 중의 하나는 아래로부터라는 핵심이다. 즉, 기업이 가지는 자본의 흐름이 이제는 아래 단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기업이 호사스럽게 누리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수사어가 아니다. 기업이 현재의 시스템을 벗고 창조적 파괴를 위한 혁신을 향해 주력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현재가 그 시작점이라는 일언이다. Sustainability/상생의 개념은 퇴색되었으나, 지금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BOP(Bottom of the Pyramid), 역혁신(Reverse-innovation), CVR(Creating Shared Value) 과 같은 개념은 위의 내용을 뒷받침 해 준다. 금융위기 이후 현재의 상황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며, 수익추구라는 기업의 원칙이 사회적, 환경적, 경제작인 세 가지 관점(Triple Bottom Line)을 가지고 진력 해 나갈 때 기업은 장기적인 비전과 새로운 구매층의 확산을 통해 현재의 공적 영역까지 시장이 주도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대안적 태도로 공고화 될 것이다.
탐스코리아TOMS KOREA_Shoe Drops Documentation_2010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와 기관은 그 동안 끊임없이 제기되던 상업주의/자본주의 속성을 살펴봄과 동시에 그것이 어떠한 지점에서 대안적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는지 알아 볼 것이다. 자본이 벗어나야 만 하는 곳에서 자본이 어떠한 기능을 하고, 또한 자본이 사라진 곳에서 자본이 어떠한 파생적 효과를 갖는지 아래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시장경제체제 내 경제적 이윤이 공적 이익으로 되돌아가고, 공적인 행위가 사적 이윤으로 되돌아가는 순환의 과정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연대한 진정한 민주주의란 그것을 행위 하는 자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 정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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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n.ature


유지원展 / YUJIWON / photography 2011_0927 ▶ 2011_1002 / 월요일 휴관


유지원_mini_nature_디지털 프린트_64×8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유지원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7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류가헌 ryugaheon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번지 Tel. +82.2.720.2010 www.ryugaheon.com


나의 월든을 찾아서 ● 언제부터였는지, 왜였는지도 확실치 않다. 내 카메라는 자주 집을 찍고 있었다. 그 집들은 강남의 타워 팰리스 같은 대형 아파트도 아니었고, 평창동이나 성북동 같은 고급주택단지를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논밭을 마당삼은, 이름 없는 시골마을의 조립식주택 같은 간소한 집들의 한 귀퉁이가 자연과 함께 자주 찍혔다. 더듬어 보건대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와 20년 넘게 살아온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에 뿌리를 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 살아 온,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수많은 이야기꺼리를 만든 집은, 단순히 사람 사는 공간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집은 어떤 사란들에게는 치부의 수단이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권력의 상징이겠지만, 나에게는 집은 사랑의 장이고, 다시 만날 수 없이 먼 길을 떠난 아버지와 밤하늘을 올려보는 공간이기도 했다. 꽃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그 집에서 내게 말했다.
유지원_mini_nature_디지털 프린트_40×50cm_2011
유지원_mini_nature_디지털 프린트_40×50cm_2011

"달빛 아래의 벌개미초를 본 적 있느냐? 얼마나 아름답던지.."
유지원_mini_nature_디지털 프린트_40×50cm_2011

이제야 알았다. 그것이 아버지가 딸에게 건네는 사랑의 언어라는 것을. 그러나 아버지는 나의 대답을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훌쩍 이승을 떠나 달빛 그늘 속으로 몸을 감추신 것이다.
유지원_mini_nature_디지털 프린트_42×42cm_2011
유지원_mini_nature_디지털 프린트_40×50cm_2011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 집은 이제 세상에 없다. 단지 마음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양평에 산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웃 동네인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는 다산의 집이 남아 있다. 예전에는 몰랐다. 왜 사람들은 허물어져 가는 옛집을 그렇게 지키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가를. 옛 선조들의 집들이 이제야 가슴에 닿는 것은 그 집들은 집이기 이전에 하나의 문화이고 정신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집은 그곳 주인의 한 정신과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집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즈음에서 만난 것이 미국 동북부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지어진 간소한 오두막집이었다. 자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모습만 갖춘 집. 그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문명을 떠나 약 2년간 머무른 데이빗 소로우의 집이다. 손수 나무를 베어 지은 집. 모든 문명의 인습을 버리고 오로지 자연의 혜택을 양식으로 삼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집.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집에서 나온 책이 그 유명한 『월든』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 이 책은 반향이 크지 않았다. 책을 쓴지 100년이 지나서야 이 책의 가치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 세상이 각박해지고, 세속의 성공에 의문부호가 찍혀지고 나서야 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삶,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해결책을 소로우에게서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그 답을 찾은 진정한 녹색주의자가 소로우이다. 그리고 그 간소한 삶의 모델이 된 것이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집이다. 그런 정신을 기리기 위해 미국의 작가 E.B. 화이트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학생들에게 졸업장 대신 데이빗 소로우가 지은『월든』을 한 권씩 주자고.
유지원_mini_nature_디지털 프린트_64×80cm_2011

