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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2.07.16 16: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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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기사] 이기봉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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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은 작업이었지만 나름 정묘한 실재감이 인상적이었다.  대기권에 대한 작가의 관점도 잼나지만, 난 그의 그림이 더욱 인상적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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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검색




ARKO Artist


▶ 몸의 감각으로 세계를 인식하다 – 조형예술가 이기봉



글 : 정현(미술비평가)





▲ 이기봉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대표작 <안개 속의 풍경>의 장면에서 불확실한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처럼 이기봉의 조형작업 앞에 서면 누구나 자연스레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우리의 삶이 알고 보면 안개 속을 더듬거리면서 스스로 깨달음과 지혜를 얻듯이 이기봉에게 안개의 존재는 실체를 감추는 물질이 아닌 삶의 본질로 인도하는 매개체에 더 가깝다. 2012년 아르코 대표작가로 선정된 이기봉과의 만남은 - 모든 첫 만남이 그렇듯 - 서로의 생각을 꺼내어 펼쳐놓는 기회였다. 이 생각들은 대화가 진행될수록 서로 얽히고 섞이면서 또 다른 형체를 만들어 갔다. 그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와 유사하다. 그에게 창작이란 질료를 다루어 그만의 고유한 형태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떠올린 ‘연금술사’는 이기봉에게 퍽 잘 어울리는 단어처럼 들렸다. 시적 명상의 조형세계를 제시하는 작가 이기봉과의 대화는 삶과 철학, 창작과 성찰에 관해 질서 없이 다양한 가치들 사이를 횡단하는 시간이었다.



▲ <Sense Machine - 자라는 수평>(왼쪽) / ▲ <There is No Place - Shallow Cuts>(오른쪽)

Q. 기체상태를 이용한 조형작업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언제부터 비정형적인 물질을 기반으로 한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나요?

- 저는 중학교 시절에 이미 유화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제게 미술은 늘 가까운 것이었죠. 하지만 당시에도 대상을 재현하는 것보다 물감을 개고 캔버스에 붓질을 하는 촉각적 상태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었습니다. 저는 시각예술가이지만 시각적 인식보다 오히려 그림을 그릴 때 느껴지는 촉각적 상태로 사물을 인지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손의 감각에 의해 세상을 인식한 셈이겠죠.

Q. 기체와 기포, 이 두 성질이 본인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포착되는 물질인데, 이처럼 감각적인 질료가 관객의 입장에서는 몸으로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시각적/망막적 특성 또 다른 의미로 말하면 시각적 환영을 발생시킨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강한 물성에도 불구하고 위생적인(무균실과 같은) 미장센을 한 이유가 있을까요?

- 어린 시절, 유독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아이였습니다. 그때부터 공간에 대한 예민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공간 속에 갇힌 듯한 공포를 느끼곤 했습니다. 이런 감정은 당연히 저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다고 봅니다. 안개와 같은 흐릿함은 명징한 공포의 감정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즉 제 작업은 몸으로 체험하는 감각성을 이야기하기보다 내면의 움직임을 시각적 현상으로 환원하는 데에 중점을 둡니다. 명상하듯 물질의 움직임, 변화를 관찰하는 거죠.

Q. 그렇다면 언제부터 물질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나요?

- 아마도 2002년 국제갤러리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부터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첫 번째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물질 실험이 일어났죠. 그 전시에서는 ‘날것’에 대한 시도를 했었습니다. 날것의 물질이 화학반응에 의해 부식하면서 본질이 바뀌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실험을 마치고 나서야 안개나 물과 같은 기체 상태의 작업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 <흐린 방> 전시장

Q. 청년 시절이었던 80년대 한국 미술계는 리얼리티와 추상 간의 대립이 첨예했던 시기였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작업의 방향이 어느 쪽에도 기울여지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청년기 자신을 지배했던 사상이나 철학이 있었나요?

- 저는 젊을 때에도 철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관념적인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도 일상이란 리얼리티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재현하거나 현실의 갈등을 작업으로 연장시키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세상을 권역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편입니다. 현실이 ‘물질계’라면 그 상부에는 ‘대기권’이 있습니다. 제 관심은 바로 대기의 영역에 있습니다. 대기현상은 끊임 없이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생명의 순환성을 보여줍니다. 원소적 변화는 힘의 논리이며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계는 속도에 의해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발전, 성공, 욕망이 바로 속도의 기제겠지요.

Q. 기계적 메커니즘이 응용된 작업들이 많습니다. 공학과 조형예술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요?

- 저는 예술이 다른 분야와 지속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예술가이기 전에 세상에 호기심을 품고 그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고 현상을 재구성하는 ‘플레이어’입니다. 저는 몸과 정신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제가 만드는 로우테크의 기계들은 정신적 현상을 구체화한 것이겠죠. 하지만 전기로 작동되는 기계는 전원을 내리는 순간 작동을 멈춥니다. 소멸하는 거죠. 이 순간 몸과 정신의 유비를 견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생물학적 몸(body)보다 사유하는 몸(soma) 개념을 선호합니다. 대기의 상태는 몸의 연금술적 변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정신과 몸, 양가적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게 제겐 바로 대기의 존재입니다.

▲ <Bachelor : The Dual Body>, 2003


Q. 저는 선생님의 작업에서 신체의 호흡을 느꼈습니다. 대기현상을 만드는 인공기계들 역시 나름의 자율적인 운율을 가지고 날숨과 들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특히 <Bachelor: The Dual Body>는 다양한 상상을 가능케 한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업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Bachelor>같은 경우는 제 일상에서 일어난 해프닝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욕조에서 독서를 즐기는데, 어느 날 제 책이 욕조에 빠진 거에요. 더 이상 책은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죠.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젖은 책을 가지고 놀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물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책을 보면서 이 상태를 조형적으로 구체화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물 속에서 마치 생명체처럼 부유하는 책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죠. 2003년에 처음 발표한 이 작업은 물리적 문제를 보완하면서 진화 중입니다.

Q.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작품 속의 책 내용이 궁금합니다. 특별한 것인가요?

- 그 책은 대학교 시절부터 읽던 철학서입니다. 당시 원서를 들고 다니면서 해독을 하려고 애를 썼던 책이었죠.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면서 늘 갖고 다니던 그런 책이에요. 수족관에서 부유하는 책의 의미는 정신, 몸, 그리고 언어의 유비를 묻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Q. 끝으로 전시 구조 전반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전시장과 2전시장으로 이어지는 아르코 미술관의 건축적 성격이 선생님 전시에서는 감정의 흐름을 다소 단절시키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 그런 관점도 흥미롭군요. 저와 이번 전시 큐레이터와 상당히 오랜 시간 전시 구성을 놓고 고민을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역(sphere)의 개념을 구조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질의 영역과 대기 영역에 대한 개념은 <흐린 방>에서 비로소 명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1, 2 전시장의 분리는 시각적 환영의 영역에서 물리적 움직임, 생성과 소멸의 순환의 영역으로 이동하기에 대기권을 상정하기엔 더 적합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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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봉(1957~)은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과 토탈미술대전 미술상 등을 수상했고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대표적인 중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독일 ZKM 미술관과 뉴욕 Neuberger Berman 컬렉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설치와 평면회화를 병행하는 작품세계를 꾸준히 선보여왔으며 세계적인 미술관의 주요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2012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로 선정되어 개인전 <흐린 방>을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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