그 『월든』이 쓰여 졌던 호수가의 오두막집 한 채가 책을 읽는 내내 내 의식을 떠나지 않았다. 소로우 정신의 거푸집인 그 한 칸짜리 집이 내 작업의 출발지이다. 그 집에서 인간과 자연을 사랑한 소로우의 사유에 대한 경의와 나의 꿈을 함께 발견했다. ● 나는 월든 호숫가에 지은 집과 똑같은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집을 지으면서 내내 소로우를 생각했다. 소로우라면 월든을 떠나 어디에 오두막집을 지었을까? 꼭 호숫가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인적 드문 바닷가나 풀빛 고운 들판이면 어떠랴. 하얀 자작나무가 무성한 숲이어도 좋으리라. ● 그 곳을 찾아 이 땅을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월든을 만들어 나갔다. 여기에 보이는 나의 월든은 아마도 아버지와 살고픈 월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싶은 월든이고, 내 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선물해 주고 푼 나의 월든이다. ■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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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투모로우 2011


KOREA TOMORROW 2011展 2011_0925 ▶ 2011_10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코리아투모로우 2011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4_토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지은_김하영_도로시엠윤_윤향로_이지연 이피_장승효_김유철_김덕용_박승모_이광호 차영석_채은미_스페이스 바닐라_김명범_고강철 유거상_강이연_심승욱_장파_고등어_오용석 이완_신창용_최울가_변경수_추종완_신이철 미하일진_지연오_리치빈_김영배_류성훈 장종완_전정은_최혜영_추미림_하지훈 김희수_장석준_장보윤_김윤재

디렉터 / 이대형LEE DaeHyung(Hzone)www.hzone.com

주최, 주관 / Galllery Absinthe_Hzone 스폰서 / 라푸마_SK이노베이션_하나로 의료재단 하나은행_Club Mow_Cass_QTV_Daum_국대떡볶이

관람료 일반 10,000원 / 학생 8,000원 / 어린이 6,000원 만 4세 이상 미취학 아동, 장애인 유공자, 경로우대(65세 이상) 5,000원 20명 이상 단체 할인

관람시간 / 11:00am~08:00pm(전시종료 1시간전 입장마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 2층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00번지) Tel. +82.2.580.1300 www.sac.or.kr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시작 WOMAD CODE = Woman+Nomad● WOMAD CODE는 20대를 한국이란 문맥에서 벗어나 공부하거나 작업했던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코드이다. 기존의 정형적인 한국 여성이 아닌, 현대 사회의 진보에 따라 달라진 'WOMAN'과 움직임을 뜻하는 'NOMAD'가 결합된 단어에서 시작된 WOMAD CODE는 현대판 유목민적 문화가 야기한 문제들과 그로 인해 달라진 여성 작가들의 아이덴터티 문제를 다룬다. 그런 의미에서 WOMAD CODE는 유럽중심, 남근중심, 이성중심의 사고체계가 오랜 세월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해체하는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 이대형
Womad Code / 이지연_김지은_도로시 엠 윤_이피
Reconstruction of Korean Beauty / 채은미_김명범_차영석_이광호

Reconstruction of Korean Beauty 한국미의 재구성● 글로벌리즘이 팽배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한국미술이 세계시장에 어필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까. 지금까지 한국 현대미술은 주체적으로 가치를 창출한다기 보다는 외부의 것을 모방하거나, 정치권력 혹은 자본 아래 약자의 위치에 수동적으로 있었다.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현대미술이 차별화된 의미와 변화된 지위를 진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컨텐츠를 생성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다른 영역의 영향에서 벗어나, 온전히 예술 요소만으로 구성된 지식공간을 꿈꾸고, 한국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들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재발견해본다. ■ 이대형
CounterFAKE / 장파_심승욱_유거상_강이연

CounterFAKE 불안한 진실 ● CounterFAKE는 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를 의미한다. 현대인은 사회 다방면에 있어서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편의'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이 중 '미디어'의 발전은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는데, 미디어를 통해서 얻는 수많은 정보의 양에 노출되고, SNS와 같은 온라인 상에서의 만남 등이 대표적으로 변화된 삶의 모습이다. 이러한 삶의 모습에 익숙해지고, 당연시 여기는 현대인의 삶에 조금만 의문을 가지면, 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함을 알 수 있다. CounterFAKE는 익숙함 속에서 느끼는 낯설음, 거기서 파생되는 현대인의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에 대해 나타낸다. ■ 허은빈
Outsider Gaze / 오용석_신창용_추종완_변경수_이완

Outsider Gaze 낯선자의 시선 ● 예술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흔히들 예술이란 시대적 미의식의 표현이라고 여겨졌지만, 이는 점점 작가의 주관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옮겨져 왔다. 현대 사회에서의 '예술'이란, 작가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출하는 통로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 작가의 인간의 내재적 본질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 '낯선자의 시선'은 이러한 현대 대도시 사회와 그곳을 살아가는 '타자'로서의 개인이 사회나 역사적 유산, 외준 문화 등의 힘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적나라한 묘사라고 함축할 수 있다. ■ 신은진
Deja-VIEW / 전정은_장보윤_김윤재_김영배

Deja-View 데자-뷰 ● 데자-뷰는 행위로서의 '보는 것'이 환영과 실제의 경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개념의 시점이 개입한다. 바로, 시간의 흐름 가운데 어느 한 순간을 의미하는 시점(point of time)과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으로 시각화할 때 발생하는 시점(point of view)이다. 데자-뷰에서는 첫 번째 의미의 '시점', 즉 서로 다른 시간대를 한곳에 표현해서 환영적 체험을 제공하는 작가들의 작품들과, 그리고 두 번째 의미의 '시점'의 이동으로 인한 보는자(viewer)와 관찰자(observer)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 이주희


 
2011.09.24 23:45:02 / Good : 304 +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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